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 1편 -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고 한다면

위스키의 향기를 찾아서

by 현이

2000년에 출판된 책을 2020년에 사진보강 등의 편집과정을 거쳐 다시 출판하였고 2024년 생일에 아이가 이 책을 선물해 주었다. 브런치 글쓰기 모임 <몹글>의 회원분께서 추천하셨고 늘 관심 있는 주제인 술에 대한 책인 데다 무려 하루키의 여행 에세이라 생일이 다가오던 어느 주말, 나는 서점에서 이 책을 덥석 집어 들었다.


싱글몰트 위스키 VS 블렌디드 위스키

물이 맑은 지역에서는 술맛도 좋다고 한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위스키가 맛있고 아일랜드에서는 맥주 맛이 좋다. 두 지역에는 물을 정수하는 기능이 있는 이탄과 토탄이 땅 속에 풍부하기 때문이다. 위스키의 맛을 느끼는 여행 에세이를 읽으면서 싱글몰트 위스키가 마시고 싶어졌다. 위스키 양조장 사람들은 보리만으로 만든 싱글몰트 위스키의 맛을 다른 곡물을 섞어 만드는 블렌디드 위스키와 분명히 구분하고 있다.


"싱글 몰트가 앞에 있는데 블렌디드 위스키를 마시는 건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려는 순간에 텔레비전 재방송 프로그램을 트는 거나 마찬가지가 아니겠소?"


기네스 흑맥주와 기네스 북

세계의 진기한 기록을 기록하는 기네스 북 역시 기네스 사의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1950년에 기네스북을 시작하기도 한 기네스사는 노동자들을 위한 임대주택을 제공하는 등 다양한 복지혜택을 제공한다. 1750년부터 시작한 기네스 흑맥주 사업은 현재 여러 주류 기업을 합병하고 번창하고 있으며 현재는 디아지오로 기업명을 변경하였다. 더블린에 가서 흑맥주를 직접 마시지는 못하지만 위젯이라는 플라스틱볼을 활용해 기네스는 세계 각지에서도 부드러운 거품을 즐길 수 있도록 캔맥주를 생산해 수출하고 있다. 처음에는 맥주 속 불순물인가 의심이 들었지만 캔을 딴 뒤에 위젯에서 나오는 질소 가스 덕분에 어디서나 풍부한 거품과 함께 흑맥주를 마실 수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지. 최근에는 기네스 콜드브루가 출시되었으니 커피 향 그윽한 흑맥주를 마셔보자.

친밀한 언어 VS 한정된 언어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면.... 나는 잠자코 술잔을 내밀고 당신은 그걸 받아서 조용히 목 안으로 흘려 넣기만 하면 된다. 너무도 심플하고, 너무도 친밀하고, 너무도 정확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세상의 온갖 일들을 실제 취하지 않는, 맨 정신과 다른 무엇인가로 바꾸어 이야기하고, 그 틀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주 드물게 오는 행복한 순간에 우리의 언어는 진짜 위스키가 되기도 한다. 나는 늘 그러한 순간을 꿈꾸며 살아간다.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면. "


하루키는 규칙적 일과를 지키며 성실하게 글을 쓰는 작가다. 그의 일상은 단순하고 목적에 충실하다. 위스키를 마셔본 적은 없지만 하루키처럼 그 맛이 꾸밈이 없고 깔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련된 문장을 구사하고 술을 즐기는 하루키는 우리의 언어를 위스키에 비유하여 정직하고 단순한 언어 표현에 의미를 부여한다. 솔직한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상황을 행복하다고 표현하며 그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것이다.


어떤 위스키를 선택할지, 어떤 언어를 구사할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우리는 나름의 가치 기준에 맞춰서 여러 가지 결정을 한다. 분명한 것은 하나를 선택하면 나머지는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무언가를 버리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다. 내 삶에서 당면한 선택은 무엇이고 포기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돌아보게 된다. 책을 읽는 내내 하루키의 시선으로 영국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를 여행하며 초록 들판과 시원한 바람을 맞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아직 마셔보지 못한 위스키의 향이 책 속에서 조금씩 뿜어져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