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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오 Jun 14. 2019

검증된 여행이라는 레일

핸드폰을 도둑맞아 비로소 쓰인 여행의 짧은 기록들 8


여행



 사람들에게 ‘여행’을 다녀온다고 말하는데, 참 여행이라는 단어를 쓰기가 낯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혼자 있다 보니 타인들의 여행 패턴을 관찰하게 되는데, 깃발 여행은 아니지만 다들 보이지 않는 깃발을 하나씩 들고 다니는 것 같았다. 특히 자신이 콘텐츠를 검색하는 경로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이 주로 모여 있는 공간들이 생기게 된다.

 

 여행 전에 친구에게 한인민박이라는 것이 있다는 말을 듣긴 했는데 가격이 비싸서 이용하지 않았다. (한번 급히 숙소를 구하며 이용해 보려 했는데 몇 박이냐고 묻고 하룻밤만 자겠다고 하니 방이 없다고 했다.) 여행을 하며 한인민박의 장점은 한식 제공, 한국인들만 있음, 한국인 사장님이 여행정보를 알려주고 때에 따라 야경투어와 같은 서비스를 해준다는 것을 알았다. 또한 단점은 유교 마인드를 장착한 사장님들이 어린 학생들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를 보인다거나 호스텔이라기 보단 하숙집 같은 분위기여서 눈치 보이는 게 많다거나 그런 점들인 것 같았다. 성범죄사례는 어디에나 있는 것이라고 보고.


 나는 주로 부킹닷컴, 호스텔 월드, 에어비앤비, 아고다와 같은 사이트를 통해 예약 숙소를 구했고 현지에서도 트립어드바이저 어플로 맛 집을 검색했기 때문에 숙소에서도 주로 외국인들과 함께 지내는 일이 많았다. 그렇게 네이버 카페 경로와 구글을 동시에 이용하다 보니 여행정보를 어디에서 취득했는지가 여행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당연한 것이지만 말이다.


 이렇게 여행객들 사이에 공통적 경험이 형성되게 되는데, 만약 우리의 일상을 낯설게 하는 것이 여행이라면 그 삶의 '낯섦' 이 다수에게 공통의 경험이 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특히 IT강국의 한국인들은 인터넷 검색에 매우 능숙하고 언어의 장벽 때문에 현지에서 찾아가기보다 미리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에 그 공통의 경험이라는 것은 다른 나라 여행객들에 비해서 훨씬 집약적일 것이다.


 예를 들면 로마에 가면 어느 젤라토 집이 맛있고, 어느 한인민박에 가면 야경투어를 시켜주고, 첫날엔 테르미니 역에서부터 출발해 베네치아 광장, 진실의 입을 보고 어느 음식점에서 밥을 먹는다 등의 아주 세세한 경로까지 한국에서도 계획을 세울 수 있다. 이러한 경로는 다수의 경험이 경합해 좋은 것들이 추려지는 선별의 과정이라기 보단 누군가의 좋은 경험을 다수가 반복, 재생산하는 누적의 과정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특히 재밌는 것은 맛집 추천이다. 예를 들어 "학센 맛집"이라 추천할 때 그 여행자에게는 몇 개의 모집단이 있는가? 보통 한두 번의 경험 중에 추려지거나 혹은 한 번의 경험으로도 "절대미각"에 의해 맛 집으로 판명하는 것일 테다. 한 맛집에 여러 번의 검증과정이 없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실패하고 싶지 않다는 열망. 정확히는 기회비용 때문에 누군가의 믿을 수 없는 선 경험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한 추천의 뿌리를 찾아가면 가이드북이 있겠지만 말이다. 즉 여행을 가서 정보를 얻으면 얻을수록, ‘목적지’를 계획하면 계획할수록 여행은 점점 레일 위에 놓이게 된다. 이 레일은 다수의 경험에 의해 검증되었으나 그것이 최선이라고는 볼 수 없다. 그리고 핵심적으로 이 레일은 ‘소비’를 중심으로 놓여있다. 그렇기 때문에 레일 위를 걸으며 만나는 수많은 소매치기, 호객꾼들, 야바위꾼 등, 이 소비 공간에서 돈을 벌기 위해 모인 사람들과 수없이 만나는 것이 당연하다. 종종 이 레일 위에 놓일 때 나는 말할 수 없이 피곤해짐을 느꼈다.




* 일련의 여행기는 2015년 여름 40일간의 여행 후 쓴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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