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정은 북돋고, 욕심은 인정하되, 탐욕은 반대한다.
"HimayItakeyourorderplease?"
무슨 말일까요? 히말라야 산맥에서 무사히 산에 오르게 해 달라는 뜻의 네팔어 같아 보이지만 아닙니다. 친절하게 띄어 써 보면 바로 의미가 들어옵니다.
"Hi? May I take your order please?" "안녕하세요? 주문하시겠습니까?"
또 다른 의문이 생깁니다. 왜 의미가 명확하게 들어오지 않게 띄어쓰기를 않는 것일까요? 바로 띄어 쓰는 공간에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2000년 월스트리트 저널의 보고에 따르면, 햄버거 체인점 웬디스의 점원들이 '안녕하세요주문하시겠습니까?'라고 빨리 발음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경영진들은 환호를 지르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자랑스럽게도 웬디스의 지침서보다 2초나 단축되었다."
콜센터 경영진은 노동자들이 please나 thank you와 같이 불필요한 단어를 쓰지 않음으로써 단 1,000분의 1초라도 아끼기를 원한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 어떤 기업들은 친절한 의사소통이 판매에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하면 그러한 단어들을 치밀하게 대본 안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이윤을 늘리는 데 보탬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그러한 단어들은 가차 없이 제거된다.
(마이클 페렐먼, 기업권력의 시대 중에서)
작업 현장에서 초시계를 들고 직원들의 업무를 쪼개 분석해서, 이윤에 배치되는 것은 모조리 없앱니다. 이런 철학을 가진 기업이 앞서 소개한 강성춘 교수님의 4가지 기업의 성격유형 중 직무성과주의(테일러주의)입니다. 이런 성격을 지닌 기업의 직원들은 업무에 있어서 작은 자율성도 허락되지 않는 성과의 도구, 이윤의 수단에 불과합니다. 진정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주문 빨리 받는 정도로 그치면 좋겠는데, 이런 철학은 끝없이 확장되어서 이윤을 위해 사람의 생명을 돈으로 환산합니다.
조기 사망으로 복지 비용을 줄여 준다고 정부를 설득하는 담배 회사나 명백한 결함이 있음에도 리콜 비용이 사고로 인한 보험료 지불 비용보다 비싸다는 이유로 리콜을 하지 않은 자동차 회사의 사례가 그렇습니다.
"오로지 이윤만 추구하는 회사는 사회를 지탱하는 윤리를 무너뜨린다."
이윤과 윤리, 회사와 사회가 글자 순서만 바뀐 두 쌍의 단어의 우연한 대결이 흥미롭습니다.
가끔씩 뒤집어 보면 숨어 있는 진실이 보일 때가 있습니다. 누군가가 은밀하게 숨겨 놓은 부활절 달걀(이스터에그)이건, 그저 우연의 일치이건 말이죠.
어느 봄날 이런 생각을 하며 버스를 타고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창밖을 바라보다 "풉~" 하고 뿜을 뻔했죠. 창밖의 풍경에는 부동산 중개 업소 벽에 "자이 24억 매매"라는 A4용지 출력물이 붙어 있었습니다. 제 머릿속에는 글자 순서 바꾸기 프로세스가 돌아가고 있었고요. "자이"라는 아파트 브랜드를 거꾸로 하면 "이자"라는 차가운 진실이 버젓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친절하게도 "자! 이 아파트 사려면 대출 이자가 숨어 있으니 조심해"라는 경고를 숨겨 놓은 것 같았습니다.
일을 수행하는 마음가짐을 원심 분리기에 넣어 분리한 뒤 "이윤과 윤리의 구성 비중"을 따져보면 열정-욕심-탐욕의 스펙트럼상에 위치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윤리라는 안전 펜스를 넘어 이윤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탐욕"입니다. 흡연자가 조기 사망해야 재정적 안정을 가져온다며 정부를 설득하는 담배 회사의 마음이 그러합니다.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죠.
