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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NDWANA Aug 09. 2019

중세부터 르네상스까지

[사생활의 역사 2] 아리에스 外



유럽의 중세사회는 혈연과 지연 중심으로 뭉쳐진 공동체가 개인생활의 기반이 되었다. 영주와 영주를 떠받치는 귀족, 소상공인, 농노와 노예로 이루어진 공동체는 이웃한 가문과 경쟁관계에 있거나 적대관계, 또는 우호관계를 맺으며 합종연횡하였고 끊임없는 전쟁에 대비해야했다. 따라서 공동체는 내부적인 구심력이 크게 작용할 수 밖에 없었고 영주를 중심으로 한 큰 가계의 모습을 띤 것이었다. 공동체의 질서와 이익이 우선이었으므로 집단적 생활이 강조되었다. 개인이 스스로 내밀한 사생활을 가진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수도원에서 수도사가 되어 구도를 행하거나 기도를 하는 식의 생활이 공동생활의 테두리를 그나마 벗어나는 예일것이다. 


 

중세 기독교에서는 여자를 매우 위험하게 취급했는데 이것은 아담과 이브의 신화를 확대해석한 결과이다. 여자는 남자에게 욕정을 불러일으키고 그들끼리 은밀하게 소통하므로 여자에게 홀린다는 것은 아담이 그랬던 것처럼 언제 죄악의 구렁텅이에 빠져들지 모른다는 것이다. 여자는 무조건 집안 가장 깊숙한 곳에 숨겨졌으며 외부에 노출은 거의 허용되지 않았다. 현대의 가장 원리적인 이슬람교도들이 여자에게 행하는 것 같은 그런 구속이 여자들에게 요구되었고 이것은 여자들에게 어떤 신비감까지 부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따라서 결혼이라는 것은 부모들끼리의 철저한 계약외엔 이루어지기가 힘들었다. 계약의 내용은 신랑이나 신부의 지참금이었다. 귀족들은 유산의 배분으로 인해 재산이 흩어지는 것을 꺼려했으므로 근친혼이 성행했으며 상속자를 적정선에서 유지해야했으므로 형제가 많은 경우 일부는 강제로 수도원에 보내졌다. 종교는 개인의 모든 사생활을 들여다보기 위해 전전긍긍했다. 혼자있는 시간은 기도를 하기 위한 것외엔 의심을 받았으며 여성의 순결을 최상의 가치로 여겨서 막 결혼한 신랑은 결혼식 다음날 피묻은 침대시트를 사람들에게 보여주는게 관습화 될 정도였다. 하지만 결혼을 했다고 해서 부부간의 애정이 장려되지는 않았다. 부부관계는 아이를 낳을 목적에서만 허용되었으며 쾌락을 위한 관계는 철저히 금기시 되었다.


 

이탈리아는 통상과 상업을 중심으로하는 도시국가가 많았으므로 좀 더 개방적이었다. 르네상스가 알프스 이남에서 시작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 도시국가들의 이같은 유연함에 있다. 르네상스 초창기의 이탈리아는 상업에 종사하는 남자들이 바깥에 일이 많았던 관계로 여자들이 집안에서 좀 더 확실한 권위가 있었다. 사적인 교류는 일반적인 것이었고 동네여자들이 모여서 갖가지 수다를 떨만한 분위기도 조성되었을 것이다. 르네상스가 알프스를 넘고 도시에 인구가 증가하게 되면서 이것은 일반적인 유럽 도시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좁은 도시에 많은 사람이 모이게 되고 인쇄술의 발전과 교육수준이 향상되어 읽고 쓰는 사람이 조금씩 늘어나게 되자 사람들은 혼자있는 시간이 필요해짐을 느끼게 된다. 중세시대에 방안에 혼자 남겨진 사람은 기도나 묵상외엔 할것이 없었다. 하지만 편지나 각종 기록을 쓰게 되고 독서가 필수적인 교양으로 자리잡은데다 나중에 사교문화의 토대가 되는 '응접실문화'가 생기면서 여자들은 외모를 꾸미는 장소가 필요하게 된다.


 

귀족이나 상류층은 전쟁에 대비해야했던 투박한 중세시대식 성문화에서 벗어나 벽난로가 붙은 응접실과 다양한 용도의 많은 방을 가진 집을 짓게 되었다. 하지만 하위계층은 여전히 온 가족이 좁은 방 한두칸에 온 식구들이 한꺼번에 살아가야했고 벽사이의 방음시설도 시원치 않아서 부부싸움이라도 하게 되면 곧 온 동네사람들이 다 알게되는 지경이라 개인의 내밀한 사생활은 없다고봐도 무방한 상태였다.



중세의 지나친 금욕주의의 영향으로 르네상스가 되어서도 나체에 대한 금기는 여전했다. 너무 몸들을 꽁꽁 숨기다보니 목욕탕이 있는 귀족들을 제외한 일반인들은 목욕 한 번 하기가 어려웠다. 공동목욕장이 있긴했으나 그곳은 음란하게 되지 않도록 철저하게 관리되었다. 웬만한 사람들의 머리와 수염에는 이가 득실득실했고 땟국물이 줄줄 흘렀다. 위생상태가 불량하니 전염병이 발생하면 무섭게 퍼져나갔다. 현대에 와서 사람들의 평균수명이 대폭 늘어난 것은 의학이 발달해서라기 보다 위생상태가 비교도 안되게 좋아졌기 때문이다.


 

당시 한 이탈리아인이 독일의 혼욕탕을 방문하고 받은 문화적 충격에 대한 글이 교훈적이다. 독일의 혼욕장에서는 남자나 여자나 거리낌 없이 자신의 알몸을 내보였으며 어떠한 음란한 사고도 발생하지 않았다. 그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웠고 사람들은 상대가 알몸이라는 것에 대한 의식도 하지 않는것처럼 보였다. 목욕탕 안에 있었던 사람들 중에서 당황하고 음란한 생각을 한 사람은 그 이탈리아인 뿐이었으며 결국 음란함은 금기로부터 시작된 마음속의 환상의 결과라는 것이다.



방안에 혼자 있는것조차 의심을 받고 죄악시 되던 중세시대는 여자들을 집안 구석에 감춰어 놓고나서 여자들이 숨어서 모종의 음모를 꾸미고 남자들을 타락시킨다고 믿는 자기 모순에 빠져있었다. 이런 중세적 금기와 모순은 오늘날의 개인에 사생활에 미치는 영향력이 막대하다. 인간의 사생활의 변화는 지금 이 순간도 진행중이며 언젠가는 이같은 중세적 금기의 흔적이 사라지게 되긴 할 것이나 다시 천년의 세월이 더 지나야 가능한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아직 세상은 너무 남성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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