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4. 곱창전골과 휴지의 상관관계

손세정제도 없어요?

by 현이

윽. 이게 무슨 냄새야?

오늘 메뉴 뭐냐?

맛있는 곱창은 냄새 안 나던데.

아아. 오늘 곱창전골이구나. 11월 됐으니 나올 때 됐다.


급식실에 들어서자 곱창전골 냄새가 코를 찔렀다. 집에서 살코기를 주로 먹는 여고생들은 곱창전골에서 풍겨오는 누린내에 저마다 한 마디씩 불편한 기색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나도 당장 나가서 컵라면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싶은 맘이 간절해졌다. 하지만 매점 컵라면은 편의점에 비해 터무니없이 비쌌고 햇반 없이 먹으면 양이 적었다. 어쩔 수 없이 식판을 들고 줄을 따라 배식대 쪽으로 향했다. 흰밥, 곱창전골, 깍두기, 떡볶이, 초콜릿.


오늘은 곱창전골이라서 고기가 없네.

곱창도 많이 안 주면서 불고기라도 주지.

그래도 떡볶이 있으니까 같이 먹자. 오늘 떡볶이는 좀 맛있네.


중학교 때까지는 날마다 고기 메뉴가 있었는데 여전히 폭풍 성장기인 고등학교 급식에는 고기 배식 양이 많지 않다. 어제 수육을 담은 칸에는 고기 주변으로 은색 식판 바닥이 보였다. 고기 대신 주는 떡볶이는 어떤 맛일까. 반신반의하면서 한 입 베어 물었다. 음. 오늘은 치즈 떡볶이네. 치즈가 쫀득하고 고소하니 맛있다. 두 번째 떡을 젓가락으로 집어서 먹으려는데 옆친구가 급식을 다 먹고 일어났다. 그 바람에 친구와 팔이 살짝 부딪쳤다. 그 때 젓가락으로 집었던 떡볶이가 기름 둥둥 뜬 빨간 곱창전골 국물로 퐁당 떨어져 버렸다.


앗. 옷에 다 튀었네.

빠진 떡을 다시 집었지만 이내 다시 떨어졌다. 에이. 모르겠다. 일단 치떡 맛나게 먹자. 흰색 리스잠바에는 붉은 얼룩이 여기저기 생겼다.


소정아 너도 국물 튀었네

야. 우리 젓가락질 연습 더 하자.

있다가 교정 젓가락 사러 갈까?

포크숟가락을 이용하는 방밥도 있소.


화장실 거울에 비친 잠바 얼룩을 보니 벌써부터 엄마의 잔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내가 먼저 손세정제 누름 버튼을 눌렀다.


어. 안 나온다.

뭐? 안 된다고? 왜?

수민이가 다시 여러 번 눌렀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휴지 없는데 세정제가 있을 리 없지.

한 방울도 언 나온다. 이거 통만 설치하고 한 번도 안 채운 거 같다.

수민이의 후리스 소매와 내 후리스 지퍼 주변은 하교할 때까지 빨간 국물로 얼룩져 있어야 했다.


엄마 나 왔어

소정아! 패딩에 뭐 흘린 거야?

엄마가 저녁을 준비하다가 놀란 표정으로 흰색 잠바를 가리키셨다.

곱창전골 국물이 튀었어.

그럼 얼른 화장실 가서 세정제 묻혀서 지워야지. 그냥 놔두면 잘 안 지워져

세정제가 없어서 물로만 했어.

왜? 휴지 살 돈 모자라서 세정제는 당연히 못 사는 거야? 그럼 W여고생들은 흰색 옷 금지라고 학교 안내에 추가해야지.


엄마는 아직 휴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것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셨다. 이번엔 손세정제 문제까지 나오니 화가 나셨다. 게다가 요즘 회사에서 컴퓨터 작업을 많이 해서 손목보호대를 하고 다니신다. 그런데 내가 추가로 엄마한테 이런 부탁을 했다. 이래서 평생 육아라고 하나보다.


엄마가 좀 지워주세요. 아잉. 나 바쁘잖아.

너. 흰색 잠바 살 때 얼룩은 스스로 지운다 했잖아.

그렇지만 내일 수행평가 있어서 준비해야 하고 학원 숙제도 덜했어요.

다음번에는 네가 꼭 해. 엄마 손목이 요즘 시원치 않은 거 너도 알지?】

네. 어머니. 알겠습니다.

나의 재치 발언에 엄마의 얼굴이 환해졌다.

곱창전골 자주 나오네? W여고 학생들이 좋아하는 메뉴야?

아니. 애들은 냄새난다고 난리야.

그럼 교장선생님이 좋아하시는 음식인가. 엄마 회사에서도 곱창은 안 나오는 메뉴거든.


진짜 누가 교장실에 전화하면 좋겠어.

휴지. 세정제. 곱창전골....

그런데 교육청에 신고하면 누군지 다 알 수 있데. 우리 반 OO이도 체육수행평가 제출날짜에 오해가 있어서 낮은 점수를 받았거든. 선생님께 말씀드렸는데도 반영이 안 돼서 교육청에 말했더니 학교로 다시 연락이 간 거야. 그래서 1학기 수행점수가 모두 최하점이야. 그러니까 엄마 절대 전화하지 마.


뉴스에 익명으로 제보하면 어때?

안 돼. 그러다 모자이크 처리해서 학생들 인터뷰하면 W여고인지 다 알지도 몰라.

그럼 제보한 사람이 누구 엄마인지 찾아내는 건 시간문제야.


알았어. 안 해 안 해.

엄마가 낸 세금으로 우리 딸 화장실 휴지. 손세정제. 충분한 고기 배식을 못 받는다는 게 너무 속상하다.


가라앉은 기분을 다독이는 방법으로 수다만큼 좋은 게 있을까. 엄마는 저녁 식사를 마치고 동네 엄마들과 카페모임이 있다며 나가셨다. 나는 스터디 카페로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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