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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업가 최현일 Aug 25. 2019

[전문] 700억 엑싯, 컴투스 창업자 이영일 인터뷰

[전문]


경남 마산에서 태어났다. 마산이 더 크고 마산에 있는 고등학교들이 다 명문고였는데 창원은 이진이였다. 마산이 창원과 합병 거부하고 창원이 잘나가자 마산이 흡수합병당했다. 이게 세상 살아가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일희일비 세상에 할 것 없고 진짜 인생 어떻게 될지 모른다. 인생은 재수라고 생각한다. 



  



100억부자는 노력하면 된다. 1,000억부자는 하늘이 내린다. 이런 옛날말이 있다. 그 말은 재수가 꽤 중요한 것 같다. 뭐 인생 도박걸면 되는거냐 그런건 아니고 내가 항상 드리는 말씀은 자기 탓이라고 꼭 생각할 필요없다. 물론 자기 탓인데 굉장히 재수 없는 상황이 많은 경우도 있는 것 같다. 



  



나같은 경우도 병역 특례 업체를 다니고 있다가 논땡이 축에 속했는데 병특례를 다니다가 IPS라고 기능형 교통 시스템이라고 있다. 몇분 후에 버스 온다 이런건데. 그때 윈도우 깔아서 핸드폰 연결해서 개발도 아니도 그냥 뜯어보면 노트북 안에 들어있는 거였다. 그때 일하다가 재미가 좀 없어지다가 병역 특례 업체 대표님이 좀 미래를 보시는 분이였다. 그때 인터넷을 가지고 뭐 해볼 수 있지 않을까 막 그러다가 나보고 어디 세미나가서 공부하라고 하고 뭐 그랬다. 



  



그래서 한 세미나에 갔는데 미국에서 온 인터넷 잘 아시는 분 만났다. 96년쯤.. 그 사람이 앞으로 휴대폰으로 모든 걸 하게 될거다. 이렇게 얘기했는데 기자분들이 에이 되겠어 하는 분위기였다. 근데 그 분이 다 휴대폰으로 할거다. 근데 들어보니 나는 설득이 갔다.  



  



20대 중반에 돈도 하나도 없고 기술도 뛰어나지 않았고.. 뭘 할 수 있을까? 그때 인터넷에서 돈 벌 수 있는거 3가지라고 생각했다. 돈을 움직이는 장르 (파이낸스나 인베스트먼트), 두번째는 게임, 세번째는 성인 컨텐츠. 근데 나는 파이낸스, 성인 컨텐츠는 난 할 수가 없어 게임을 만들어야겠다. 그때 게임을 좋아하기도 하고.  



  



그때만 해도 과금 시스템도 없었다. 그때 당시가 핸드폰으로 웹브라우징 하나 하는데 50원 내는 시절. 사람들이 그때 당시만 해도 게임을 안 만들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그 세미나에 안갔다면.. 이 길로 들어섰을까? 인생은 이런.. 재수와 우연인 것 같다. 



  



와이프와 같이 창업했다. 컴투스 15년동안 창업하고 매각했다. 제주도에서 3-4년동안 놀았다. 투자 좀 하고. 1년 반전에 새로운 회사 창업했다. 



  



처음 DDR 춤추는 기판 만들어 대박 말아먹었다. 이때는 굉장히 이게 인기 있었는데 하다보면 DDR 하는 판이 밀린다. 비닐이 땡겨옴. 그래서 플라스틱 같은거 가지고 잘 만들면 대박나겠다 생각했다. 그때 한 보증기관에서 3억을 빌려주겠다고 했다. 1994년에 대학교 3학년때 그 돈이면 거의 30억과 같은 돈이다. 이때는 이 3억이 감이 없었다. 나는 소프트웨어만 하는 사람이여서 김포에 가서 공장에 찾아갔다. 이러 이렇게 구상하고 있는데 얼마들겠냐? 하니깐 1,000개 만드는데 2억 5천 들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찬란하게 망했다. 그리고 공장 아저씨가 튀었다. 97년정도였는데 와이프랑 나랑 공장에 가서 본드로 조립하면서 선주문 들어온 100대 팔았다.  



  



그때 진짜 암담했다. 그때는 보증기관 진짜 심했다. 대표가 와이프였는데 연대보증 (박지영 대표), 나도 연대보증, 시아버지, 우리 아버지 4명이 섰다. 근데 그 돈을 다 날린 거다. 한강가고 싶은 적이 살면서 두번 있었는데 이때가 그 첫번째였다. 



