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면 쉬어야지
" 엄마 이번 주에는 안 와도 돼요."
그게 무슨 말이야. 평일 내내 일했는데 주말까지 집안일 하면 쉴틈이 없잖아.
" 김서방이 토요일은 있으니까 이번 주에는 일요일에만 하면 되거든."
아직 엄마 기운 되니까 미안해하지 말고 있어. 링거 맞아가면서 출근하는 딸 보고 가까이 살면서 모른 척 하는 엄마도 있냐. 일요일에 가서 청소랑 빨래정리 싹 해 주고 갈테니 그렇게 알아.
엄마가 마음 먹으면 하고야 마는 성격이란 걸 알지만 80이 되어 가는 연세에 오셔서 집안 일을 거드시겠다고 하니 미안하고 죄송스런 맘이 든다. 하지만 한 달째 계속되는 행사에 쉴틈이 없으니 일단 도움을 받아 보기로 했다.
"우리 싸이버거랑 비프버거 반씩 나눠서 바꿔 먹자"
금요일 저녁 학원 가기 전에 급하게 저녁을 해결하기에는 햄버거가 딱이다. 고칼로리에 채소가 적은 빵과 패티의 조합이라 식사메뉴로 생각도 안하고 있었는데 요즘 에드워드 리 셰프와 콜라보한 싸이버거와 비프버거가 맛있다는 소문이 자자해서 드디어 오늘. 주문했다.
흑백요리사에서 준우승하고 미국 요리 서바이벌에서 우승한 경력이 있는 에드워드 리가 개발한 버거라 40대 엄마의 검증을 무사히 통과하고 식탁에 오른 거다.
"음. 치즈랑 베이컨 맛이 좋네. 나경아. 너 싸이버거 먹을거야?"
"왜 물어보는데. 당연히 먹지. 나교 너도 싸이버거가 더 맛있구나."
"그럼 가위바위보해서 이긴 사람이 싸이버거 한 조각 더 먹자."
"싫어. 그냥 평화적으로 싸이 반쪽, 비프버거 반쪽 먹자. 너 소고기 좋아하잖아."
"너도 소고기 좋아하니까 내가 싸이버거 하나 다 먹어야겠다."
"야. 언니라면서 먹을 때마다 욕심부리네."
" 너희들은 버거 하나씩 먹으면 되지 싸우고 그러냐. 불금인데 우리 평화롭게 지내보자. 가능하겠지?"
난 엄마니까. 어른으로서 차분한 이성이를 꺼내 욱하는 맘을 다스리는 중이다.
"그럼 우리 있다가 치킨 시켜 먹어요. 학교에서 하루종일 수행평가 하고 왔더니 너무 배고파요."
"학원 마치고 오면 시간이 너무 늦잖아. 그리고 늦지 않게 가려면 지금 바로 출발해야 해 얼른 내려 와."
학원에 늦을까 조급한 마음에 먼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띵동. 차량이 도착했습니다.
"아빠 왔다. 아니 우리 나경이 나교 다 어디갔지?선물 가져왔는데."
휴. 픽업까지 마쳤으니 이제 주말이다.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도어락의 버튼을 눌렀다. 띠리리 알림음 소리를 들으며 들어가니 멀리 떨어진 남편 구두 두 짝이 눈에 들어왔다. 벌써 한 잔 하셨네.
남편은 약간 붉어진 얼굴로 애들을 찾고 있었다.
"당신 왔네. 오늘 비오는 불금이라 한 잔 하셨군."
"많이 안 마셨어. 그러니까 이렇게 치킨도 사 왔지. 그것도 당신이랑 우리 나경이 나교가 젤 좋아하는 ㅎㅎㅎ 치킨."
"그럼 나랑 한 잔 더 합시다. 아니지. 있다가 픽업 가야 해."
"픽업 내가 가면 되지."
"뭐? 대리 부르는 거야?"
"진짜 갈까?나경이 엄마 그런데 나 졸린다."
"사장님. 여기 어딘줄 알고 잠들려고 하시나요"
"거실 소파입니다. 부인 화나셨나요?"
남편과 끝을 알 수 없는 대화를 나누다보니 이상하게도 맘이 편안해졌다. 아직 과로 후유증으로 몸이 무거웠지만 감정형 남편과 수다타임하고 나면 큰 문제도 해결책이 하나씩 떠오른다. 내일은 좀 쉬면서 다음 주를 준비해 봐야겠다.
띠리리리
여보세요. 뭐라구요? 아니 비가 얼마나 왔다고 물이 새요!!
일단 플러그 다 뽑아야죠. 내일 9시에 점검하러 온다니 그 때 휴원여부 결정해 봅시다.
하. 오후부터 내리던 비가 기어코 말썽을 일으켰다. 아니 비는 잘못이 없다. 지난 번 천장 수리 업체가 어디였지.
"내일은 내가 집에 있으니까 당신 걱정말고 다녀 와. 잘 해결될 꺼야. 난 집에서 돈 아끼고 있을게."
어디서 저런 여유가 나올까.
"그래. 걱정은 내일 하자. 오늘은 이제 끝."
하지만 자꾸만 수리업체 사장 연락처를 찾으려고 폰에 손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