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머셋 몸 <인생의 베일>
서머셋 몸은 청소년기가 되기도 전에 부모를 잃고 삼촌의 손에서 자랐다. 의사였지만 첫 번째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자 작가로 전업했다. 자전적 소설인 <인간의 굴레에서>와 고갱을 모델로 예술 세계를 다룬 <달과 6펜스>, 철학을 담은 에세이 <작가수첩> 등 다양한 작품활동을 했다. 불륜을 통해 성장하게 되는 주인공 키티의 변화모습을 보여주는 소설 <인생의 베일> 역시 가독성이 높고 의미 있는 가르침을 주는 내용이었다.
불륜을 다룬 소설이라 흥미 위주의 내용일 꺼라 짐작했는데 기대이상의 메시지를 담고 있어서 읽는 데 들인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키티는 자신보다 못난 외모를 가진 동생 도리스의 결혼이 다가오자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래서 사랑하지도 않는 세균학자 월터와 서둘러 결혼을 결정했다. 결혼보다는 이탈리아 신혼여행에 더 관심이 있었다. 결국 부부동반 모임에서 만난 부총독 타운샌드와 불륜에 빠지게 된다.
1년 동안 위험한 사랑을 하다가 마침내 남편이 사실을 알고 키티에게 함께 전염병이 창궐한 오지로 떠나자고 한다. 이 선택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 이혼 후 타운샌드와 1주일 내로 결혼하는 것이다. 키티는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타운샌드의 사무실로 한달음에 달려가지만 타운샌드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그는 키티보다는 자신과 자신의 가정, 자신의 출세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었다. 키티는 눈앞이 캄캄했다.
늘 키티의 사랑을 갈구하던 월터는 메이탄 푸에 가서 전염병 관련 연구에만 몰두했다. 키티는 근처 수녀원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아이들을 돌보고 수녀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다른 사람의 삶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게 된다. 자신과 다른 관점을 접하면서 키티는 조금씩 성장하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남편은 콜레라에 감염되어 사망하게 되고 키티는 임신한 몸으로 홍콩으로 돌아온다. 타운샌드는 아내 도로시의 제안에 따라 위로의 명목으로 자신의 집에서 키티를 머물게 한다. 하지만 타운샌드의 기세에 눌려 키티와 타운샌드는 다시 한번 부정한 짓을 저지르고 내면의 성장을 경험한 키티는 전과 다르게 죄책감을 느낀다.
부모님이 계신 영국으로 돌아간 키티는 어머니의 죽음을 맞는다. 늘 아버지를 돈 벌어오는 기계로 취급하며 더 높은 지위에 오를 것을 요구했던 어머니였다. 그런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아버지는 안도감을 느낀다. 키티는 아버지에게 미안함을 느끼며 자신을 사랑했던 남편 월터를 함부로 대했던 자신의 모습까지 떠올리게 된다. 그러고는 승진해서 멀리 떠나려는 아버지에게 함께 지내자고 간절히 청한다.
<뇌우> 이후에 두 번째로 불륜 소설을 읽었다. 영화로도 제작되었으나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영상을 볼 때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감독이 보여주는 대로 빠르게 판단하기 마련이지만 소설을 읽다 보면 인물의 생각까지 글로 정확하게 표현해 낼 수 있어서 독자는 인물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고 자신의 취향에 따라 그 속도도 조절할 수 있는 점이 매력이다.
불륜 소설이라 단순히 흥미 위주일 거라 생각했는데 주인공 키티의 성장에 초점을 맞춘 점이 인상적이었다. 재력을 갖춘 상류층이라고 행복이 보장된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의 관점을 이해하고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삶의 태도를 갖추었을 때 의미 있는 생을 살아갈 수 있다. 키티는 충동적인 사랑의 비극적 결말을 경험한 뒤 규칙적인 수녀원 봉사활동을 하면서 몰랐던 삶의 가치에 눈을 떴다. 그 결과 보잘 것 없어 보이던 남편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어린 시절부터 가족을 위해 희생하며 살았던 아버지가 얼마나 고단한 삶을 살았는지 절절하게 느낄 수 있었다.
서머셋 몸의 소설을 즐겨 읽는 지인과도 이 책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고 싶다. 흘러가는 이야깃거리로 지나칠 수 있는 사건을 깨달음이 있는 소설로 엮어내는 작가의 솜씨도 수준급이다. 작가의 다른 책도 읽어봐야겠다. 2월 독서모임에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완독했으니 감상을 브런치에 남겨보았다. 3월 독서모임에는 꼭 참여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