  



그 3억 중에 2억 5천 날려먹고 이 5천으로 모바일 게임 만들었다. 그것도 2억을 빌릴까, 3억을 빌릴까 하다가 했는데 3억을 빌린거다. 그때 2억을 빌렸으면 또 어땠을까.. 그때 내가 전산과니깐 후배들한테 잘 일을 부탁할 수 있었다. 한달에 알바비로 50만원, 잘하면 50만원 더 줄게 (웃음). 그 당시에 모바일 게임 몇개 만들었는데 그게 컴투스의 출발이였다. 그때쯤 이제 내가 다니던 회사를 나갔어야 했다. 내가 그 전 회사에 나간다고 하니깐 그 회사 대표님이 3억을 투자해줬다. 팀이나, 아이템도 안물어보고 투자해줬다. 대부분 성공하신 분들은 운이 좋은 것 같다. 



  



또 운이 좋았던게 학교때 컴투스 하느라 병특 회사를 구하지 못하다가 어떤 회사에서 나보고 오라고 했다. 그 업체가 SI업체. 딱 보더니 나한테 병역특례를 하려면 기사 자격증 (정보처리기사 자격증)이 있어야 되는데 그 이사님이 기사 등록증 줘 바로 등록할게! 이러더라. 좀 이상해서 내가 뒷주머니에 있었는데 안드렸다. 인사이트가 아니라 그냥 기분이 이상했다. 제가 오늘 안가져와서 다음주에 가져올게요. 알고보니 그 회사가 인력 장사 업체였다. 사람 토스 토스 해주면서. 



  



내가 회사를 판 이유는 회사가 안되서 판건 아니다. 적자를 본적 한번도 없다. 전반적으로 계속 흑자는 늘어났다. 



  



나때는 취업하기 진짜 쉬웠다. 그래서 그냥 대기업에 취업하긴 아쉬워. 그때는 아유 삼성 대기업 갔냐 막 그런 분위기였다. 목표가 그때 소소했었다. 내가 한달에 500만원만 벌면 마누라랑 행복하게 살겠다. 상사 눈치 안볼 수 있겠다. 그래서 창업했었다. 엄청난 뭔가가 있었던 건 아니다. 



  



가족들한테 500만원 빌려서 시작했다. 그때 500만원 진짜 구하기가 어려웠다. 되게 힘들었던 집안이였다. 근데 아버지랑 장인어른이 투자해주신거다. 그때는 컴퓨터 3대로 시작했다. 우리가 처음 만든게 검색 엔진이다. 그때 당시에 검색 엔진이 없었다. 천리안, 나우 누리 유명했었는데 자기들끼리 밖에 검색이 안됬었다. 그래서 그때 대박이다하고 갔는데 왜 우리 유저에게 우리가 알려줘야되? 그랬다. 그래서 망했다.  



  



그때 두대와 모니터 한대와 도둑 맞았다. 거기에 우리 코드 다 들어있고 컴퓨터도 못사는 상황. 그때 펑펑 울었다. 그때 마침 어머님한테 전화가 왔다. 뭔일 났냐고. 도둑 맞았다고. 그랬더니 그때 집안 어려웠었는데 다시 500만원 지원해주셨다. 그래서 다시 컴퓨터 샀다.  



  



1999년 최초 모바일게임 개발. 처음에 연애게임. 우리는 그때 땡전 한폰 못벌었다. SK가 과금 만들어주기까지는. 그때 투자자들한테 우리 한국 점유율 80%고 5개 회사 중 우리 1등이였고 그때 40억 투자받았다. 그때 이것도 진짜 재수였다. 그때 당시에는 돈 못 벌어도 막 투자해줬다. IMF 직전에 투자받았다. 그게 2000년. 벤처 투자붐의 끝물.  개발자 뽑습니다. 공채하니깐 3명 이력서 들어오니깐 신입 들어왔는데 이 친구 30억 넘게 벌었다. 컴투스 초기 입사한 사람들 그렇게 실력이 좋지 않은데 우린 스톡 매년 줬다. 


  



컴투스한테 되게 자랑하는 건 나를 믿고 따라와준 친구한테 결실을 맺게 해준 것. 그리고 3년마다 하나씩 컴투스를 위협하는 XXX 이런 기사가 매번 나왔는데 나는 플랫폼 바뀔때마다 항상 생존해왔다. 내가 good to great. 가장 감명 깊게 읽었다. 버스 어디갈지 정하고 사람을 태우는게 아니라 좋은 사람들 먼저 태우고 어디 갈지를 정하는 것이다. 