패스트푸드 점에서 주문을 비교적 빨리 받으라는 정책은 욕심 수준으로 이해해 줘도 될까요? 패스트푸드를 표방하고 있으니 조금 말을 "패스트"하게 해도 손님이 기분 상할 정도는 아닐 겁니다. 하긴 요즈음에는 키오스크가 있어서 말을 빨리 할 필요도 없겠습니다.
이렇게 "하고자 함의 스펙트럼"은 우리 사회가 넘지 말아야 할 윤리의 선을 정하는 데 있어서 효과적입니다. 우리 사회는 구성원들이 동의할 만한 "윤리적 기준"을 제시하는데 서툽니다. 구성원들이 저마다 다른 윤리적 기준을 가지고 있을 때 배제와 갈등, 혐오의 문화를 만들어 결국에는 모두가 손해인 사회가 됩니다.
우리나라의 정치세력이 교체될 때를 보면, 지나친 탐욕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집권하거나(보수 세력), 지나치게 도덕적인 관점을 가지고 욕심조차 갖지 못하게 해서 정권을 잃는 경우가 많았습니다(진보 세력).
열정은 모든 국민들이 북돋아야 한다는 것을 인정할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정책이란 이름으로 구현되는 금지의 경계선을 열정과 욕심 사이에 그을 것인지, 욕심과 탐욕 사이에 그을 것인지, 금지 자체가 없어도 되는 것인지에 대한 합의를 이뤄야 합니다. 완전한 합의에 다다르지 못해도, 합의에 대한 시도가 필요합니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바탕으로 다수가 동의할 만한 한 문장의 윤리적 기준은 이렇습니다.
"열정은 북돋고, 욕심까지는 인정하되, 탐욕은 반대한다."
우연히 부동산 이야기가 나왔으니 위의 윤리적 기준을 부동산 문제에 적용해 볼까요?
열정은 내 집 마련을 향한 노력입니다. 안정적 주거는 건강과 안전을 위한 기초적 환경입니다. 따라서 개인들의 내집 마련을 위한 노력은 어떻게든 북돋고, 정책적으로도 지원해 줘야 합니다. 실거주하는 1주택 소유자는 아무리 집값이 올라도 별 이익이 없습니다. 오히려 세금만 많이 냅니다. 집을 팔아 이익을 보았다고 해도,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갈 때 그 집도 역시 올라있기 때문에 거래비용을 빼면 실익이 없습니다.
부동산 시장에서의 욕심은 어떤 모습일까요? 집을 한 채 더 가지고 월세 수입이나 양도 소득을 얻으려는 것입니다. 한 개인이 두 채 이상의 주택을 소유하는 것은 욕심의 경계를 벗어나 탐욕의 영역에 진입한 것입니다. 단, 기혼자 커플의 경우, 각자의 명의로 1인 1주택을 가졌을 때, 주택 한 채로부터 추가 수입을 얻는 정도는 욕심의 범주로 인정해 줄 수 있을 것 같네요. 자신이 주거하는 집의 크기를 키우거나 자재에 투자하는 고급화 노력은 욕심 수준에서 인정해 줘야 합니다. 높은 주거가치를 향한 노력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습니다. 투자가치를 위한 노력은 집값을 높이기에 타인과 우리 사회에 피해가 됩니다.
탐욕은 어떤 개인이든 두 채 이상의 집을 소유하고, 양도 소득이나 임대 소득을 올리려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탐욕은 탐욕을 부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집을 소유하려고 할수록 집값은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1인이 1주택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사실상 이익을 볼 수 없을 정도의 억제책을 써야 합니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사유재산을 내 맘대로 쓰겠다는데 왜 이렇게 규제를 하냐는 불평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도 사람들을 위해 있는 수단일 뿐입니다. 그 자체로 목적인 인간을 수단에 불과한 자본주의에 끼워 맞출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열정 - 욕심 - 탐욕의 스펙트럼을 이용해서 욕심까지는 적절하게 이용하고, 탐욕의 영역은 철저하게 억제하는 방법이 모든 사람들의 동의를 얻는다면 우리는 불필요한 소모적 갈등을 줄여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