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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NDWANA Aug 16. 2019

감시자는 누가 감시하는가?

[왓치맨] 앨런 무어



쿠바사태이후 미국인들은 자신의 머리위에 언제 떨어져 내릴지 모르는 핵탄두의 위력을 실감하며 살았다. 베트남전 이후 70년대 데탕드의 분위기도 잠시,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미국국민들의 집단무의식에 자리잡은 핵전쟁의 공포는 누구라도 이 사태를 해결해 주었으면 하는 욕망을 품게 되었고, 1930년대 반짝 전성기 이후 창고에서 먼지를 덮어쓰고 있던 코믹스의 영웅들까지 부활시켰다.


 

하지만 꺼내놓고보니 남들 보기에도 민망한 코스튬을 걸친 영웅들은 매우 초라해보였고 그런 영웅들이 소련의 핵탄두를 막을 수 있다고 전혀 생각되지 않았다. 그래서 순간이동이 가능한 차원이 다른 영웅인 맨하탄이 창조된다. 맨하탄이란 이름에서 물씬 풍기듯이 그의 임무는 소련으로부터 날아오는 핵무기를 방어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시뮬레이션 결과, 맨하탄이 막는다고 하더라도 그 수많은 핵무기를 막을 수는 없는 것으로 판명난다.


 

치킨게임이 되어버린 핵전쟁의 공포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것이다. 하지만 핵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어떤 핵보유국가도 먼저 자신의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인류가 가진 핵탄두의 딜레마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핵무기를 보유한 미국이 가지고 있는 적성국가의 핵무기에 대한 공포는 아이러니하다. 컴퓨터를 이용하여 가상의 핵전쟁 시나리오를 펼치고 거기에 맨하탄이라는 초특급 울트라 영웅을 투입해도 미국에 핵무기가 떨어지는 것을 결코 막아내지 못한다.


 

치킨게임이 끝나는 방법은 겁을 먹고 물러나든지, 아니면 달려오는 기차에 정면충돌을 각오하고 행동에 옮기는 방법밖에 없다. 죽음에 대한 공포속에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불안감에 하루하루를 고통스럽게 사느니 차라리 고통을 줄이기 위해 스스로 적극적인 죽음을 선택하는 시한부 환자의 심리가 되는 것이다. 핵탄두 딜레마를 벗어나기 위한 방법은 핵전쟁을 실제로 하는 것외엔 없다는 것을 감시자들은 간파해낸다. 감시자들의 공작으로 핵전쟁은 벌어지고 세계의 주요도시와 미국의 절반이 날아간다. 그리고 그 끔찍한 참상에도 불구하고 감시자들은 이제야 말로 핵무기 딜레마를 벗어난 진짜 평화가 찾아왔다며 기뻐한다.


 

이러한 감시자들의 선택과 행동을 통해 작가는 매우 의미심장한 사회심리학적인 질문을 던졌다. '감시자는 누가 감시하는가?'라는 이 질문은 인류가 가진 권력구조와 그들의 통제아래 놓여있는 아마겟돈의 무기를 직설적으로 꼬집고 있는 것이다. 기존의 그래픽노블은 숱한 미국영웅영화의 원전이 되었지만 왓치맨은 핵무기가 폭발하기 몇 초 전에 가까스로 타이머를 중단시켜 비극을 막는 뻔한 스토리를 지양하고 현실의 권력구조와 선과악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면서 향후 헐리우드산 영웅영화에도 어떤 지향점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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