  



경쟁사 막 나오고 우리 매출이 막 죽기 시작했다. 그때 모바일에서 라이센스 나와있는게 테트리스였는데 (테트리스컴퍼니가 그걸 가지고 있었는데 근데 테트리스에 대한 지적재산권이 있는거지 게임 방법이 그걸 보호하는게 아닌 상황이였다.) 그래서 서포트 메일로 우리가 테트리스 짝뚱 게임 엄청 많아 !! 막 이러면서 너네 한번 와볼래? 이렇게 해서 하와이에 갔다. 영어를 내가 잘 못하는데 와이프가 정장이라는걸 처음 사서 하와이로 갔다. 테트리스 컴퍼니 해변에 있다. 끝내준다. 백사장 앞에 있고 벽에는 막 보드 있고. 그때 10억을 달라고 하더라. 근데 그때 은행이 게임 사업에는 빌려주지 않는 상황이였다. 근데 내 cto 친구가 은행 담당자였다. 대출이 안 떨어지는 상황에서 그 친구가 사표까지 낸다고 하면서 지점장에 대출장을 거기 제출하고 나온거다. 원래 안되는데 이게 대출이 떨어졌다. 10억 대출해서 독점 라이선스 딜 따내고 재개 회생했다. 



  



그리고 2002년 붕어빵타이쿤 대박났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100만 다운로드 창작게임이였다. 2003년 독보적 위치 구축했다. 테트리스, 한국프로야구, 폰고도리... 매출 100억 돌파, 직원수 100명 돌파, 전직원 괌 워크샵 40명일 때 가족들 다 데리고 갔다.  



  



급성장하다보니 그늘이 생겼다. 치열한 경쟁체제에 돌입했다, 베끼기, 경험있는 관리자 절실.. 국내 최초 상장 도전했다. 근데 그때 심사위원들이 바보. 에이! 누가 모바일로 게임을 하겠어?? 어떤 회장님이 3~4년전만 해도 무슨 모바일로 게임을 해. 그런 상황이였다. 그런 사람들이 상장 심사위원들로 있었던 것. 모바일은 1년에 200억 벌면 끝이야. 더 이상 못커. 막 이렇게 해서 상장 못했다. 그때 또 스톡 막 줬었는데 주식을 파는 고위 관리자들 문제. 그때 팀장급 급여 30% 삭감, 경영진 50% 삭감. 나는 2004년까지 연봉 2400만원. 이걸로 먹고 살았다. 진짜 힘들었다. 근데 우리 팀장들 다 부자였다.  



  



그때 스톰벤처스라고 미국 투자자를(남태희 변호사) 만났다. 나스닥 여러번 상장시켜보신 분. 근데 그 분이 2001년 "미국애들 손가락으로 게임 안해" 근데 2004년에 "미국인 손으로 게임해!" 이렇게 해서 싱가폴청이랑 4백만불씩 해서 8백만불 투자를 받았다. 



  



그때 아 상장이 중요한게 아니라 끝까지 가는 회사, 100년 기업을 목표로 한번 만들어보자. 나는 결혼 99년, 2007년 애기가 생겼다.  



  



우리는 최초 타이틀이 참 많다. 열심히 내부 역량 강화하니깐 미니게임천국, 역대최고의 모바일게임 탄생. 게임하는 사람들은 거의 다 다운 받았다. 세계 최초 부분 유료화가 도입된 모바일 게임. 2007년에 다시 코스닥 입성했다. 그때 나스닥에 잼닷이라는 모바일 게임업체 이미 상장해있었기 때문에 분위기가 좋았다.  



  



2008년 애플 나오면서 피쳐폰 게임 다 없어졌다. 2008년 12월 국내 최초로 아이폰 게임 4종 출시했다. 한국 업체들 되게 힘들게 일했다. (게임의 사전 심의법으로 인해) 애플이 1년 반동안 게임 카테고리 닫아버렸다. 애플, 구글이랑 되게 친하게 지냈다. 모바일쪽에서 글로벌 매출이 압도적인게 컴투스. 처음부터 글로벌 계속 많이 생각했다.  



  



미국 1위 했던 게임 중 우리가 만든게 홈런 배틀. 그때 당시 앵그리버드가 다시 1등하면서 우리 2등. 작년 초에 해긴이라는 거 만들면서 홈런 배틀 같은 류를 만들었다. 컴투스 대표가(아내) 국회의원들 정말 많이 만나면서 이거 글로벌 경쟁인데 우리 나라 게임 회사 진짜 설득 많이했다. 그렇게 해서 게임 카테고리가 열린게 박지영 대표 공이 50% 이상 될거다. 그리고 2012년 타이니팜 대박 DAU 20만. 컴투스 허브 가입자 4천 만명. 분기 매출 200억 돌파했다. 



