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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NDWANA Aug 10. 2019

르네상스부터 계몽주의까지

[사생활의 역사 3] 아리에스 外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이 일어났다고 해서 갑자기 사람들에게 자유사상이 퍼지고 관습과 전통을 하루아침에 무시하는 상황이 오지는 않는다. 아무리 급진적인 혁명이라할지라도 일반인의 살림살이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귀족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기득권을 공고히 했고 서민들은 자신의 빵을 걱정하는 상황은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왕정국가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되면서 왕을 중심으로하는 귀족층이 좀 더 세련된 생활방식을 가지게 되고 도시와 상업의 발달은 시민이라는 새로운 부르주아 계층을 탄생시키게 된다.  



중세의 전장터를 누비던 거친 기사들을 평화시에 길들이기 위해서 예법이란 것이 왕궁을 중심으로 생기기 시작했다. 그것은 왕과 귀족의 고상함을 높이는 일이었고 왕실과 가문의 구성원 개개인의 행동을 통제함으로써 집단적 이익을 도모하는데 큰 역할을 담당하게 된 것이다. 그것은 양적인 풍부함에서 질적인 세련됨으로 전이하는 것이었다. 왕과 귀족의 위엄을 보이는 것이 그전에는 수백 수천마리의 소, 돼지, 가금을 한번에 잡아서 과시형 연회는 여는 것이었다면 르네상스 이후에는 그 양은 줄었어도 정밀한 격식에 따라서 계산된 연회를 베푸는 형태가 되었다. 그런 와중에 예법은 점점 더 복잡한 것이 되어갔고 일반시민에 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개인의 내밀함의 출발은 읽고 쓰기에서 비롯된다. 인쇄술의 발전으로 묵독이 점차 일반적인 것으로 자리잡고 읽을 수 있는 사람이 귀족층을 중심으로 늘어나면서 소설이 큰 인기를 끌게 되었다. 루소의 '신 엘로이즈'를 비롯한 몇몇 연애소설들은 사교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백과전서파를 비롯한 많은 작가들의 작품이 쏟아져 나왔다. 숨겨두고 읽어야만 했을 음란한 소설들도 활개를 쳤다. 수도원에나 가야 있었고 일반가정에는 대대로 물려가며 읽던 성경책 밖에 없었던 시절에서 갑작스런 책의 범람은 종교지도자들을 당혹케했다. 그들은 책이 사람들에게 음란함을 퍼뜨린다고 주장했으나 지식이 일반화 되고, 특히 성경해석이 개인화 됨으로써 종교지도자들의 입지가 좁아지는 것에 대한 반발에 불과했다. 독서와 개인이 쓰는 서간문은 개인이 혼자 있을 시간을 필요로 했고 상류층은 비로소 서재를 가지게 되었다. 혼자 있는 시간에 대한 욕구는 서재, 비밀정원의 형태로 주택양식에 그대로 반영되었던 것이다. 



여성이 역사적으로 남성과 거의 비슷한 대우를 받은 시기는 프랑스혁명 전의 파리의 사교계일 것이다. 부인들은 남자와 똑같이 상속권을 행사했으며 공공연히 자유연애를 했다. 가문끼리의 계약적 결혼이 여전히 중심에 있긴 했으나 그것은 정략적인 것일뿐이었다. 개인의 애정에 대한 욕구가 높아지고 자유연애가 고개를 들던 시점이라 사교계는 불륜의 온상같은 곳이 되었다. 하지만 간통사실이 남에게 알려지거나 하는 경우는 많은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었다. 



농촌인구가 도시로 유입되면서 도시는 매우 번잡한 곳이 되었다. 하류층은 도시나 농촌이나 자신들의 침대외엔 변변한 가구조차 없었으며 침대 하나에 온 가족이 같이 들어가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이런 마당에 개인의 사생활을 이야기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여전히 하류층의 주거지는 불결했고 전염병에 취약했으며 도시위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19세기 말까지 하류층의 주거환경은 나아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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