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그림자

[악령] 도스토예프스키

by GONDW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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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보여주었던 것처럼 나름 독실한 기독교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던 도스토예프스키에게 서유럽에서 흘러들어온 무신론과 개혁사상은 매우 위험한 것으로 보였다. 투르게네프가 '아버지와 아들'에서 이야기한 바로 그 주제를 좀 더 복잡하고 음울하게 '악령'에서 다룬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세계최초의 공산혁명이 불과 수십년 뒤에 러시아에서 일어났고 도스토예프스키가 의도했건 하지 않았건 '악령'은 그 예언서 취급을 받아야했다. 그리고 뒤이은 스탈린의 철권통치는 도스토예프스키가 우려한 상황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었다.



새로운 혁명적인 이데올로기가 대두가 되면 기존의 질서는 급격하게 반동적인 것으로 판정받게 되고 그 이데올로기의 실현을 위한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부정되는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하곤한다. 기존의 권력구조를 무너뜨리고 악습을 폐지하는 것을 넘어서 오랫동안 유지되어오던 공동체적인 신뢰를 깨뜨리고, 인간이 사회를 살아가면서 필요한 보편적인 가치마저 부정하는 상황이 오게 되는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이런 파멸적인 상황의 근본이 바로 무신론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본 것이다.



종교로 끈끈하게 묶여있던 중세적 상황에서 갑자기 혁명적 상황으로 넘어가는 동안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윤리체계는 전혀 준비되지 않았고 인간을 너무 긍정적으로만 평가한 니체사상의 맹점을 정확하게 꿰뚫어본 것이다. 니체 사상의 화신인 짜라투스트라의 역을 맡은 스타로브긴은 결국 자살을 하게됨으로써 '아버지와 아들'의 바자로프와 같은 운명이 되고마는 것이다.



종교의 시대가 끝나고 실존철학이 영그는데 그래도 거의 1세기가 걸렸다. 그동안 도스토예프스키가 말한 '악령'은 과도한 물질문명과 인간소외현상, 두차례의 세계대전, 많은 국지전을 통해 지구인들의 머리위에서 현현하고 있다. 이성의 시대에 대한 반성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악령의 그림자는 너무도 짙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예감한 러시아의 악령은 종교적인 귀의를 통해서 해결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현현하는 악령은 보편적인 가치를 다시금 챙기고, 바닥까지 떨어진 인간의 가치를 인간 스스로 높이는 인간성회복 외에는 그 해답이 없을 것 같다. 그것에 실패하는 한 인류는 스타로브긴의 최후를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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