  



2013년 data, data..   



  



PM, GM 직군과 조직 만들었다. 박지영 대표가 좀 더 효율적으로, 일을 정말 잘하게 시스템 많이 고민했다. 사장이 해야될 일은 언제나 조직이 퍼포먼스 잘내게 해야된다. 박지영 대표가 창업한 이유는 남자친구 혼자하면 망할 것 같아서. 내 와이프 만난 건 재수를 하면서 만난건데 와이프는 또 나 아니면 창업안할 사람. 참 운이 좋은 것 같았다. 



  



내가 지분 팔때 21% 밖에 안됬다. 15년간 매년 2월이 힘들었다. 3월에 주총이라 왜 자꾸 스톡 주냐.. 매년 이 얘기를 똑같이 반복했다. 꼭 보면은 우리나라 1% 가지고 있는 주주들이 왜 자꾸 희석을 시키냐.. 이런게 너무 힘들었다. 전화 다 끊고 나면 사실 내가 손핸데 이때도 연봉 몇천만원 받으면서 나는 정말 이때 내가 3시에 퇴근하는데 월화수목금금금 내가 직원들을 위해 이거 하는데 이런 소릴 계속 들어야되나?그리고 지쳤다. 피곤하다.. 내 와이프는 1시에 퇴근. 그때 아이들 나이가 1살, 3살. 그때 내가 막 들어가면 애들이 엄마랑 잘거라고. 그때 당시에 그래서 아 이게 인생이건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때 게임빌이 개발팀이 약해졌었다. 2013년부터 성공한게 거의 없었다. 또 우리 힘든거 눈치챘다. 나는 개발자한테 많이 돌려줘야 그만큼 더 성과가 난다고 생각한다. 우린 PD가 게임 만들면 10번 다 똑같은 PD였다. 회사를 팔고 애들이랑 한달간 뉴질랜드 여행갔다. 한국도 정말 많이 돌아다니고 너무 좋았다.  



  



돈을 얻기 위해서 시간을 잃는 건 아닌 것 같다. 하고싶은 일이 있다면 바로 시작해야되고 미쳐 일하면서 즐겁지 않다면 다시 생각하고 성공할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엄청나게 성공한 분들 많이 알고 있는데 그 분들을 잘 보면 나도 재수였지만 저분들도 참 재수였구나 그런게 많이 느껴지더라.  



  


QnA: 채용에 실패했던 개발자가 있다면? 



컴투스하면서 이 애가 없었으면 정말 클났다 하는 사람과, 물먹은 사람과 그 두명이 서울대 컴공이다. 피해야될 개발자는 공통점이 개인적으로 자기 생활을 못하는 사람같다. 한 친구는 대학 졸업하고 병특했는데 룸을 다니는 친구였다. 회사에 신용불량 딱지가 날라왔다.



회사에서 그걸 미리 막아주고 월급에서 조금씩 깎고 그 친구 갱신시키기 위해서 참 많이 노력했다. 또 공통점이 SNS를 엄청 많이한다. 많이 한다는게 무슨 말이냐면 현학적인 글을 많이 올리는데 이런 사람들 피해야된다. 또 모두깎기 인형같다. 글 길게 쓰면서 비방한다. 그 친구들이랑 일해본 사람들은 다 싫어한다. 그들의 타입은 본인이 깨어있는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굉장히 친한 분들은 그 진실을 안다. 



 


한가지 더 팁을 드리면 사람을 뽑을때 착한 거짓말을 잘하면 좋은 것 같다. 좋은 개발자 초기에 뽑기 힘들다. 50점 커트라인인데 60점이면 원래 커트라인이 50점이였고.. 넌 간신히 통과했고 뭐 그런말 하지말고 그 사람에게 정말 기대하고 있고 스스로 이렇게 속여라. 같이 일하기로 했으면 진짜 중요한 사람이고 너한테 정말 기대하고 있고 정말 도와줬으면 좋겠다. 앞으로 잘해보자. 역량이 정말 120% 나온다. 내가 실수로 그렇게 한 사람과 안한 사람은 다르다. 700명 될 때까지 면접했다. 좋은 인력, 우리 회사에 오지 않을 사람들한테는 쑤구렸다. 삼고초려했다. 생각보다 이렇게 안하는 대표 많다. 나 죽겠어. 진짜 도와줘. 이러면 안올 사람 없다.   



