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크리스마스를 처음 만난 날
주말 저녁에 친한 후배 은지를 만났다. 북클럽에서 책얘기를 하며 친해졌는데 주관이 뚜렷하고 새로운 것을 탐구하는 것을 좋아하는 성향이 눈에 들어왔다. 비슷한 사람을 보면 끌린다. 어느덧 쌀쌀해져서 겨울이 다가왔음을 느낄 수 있는 11월의 저녁을 함께 하기로 했다.
"멕시코 음식 어때요?"
"좋아요. 색다르고 급식메뉴에 나왔던 쾌사디아 등 여러 가지를 맛볼 수 있겠네요."
친하지만 좀처럼 말을 놓지 않고 예의를 차리는 우리들의 대화.
<토마틸로>에 들어서니 벽과 테이블 주변에 화려하게 꾸며 놓은 크리스마스 장식이 보였다. 올해 크리스마스는 어떻게 보내게 될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먼저 메뉴를 주문하기로 했다.
상그리아, 브리또, 나초, 타코, 퀘사디아를 모두 맛볼 수 있는 우정셋트를 주문했다. 상그리아는 레드와인에 슬라이스한 과일과 감미료를 넣어 만든 음료로 스페인어로 피(sangri)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와인 베이스의 음료다. 스페인 베네딕트 성당에서 12제자 조각상을 향해 손을 들고 소원을 빌었다. 그때의 소원은 인생의 동반자, 소울메이트가 생기는 것이었다. 물론 남친을 뜻하는 것이다. 2년이 되어 간다. 소원을 마음을 다해 빌지 않았었나. 이번 크리스마스도 우정을 나누며 보낼 듯하다.
"OO 부장님 얘기 들었어요? 나쁜 짓을 하긴 했지만 끝이 너무 안타깝더라고요. 내연녀가 작정하고 녹음을 하니 꼼짝없이 걸려서 자살까지 하고. 가족들 심정이 어떨지..."
은지는 최근에 있었던 불륜남 사건을 꺼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회 현상에 관심이 많은 우리는 뉴스거리를 얘기하며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편이다. 오늘은 오피스 와이프로 시작하게 되었다.
"그래. 서로 맘이 통했지만 배우자가 있는 상태에서 정상적인 연애를 하기는 어렵지. 원치 않는 원나잇이 반복되니 여자 쪽에서도 힘들었을 거야. 자신을 지키기 위해 한 행동인데 한 때 사랑했던 연인이 자살에까지 이르렀으니 맘이 진짜 복잡하겠다. "
" 오피스 와이프, 오피스 허즈번드라고 하면서 부부 사이도 아니며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이 요즘 많다고 하네요. 이해하기 어려워요."
"그렇지. 외국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던 그런 아슬아슬한 관계들을 유지하면서 어떻게 결혼관계를 유지하는지. 전보다 결혼이나 연애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진 것 같아. 하지만 바람직한 방향은 아니지. 애들은 무슨 죄야. 애들도 부모님의 관계가 달라지는 과정을 보게 될 테니 결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생길 수도 있고."
" 맞아요. 안 그래도 출산률이 낮아서 걱정인데. 벌써 음식 나왔네요. 식기 전에 얼른 드세요."
깍듯하게 예의를 갖추는 후배가 퀘사디아, 나초, 타코, 브리또가 가득한 나무 쟁반을 가운데에 놓고 음료 위치를 조정했다.
나는 은지 나이 때에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았을까. 의젓하고 정보도 빠르고 부지런한 후배님. 후배님의 남친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