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있던 간송미술관 작품들을 이제 대구에서도 볼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봄, 가을 2주만 볼 수 있었던 서울 전시와 달리 대구 상설 시립 미술관인 간송미술관에서 개관 기념으로 12월 1일까지 관람할 수 있다. 대구시민은 할인도 받을 수 있고 청소년 입장은 5000원이라 부담 없이 볼 수 있어 전국 각지에서 관람객이 몰려들고 있다.
간송 전형필은 교육가이자 문화재 수집가로 문화재가 일본에 넘어가는 것을 막았으며 광복 후에는 보성중학교 교장과 문화재 보존위원을 역임하신 분이다. 조상 대대로 종로의 상권을 장악했던 부호집안이라 당시 재산이 현재의 가치로 따지자면 약 3000억 원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 재산을 허투루 쓰지 않고 문화재를 보존하는 데 투자하였다.
간송미술관의 전신인 보화각을 1938년에 설립하였다. 보화각은 조선의 보배를 두는 집이라는 뜻으로 이후 간송미술관으로 이름을 바꾸어 운영되었다. 간송미술관은 리움미술관, 호림박물관과 함께 서울의 3대 사립 박물관으로 봄, 가을 전시 때에는 관람객이 넘쳐났다. 신윤복을 소재로 한 드라마 <바람의 화원>이 인기를 끌자 간송미술관에 신윤복의 그림을 보러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사람들에게 더 많은 관람기회를 제공하고자 DDP에 미디어아트를 활용한 그림을 전시하기도 했다. 서울 보화각에도 쓰인 글귀 <여세동보>는 이번 개관전시의 주제로 보물을 함께 보자는 뜻으로 간송이 미술관을 설립한 목적이기도 하다. 관람객들은 간송 전형필이 꿈꾸었던 것처럼 신윤복의 미인도를 비롯한 진귀한 우리의 문화재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청자상감운학문매병, 청자오리형 연적, 분청사기상감모란문합, 분청사지연화문병, 청자상감연지원앙문정병,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 등의 도자기는 금이 가고 가는 줄로 고정이 되어 있었으나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어서 관람객들은 작품 앞에서 감탄을 금치 못하는 모습이었다. 한글날을 앞둔 주말이라 훈민정음의 사용법을 기록한 훈민정음 해례본을 보니 벅찬 마음이 두근거렸다. 물질만능시대에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전형필과 후손들의 선한 행동을 떠올려 보았다. 잔잔한 깨달음이 맘 속 깊이 전해져 왔다. 실천하는 지성인의 모습에서 우리 한국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보이는 것 같았다.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은 어릴 적 도자기 중의 으뜸이라고 내 마음속에 기록해 둔 문화재라 직접 보니 감동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컴퓨터가 없던 시절 고운 청색 도자기에 조화롭게 학 문양을 넣기 위해 고심했던 도공들의 열정과 정성을 다했던 시간들을 떠올려보았다. 최선을 위해 노력하는 그 마음들이 우리 대한민국을 발전시켰고 여전히 계승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맘이 뭉클해졌다. 휴일에 가서 관람객들이 붐비는 상황이라 신윤복의 그림을 제대로 못 봤다. 신윤복을 소재로 한 <바람의 화원>과 장승업의 일대기를 다룬 <취화선>을 보고 관람객이 적은 시간에 가서 남은 감동을 느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