  



QnA: 인센티브는 어떤식으로? 




회사는 세가지가 있다. 직원과 나누지 않는 회사와 핵심 멤버만 잘해주는 회사와 직원 다같이 나누는 회사. 우리 해긴 같은 경우는 순이익의 20% 인센으로 드린다. 스톡은 답이 있는것 같지 않다. CS,QA 같은 사람들도 다 정직원으로 다 뽑았다. 계약직으로 안뽑았다. 이 사람들에게도 스톡 줬다. 우리 700명 있을때 와이프랑 나랑 나갔을 때 100명정도 울었다. QA, CS 직원이 삼포세대 였는데 내가 스톡옵션 조금 주고 조금 주고 그러다 20억원 이상 벌었다. 해긴 무상으로 지분 준것도 있고 스톡도 계속 주고 회사를 가족처럼 만든다. 경리 아가씨한테 월급 주면서 이거하고 이거해 하니깐 당연히 월급 받은만큼만 하는거다. 항상 그렇지 않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하고 그쪽 입장에서 생각하면 되는 것 같다. 직원한테 주는 지분은 아깝다 생각하지마 마시고 투자는 받을 수 있을때 받아놓으면 좋은 것 같다.



QnA : 구주와 스톡 옵션의 기준치는?





주식10% 정도 주고 우리 80명인데 다줬다. 구주는 무상으로 준다. 스톡 옵션은 투자 받은 벨류 시점으로 준다.





QnA : 벨류에 대한 기준은?





우리는 퍼 per20 기준으로 이익률에 곱해서 측정하는게 일반적이다. 예를들어 월1억 매출에, 이익이 4천 남으면 4 x 12= 5억정도 되고 여기에 x per 20 : 하면 100억 벨류가 되는거다. 예전에는 오래되고 레퍼런스 괜찮고 벨류 잘쳐주는데로 받았다. 딱히 근데 벨류 막 신경쓸 필요는 없을 거 같고 왠만하면 받는게 좋은 것 같다.




QnA : 인재의 기준은 무엇인지?






착한사람. 도덕적이고 커뮤니케이션 잘해야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실력은 당연하다. 그래서 1차 면접에서 실력을 검증하고 2차때는 이런 태도적인 부분을 많이 보려고 한다.






QnA : 개발자분들은 어떤걸 많이 검증하시는지?






분위기 많이 본다. 성격이 모나지는 않은지. 추천이 무조건 중요한 것 같다. 추천없이 좋은 사람을 못데려오는 것 같고. 코팅 테스트도 있다. 주축 내부 개발자들이 내고 우리 cto는 대학 동기고 개발 경력으로는 탑쓰리. 석사하고 큰 연구소에 있다가 경력도 많고 실력이 아주 출중하다. 이런 실력과 동시에 착한 사람인 것을 나는 선호한다. 






QnA : 사람들을 동기부여 시켜주는건 무엇인지?







그냥 우리 회사가 잘되는거에 최고 동기부여를 둘려고 한다. 그래서 보상도 최대한 많이하려고도 한다. 뭐 우스객 소리로 나는 이 회사 잘 안되도 뭐 이미 엑싯 했으니 상관없는데 너희가 선택해. 그렇게 얘기하면서 나는 최대한 이 뛰어난 사람들이 일할 수 있는 환경 만들어줄려고 하고 결과에 대한 합당한 보상 받게 한다. 






QnA : 해고 어떻게 하시는지? 





이전에는 매년 평가를 했고 D를 두번 받으면.. 결정해야한다. 근데 초기 단계 뭐 7명 회사가 있는데 아닌 사람은 빨리 얘기하는게 맞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헤어지자고 했을 때 좋게 헤어지는 사람은 좋게 헤어지고 아닐 사람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대한 솔직하고 투명하게 서로의 생각을 교환하고 잘 헤어지는게 중요할 것 같다. 







QnA : 하루 스케줄은 어떻게 관리하시는지?







딱히 관리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월~금까지 일하고 주말에는 제주도에 본가가 있기 떄문에 거기로 아내랑 아이들 있어 비행기 타고 들어간다. 내 주위에 성공한 사람들보면 뭐 엄청 빡빡하게 하는 것 같지는 않다. CEO는 결국 그림과 방향을 제시해줘야 되기 때문에 너무 바빠서는 또 안된다고 생각한다. 선장은 어디를 가야될지 알려줘야지 조타수가 핸들을 잡아야되는 일을 하고 있으면 안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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