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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NDWANA Aug 15. 2019

사회의 개선을 향한 숭고한 욕망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 슬라보예 지젝



우리는 흔히 이론과 실제는 다르다라고 모든 분야에서 이야기한다. 갓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해서 현장을 찾은 신입사원들이 흔히 듣는 이야기이며, 말썽많은 정책에 대해서 그 입안자들이 하는 변명이며, 경건하고 정제된 어투로 씌여진 어떤 안내문을 대충 읽으면서 냉소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학자들과 실무자들은 그것이 이론이건 매뉴얼이건 정제된 법칙을 이끌어내거나 깔끔한 문장으로 남기려고 온갖 애를 쓰지만 실제로는 그것이 무시되거나 현실과의 괴리감에 조소의 대상이 된다. 이런 이론과 실제의 차이는 사람들을 둘러싼 모든 분야에서 너무도 분명하고 누구나 느끼지만 그래도 이상에 가깝게 다가서려고 노력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은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고 그것은 사람들의 무의식에 침투한 이데올로기의 작용으로 이루어 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데올로기와 그 실현의 간극은 현실에서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고 구소련 붕괴후 맑스주의자들조차 두손두발 다들어버리는 상황이 왔다. 민주주의는 애당초 완벽한 것이란 있을 수가 없으며 그로 인해 발생하는 온갖 비리와 부조리 조차 민주주의의 한 일면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 되었다. 누군가는 타는 목마름으로 남몰래 뇌까리면서까지 갈구했던 찬란한 민주주의는 나름 민주주의를 이룩했다고 자부하는 폴리아키체제의 구성원들 앞에 너덜너덜한 모습으로 나타나 이게 민주주의 참모습이라고 이야기 되고 있는 것이다. 죽을 힘을 다해 용을 물리치고 마법의 성을 기어올라 구출한 공주가 곰보에 언청이라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분명 공주가 마법에 걸려있는 것이고 이것이 공주의 참모습은 아닐거라고 울부짖지만 동화와 현실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이런 현실은 도처에 널려있고 모든 것이 지리멸렬해지고 냉소적이 되어갔다. 



하지만 마르크스가 공산당선언에서 적시한 유령은 여전히 떠돌고 있고 이런 자본주의의 부작용도 대의제 민주주의의 일면이라고 이야기하려고 하는 순간에 우리들 속에 숨어있던 이데올로기의 날이 번쩍거린다. 내가 원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내가 원하는 것이 동화 속이 아니라 현실의 아름다운 공주라면? 내가 원하는 것이 저 너덜너덜해진 민주주의라는 것을 조금이라도 깨끗한 본연의 것으로 돌려 놓을 수 있는 것이라면? 그리고 나의 신념과 행동으로 거기에 대한 실현 가능성을 엿보게 된다면? 



자신의 욕망이 사회의 부조리를 극복하는 것과 합치하는 순간의 감동과 숭고함은 그동안 많은 진보주의자들의 행동을 이끌어낸 원동력이다. 이런 장엄한 순간이 실재하고 개인이 경험한다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 중 하나다. 이런 이유로 수많은 좌절과 실패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를 개선하려는 노력은 진보주의자들의 노고의 무덤 위를 다시 딛고 일어서게 만든다. 이런 지난한 과정을 거쳐서 민주주의는 힘들게 발전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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