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을 도둑맞아 비로소 쓰인 여행의 짧은 기록들 4
무장해제
이탈리아는 소매치기로 악명이 높다. 로마나 나폴리 같은 대도시는 물론이고 시골 소렌토를 가는 사철에서도 지루하게 앉아 있다가 문가에 있는 한 여자가 갑자기 찢어지는 비명을 지르는 것을 들었다. 그리고 남자아이들이 후다닥 계단을 뛰어 내려가는 것을 보았다. 속절없이 문이 닫히고 여자는 사람들에게 상황을 이야기하는데, 아마 문이 닫히는 틈을 타 아이들이 문가에 있던 여자의 지갑이나 핸드폰을 가져간 것 같았다. 친구는 유럽에서 이어폰을 꽂고 다니지 말라고 당부했다. 로마에서는 전철에서 소매치기를 직접 만나기도 했다.
어디서든 털릴 수 있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퍽 힘든 일이었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불편했던 것은 길을 모르지만 스마트폰으로 구글 지도를 볼 수 없다는 것이었는데, 그럴 때마다 한국의 치안이 그리워졌다.
무엇보다 외국에 나가니 내가 인식하지 못했던, 나를 보호해 주었던 많은 장치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은 치안이 좋기로 유명한 나라이기도 하지만 단순한 치안과는 다른 것들. 무엇보다 나를 둘러싼 콘텍스트이다.
한국이라 해서 내가 유별난 배경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나는 대학에 다니고 있고, 교양 있는 말을 구사할 줄 알며 도덕, 문화적 '정상' 범주에서 그리 어긋나지 않는 모양새를 하고 있다. 예전에 이주노동자 센터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이주노동자들과 멀리 다니는 일이 잦았는데. 하루는 한 파키스탄 사람과 택시를 탔는데 택시 기사님이 고등학생 여자애인 내게 존댓말을 쓰고 나보다도 어른인 그 남자에게 반말로 “어디서 왔어?”라고 말하는 것을 봤다. 당시엔 청소년인 나도 그리 사회에서 존중받는 편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 존중의 뺄셈이 제곱이 되는 상황이 당혹스러웠다. 하물며 성인이 된 나를 마주치는 사람들은 나를 이주노동자를 대할 때처럼, 청소년을 대할 때처럼 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그런 것들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 그리고 외국에서는 그러한 나에 대한 콘텍스트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무례함, 단순한 불친절이 아닌 나의 존재에서 비롯된 무례함을 느꼈고, 나를 대하는 사람들과 쉽게 어떤 이해에 도달할 수 없었다. 예를 들어 한국이라면 낯선 사람과 대화할 때 단 한 두 마디로 타인은 나에 대한 어떤 이해를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사는 지역, 내가 하고 있는 일, 내가 다니는 학교와 같은 것들로 말이다. 물론 그것은 지독한 편견과 함께 작동하지만 한편 타인과 나 사이에 아주 손쉬운 유대가 될 수도 있다. 저열할지라도 나는 아마도 스테레오 타입이 내게 주는 안락함을 즐길 것이다. 그러나 나에 대한 콘텍스트들이 완전히 무력화된 곳에서 나는 종종 맨살처럼 연약했다.
* 일련의 여행기는 2015년 여름 40일간의 여행 후 쓴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