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급식 메뉴 뭐지?

eat like a horse

by 현이

몇 년째 출근길에 영어 라디오 방송을 들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어딘가 조금씩 낯선 월요일 아침에 음식에 관련된 표현을 소개하고 있다.


He eats like a pig.

돼지에서 느껴지는 거부감처럼 많은 양을 지나치게 먹는 사람을 표현할 때 쓰는 말이죠.


He eats like a horse.

먹는 양이 많지만 운동량이 많고 건강하고 날렵한 몸을 가진 사람을 표현하기 적절한 말입니다.


학급의 학생들을 떠올려보면 폭발적인 성장을 하는 사춘기라 잘 먹는 학생들이 여러 명 있다. 돼지국밥, 스파게티, 피자 등 입맛에 맞는 음식이 있으면 몇 번이고 추가 배식을 받는다. 다른 학생도 먹어야 하니 한 번에 많이 줄 수도 없어서 배식 도우미분들이 조금씩만 주시는데 여러 번 배식대로 가는 수고로움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지난번에 나온 애플파이는 5번까지 받는 학생도 있었다.


학교 점심시간은 1시쯤 시작된다. 규모가 큰 학교다 보니 배식 시간을 나누어서 저학년은 먼저 먹고 고학년은 나중에 먹는다. 그래서 10시나 11시쯤 되면 여기저기서 배고프다는 하소연(?)이 들려오고 급식 메뉴는 늘 화젯거리다. 매월 급식표를 바꾸는데 아이들의 관심과 사랑의 손길을 거친 뒤 급식표 모서리 사방이 마구 접힌 상태가 되면 다음 달이 된다.


아직 한 시간 남았네.

왜 이렇게 배고프지?

오늘 맛있는 거 나와.

내일은 맛있는 것만 나오는 수요일이야.


땀 흘리는 체육수업을 하거나 글쓰기나 그림 그리기를 하는 문예대회에 참여하고 나면 몇몇 학생들은 눈빛에 힘이 없다. 바른 자세로 앉아 있다가도 자꾸만 책상에 엎드리는 자세로 변해간다. 그럴 때 한 번씩 간식을 주면 반응이 폭발적이다. 지난주 문예대회를 마치고 수채화 물통 정리와 화장실 청소상태 점검까지 마친 뒤 아이들에게 크래커를 한 봉지씩 나눠줬다.


지금 배 고픈 사람 있어요?

저요. 저요.

그럼 선생님이 간식 줘야겠네. 맛있게 먹을 거예요? 그리고?

감사합니다.

역시! 예의 바른 우리 반이네.


그렇게 개인별로 한 봉지씩 나눠주고 나서 학생들의 그림을 한 장씩 살펴보고 아직 그림을 제출하지 않은 학생이 있는지, 모두 대회 주제에 맞는 그림을 그렸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처음에 그림을 보고 눈을 의심했다. 우리 반 교실 모습을 그림으로 만나다니. 그리고 내가 주는 간식에 이렇게 감사함을 느끼는 학생이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대회 주제는 그림에 나온 것처럼 우정, 감사, 여행이었다.

그림을 그린 학생은 학업 수준이 뛰어나거나 학급 임원을 맡고 있지는 않지만 손재주가 많고 계단 청소를 깔끔하게 잘하는 친구다. 주변 정리를 깨끗이 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가끔 지나친 솔직함으로 친구를 대해 상처를 주기도 한다. 그래서 한동안 잔소리도 자주 듣고 아이들과 갈등이 있었던 도진(가명)이다.


선생님을 그린 거니?

네. 간식 주실 때 진짜 감사했어요.


웃음을 참으며 나머지 그림을 훑어보았다. 도진이에게 이것저것 좀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예를 들면 다음번엔 선생님을 좀 더 예쁘게 그릴 수 있겠냐. 가장 감사한 순간이 간식을 먹을 때였냐. 아이들은 안 그리고 선생님만 그린 이유가 있느냐. 와 같은 질문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하지만 이건 대회고 나중에 충분히 물어볼 수 있는 질문이니까 오늘은 여기까지 하기로 했다.


점심을 먹고 교실에 올라와보니 전학 가는 학생이 물건을 챙기고 있다. 급식실에 두고 온 친구들의 물건을 챙겨 온 남학생들이 아쉬운 맘을 담아 가은(가명) 이를 쳐다보며 멈칫멈칫 무언가 말을 걸려고 했다. 그래서 내가 먼저 아이들과 대화를 시작했다. 그러니 다들 자기 얘기하느라 집중하면서 볼이 발갛게 물들었다.


오늘 급식 맛있었니?

남학생들 : 네. 그런데 이제 가은이는 맛있는 급식 못 먹겠네.

새 학교도 큰 학교라서 맛있는 메뉴 많이 나올 거야.

가은: 맞아요. 랍스터나 연어회 나오면 좋겠어요.

(랍스터나 연어회를 급식으로?)


가은이가 새 학교에 대한 기대가 큰 것 같다. 상상력이 풍부한 학생이니 이야기 속 가장 멋진 학교를 그리고 있는 듯했다. 전학 소식을 처음 전하면서 다른 학교로 가고 싶지 않다고 했었는데 이제 이사하고 나니 맘을 잡은 것이다. 가은이가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면 좋겠다. 선생님이 응원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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