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하기 좋은 날

7강) 강렬한 첫 문장 쓰기

by 현이

지민이는 왜 그럴까? 막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마침내 중문을 열었다. 열린 지민이의 방문 사이로 잔뜩 쌓아놓은 책이며 옷가지들이 눈에 들어온다. 연휴라 정리할 시간이 충분했을 텐데 방 안 가득 물건들을 늘어놓았다. 몇 달 전에 받은 생일선물 택배박스는 아직 개봉하지 않은 채로 구석에 가만히 놓여 있었다. 교과서와 각종 학원교재들은 분류되지 않고 표지가 구겨진 채로 바닥에 엎드린 상태였다. 주인처럼 시험공부에 지쳐 버린 걸까. 어질러진 방 안도 눈에 들어오지 않을만큼 지민이의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건 뭘까?


“ 지민아, 교복 빨아야지. 다른 빨래거리도 지금 챙겨서 가져와. 정리는 오늘 하는 거야?”

나는 자꾸 입 밖으로 나오려는 여러 잔소리 표현들을 삼키며 최대한 간결하게 말했다. 탁 트인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쾌적한 호텔 객실에서 시간을 보내고 오니 집안의 어질러진 물건들이 전보다 두드러지게 거슬렸다. 홍삼 스틱 하나를 뜯어서 꿀꺽 삼키니 진한 홍삼향이 느껴졌다. 홍삼이 몸속에 퍼지니 피곤해서 거슬렸던 집안일들이 어쩐지 쉬워 보였다. 이제 주부의 역할을 하나씩 해치우면 된다. 먼저 빨랫감을 세탁기에 넣고 세제통에 세제를 담은 뒤 문을 닫았다. 돌아서서 나오는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어. 고장 난 건가. 아니다. 아직 시작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지민이는 언제 나오려나.


지민이의 방으로 가 보니 아직 음악을 들으며 아이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 피곤하니까 쉬었다 정리할게요. ”

“ 언제 시작하려고? ”

“ 10분 뒤요.”

내 맘대로 되는 세상이라면 아이 앞으로 다가가 화난 눈빛으로 물건들을 가리키며 소리를 질러댔겠지. 지금 당장 청소해. 대체 며칠째 미루고 있는 거야. 어제 호텔 방 보고 깨끗하다고 하더니 왜 아직도 정리 안 하는데! 엄마가 한 번 더 말하면 100번이다. 그러면 아이도 대꾸를 할 것이다. 엄마 왜 소리 질러요! 나도 좀 쉬자고. 내 방에서 빨리 나가요. 나 문 잠글 거야.


이건 아무도 원하지 않는 결말이다. 대본을 바꿔야 한다. 그래서 나는 말없이 아이의 방을 나와 아무렇지 않은 듯 세탁기의 동작 버튼을 누르러 간다. 기계는 버튼을 눌러 명령을 내려 줘야 일을 시작할 수 있으니까. 여고생은 스스로 시작할 수 있다. 세탁기가 10분 일을 한 뒤에 아이는 정리를 시작할 것이다. 핸드폰 타이머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다. 곧 깨끗해질 아이의 방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10. 9. 8... 이제 얼마 안 남았다. 잠시 기다렸더니 평화로운 청소시간 대본이 완성되고 있다. 엄마도 맘의 여유가 필요하다.

매거진의 이전글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