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회사의 성격 유형
3장. 과업에 있어서의 진정성
우리는 성인이 된 후 '일'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면서 삶을 영위합니다. 정시에 출근하고, 칼같이 퇴근하는 이상적인 상황에서도 일주일에 5일씩, 하루에 8시간 이상을 일에 투자하고 있으니 절대적인 시간으로 봐도 '일'이 중심인 삶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기본 모드는 "일에서 자유로운" 점심시간과 퇴근시간 / 주말과 빨간 날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지친 마음이 입은 재킷의 안주머니에는 일과의 결별을 의미하는 빛바랜 사표가 자리한 지 오래입니다.
취업을 꿈꾸며 그렇게 애를 썼는데, 입사한 다음 날부터 퇴사가 꿈이 되는 아이러니라니요. 이 아이러니의 가장 즉각적인 대답은 내 시간 및 건강과 조금씩 맞바꾸는 월급입니다. 쉽게 답은 내렸지만 씁쓸하기만 합니다. 한 번뿐인 내 삶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일의 의미"가 고작 "가장 흔한 설치류의 꼬리"라니 말입니다.
일에 대한 의미에 대해 고민을 다시 한번 해야 하는 시점입니다. 불확실과 급격한 변화의 시대에 고민한다고 딱 부러지는 답이 나올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고민해 보는 것" 자체에 분명히 의미가 있습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한다는데, 사람으로 태어나서 한 번 꿈틀 해봐야 후회가 없을 테죠.
제가 존경하는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도 수십 년 전에 같은 취지의 말씀을 하셨네요.
인간은 인간 본질을 생계비 벌이에 투자하고, 대부분 인위적으로 조장된 쉼 없이 증가하는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 인간의 힘을 이용한다. 그러느라 자신이 인간임을 망각할 위험에 처한다. 따라서 인간 본질을 바라보는 전통적 시각을 새롭게 고민하기가 지금보다 어려운 때가 없었으며, 지금보다 시급한 때도 없었다.
(에리히 프롬,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중에서)
수십 년 전 문제의식이 아직도 유효한 것을 보면, 풀기 힘든 난제임이 분명합니다. 게다가 AI와 로봇의 발전이라는 거대한 변수가 등장한 이 시점은 일의 의미와 진정성에 대한 고민이 더욱 절실한 것 같네요.
일의 의미를 고민하는 시작점으로 "일과 나의 관계"를 관계의 진정성 정의에 넣어 보려고 합니다. 내가 하는 일이 단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이라면 그 일에는 진정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일은 수단이고 돈이 목적이라면, 사기나 도둑질도 수단으로써 정당화될 것입니다. 반대로 "일" 자체가 목적이라면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에서 진정성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일을 노동(Labor)과 작업(Work)으로 나누었는데요. 노동은 단지 생존을 위해 소비해야 하는 것들을 위한 활동으로, 작업은 창의력을 발휘하여 예술작품을 만들거나 장인정신으로 공예품을 빚어내는 것, 훌륭한 지식이나 제도를 만들어 내는 것 등으로 정의했습니다. 일에 있어서 노동은 수단이고, 작업은 목적일 수 있는 것이죠.
철학적인 내용이 흐린 하늘에 지나가는 회색 구름 같기도 합니다. 파란 하늘에 떠 있는 흰색 구름이라면 잡아 보겠는데 말입니다. 이런 고민을 하던 중에 "회사와 직원과의 관계"를 다룬 책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바로 서울대 강성춘 교수님의 <인사이드 아웃>이라는 책입니다.
일은 너무도 다양합니다. 반면 일을 하는 물리적 장소이자 고용을 통해 일을 부여하는 회사라는 법인은 그나마 일 그 자체보다는 구체적입니다. 위의 그림은 마치 MBTI와 같이 기업의 성격을 나누고 있습니다. 강성춘 교수님의 설명을 들어보시죠.
직무성과주의에서 기업이 직원들에게 기대하는 일차적 의무는 자신이 맡은 직무에서 성과를 달성하는 것이며, 직원들이 회사로부터 기대하는 일차적 보상은 급여 같은 경제적 보상이다.
내부노동시장형에서는 직원들이 충성심에 대한 대가로 기대하는 일차적 보상은 고용 안정이다.
스타형에서 직원들은 회사로부터 경제적 보상이나 고용 안정보다 그들의 ‘시장 가치’를 높여줄 것을 기대한다.
몰입형에서 직원들은 협력과 헌신에 대한 대가로서 소속감, 존중, 애정 같은 내재적 보상을 얻을 수 있다.
저는 제가 회사 생활을 하는 내내 조직의 성격을 몰입형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과업에 있어서의 진정성을 실현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책에서 설명하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의 기업은 직무성과주의와 내부노동시장형이 많습니다. 이런 역사적인 증거들을 통한 기업의 성격은 '일'이 어떻게 정의되고 의미를 가질 지에 대해 큰 영향을 미칩니다. 저는 이 책에서 큰 맥락 속에서 기업과 일을 바라보는데 큰 도움을 얻었습니다. 각 유형에 대한 친절한 설명을 원하시면 <인사이드 아웃>이라는 책을 추천해 드립니다. 픽사의 영화 <인사이드 아웃> 만큼 재미있습니다.
앞으로 두 챕터에 걸쳐 일에 있어서의 진정성에 대해 더 논의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