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 한 장에 얼마죠?
오늘 결석한 친구 없지?
선생님이 우리 0반 학생들의 편의를 위해 학급비로 휴지를 샀어. 화장실에 휴지가 없어서 불편했을 텐데 앞으로는 학급 휴지 쓰면 되겠다.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 반만 주는 거야? 화장실에 휴지 두는 게 그렇게 어렵나! W는 안 되네. 안 돼.
선생님도 동의하시는 걸까. 휴지묶음을 교실 뒤쪽 빈 책꽂이에 올려두시고 선생님은 1교시 수업을 하러 가셨다. 휴지 묶음을 보며 여러 생각이 스쳐갔다. 엄마가 상담 가서 휴지 달아달라고 건의하신다고 했는데 이제 달라지는 걸까. 그런데 화장실 가기 전에 휴지를 챙겨야 하네.
아이들은 저마다 필요한 만큼 휴지를 뜯어서 화장실로 향했다.
"어? 검은 비닐봉지 묶음이 걸려있는데? "
"이거 무슨 용도지?"
보면 몰라!!
언제 오셨는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화장실 청소 아주머니가 대답을 하셨다.
화장실 칸칸이 내가 어떻게 청소하냐. 니들이 돌돌 말아서 검은 비닐에 넣고 꼭 묶어서 저기 있는 쓰레기통에 버리란 말이야. 고등학생이면 다 컸으니 화장실도 좀 깨끗하게 써. 맨날 청소해도 어질러 놓으니까 청소한 표시가 안 나네.
아주머니가 목소리를 높여 손으로 가리키던 원통형 철제 쓰레기통이 눈에 들어왔다. 은색 회전뚜껑이 끼익 끼익 소리를 내며 움직이고 있었다. 방금 전 누가 위생용품을 넣은 모양이다. 청소용구 보관함 칸을 둘러보니 구석진 곳에 커다란 화장실용 두루마리 화장지가 두어 개 놓여 있었다. 저건 교사용 화장실에 놓는 것일까.
'화장실 청소를 안 하니까 화장실이 더럽죠. 그리고 화장실 청소하는 일은 아주머니의 일이잖아요. 아침부터 화내시니까 저희도 듣고 있기 힘들어요.'
하고 싶은 말은 많았다. 하지만 화장실에 휴지도 없는 학교에서 청소 아주머니와 말싸움을 할 필요는 없다. 청소 아주머니의 권력 서열도 꽤 높은 곳에 있는 것 같으니까.
오전부터 힘드신지 아주머니는 신경질적으로 쏘아붙이고 검은 비닐봉지가 든 가방을 메고 반대편 복도로 걸어가셨다. 투덜거리며 걸어가는 아주머니의 발자국을 따라 불평의 기운들이 퍼져 나가는 듯했다.
100명의 학생들이 화장실 3칸을 사용한다. 그중 절반인 50명의 학생들이 쉬는 시간 7분 동안 25초씩 사용한다면 그리고 그중 절반이 하루에 비닐을 3장씩 쓴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1주일에 비닐이 375장 필요하다.
W여고에서는 환경오염 방지를 주제로 여러 수업을 하지만 정작 비닐 사용은 압도적으로 많은 셈이다.
"이거 뭐야!"
깜짝 놀라 화장실 밖으로 나오는 은정이의 큰 눈이 평소보다 더 커져 있었다. 화장실 안을 들여다보니 벽면에 다 쓴 생리대가 붙어 있었다. 화장실 칸에서는 오래된 피에서 나는 역한 냄새가 풍겨져 나왔다.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진짜 개념 없다. 화장실 벽에 초등생들도 안 하는 장난을 이렇게 해 놓고 나오냐. 고등학생 맞아? "
"야. W친구들. 이건 아니지."
"심각하네. 그렇다고 위생용품 보관함을 떼 버리는 건 말이 안 돼. 제대로 처리하도록 교육을 해야지."
어떻게 교육해야 할까.
누가 위생용품으로 장난을 하는지 확인을 하기는 어렵다. 결국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지켜야 화장실 사용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중학생 때는 위생용품 보관함은 당연히 있는 것인 줄 알았다. 검은 봉지에 넣어서 따로 버려야 하다니. 과거로 돌아간 듯 말도 안 되는 사용법이지만 그래도 화장실 좀 깨끗하게 쓰자 얘들아.
끝까지 수거함 설치가 안 되면 민원을 넣어야겠지. 꼭 필요한 것은 계속 얘기해야 한다. 엄마에게 늘 듣는 말이다. 평범하고 깨끗한 화장실이 그립다. 지하철 화장실, 카페화장실, 식당화장실, 맥도날드 화장실에도 다 있는데 우리 학교엔 위생용품 수거함이 없다.
대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3조 및 제7조에 의하면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청사와 그 부대시설의 대변기 칸막이 안에는 휴지통을 두지 아니할 것.
다만, 여성용 대변기 칸막이 안에는 위생용품을 수거할 수 있는 수거함 등을 두어야 한다 “고 규정되어 2018.1.1부터 시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