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계급론] 베블런
유한계급이란 말 그대로 한가로운 계급이란 뜻이다. 한가롭다는 것은 생산활동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생산활동에 구태여 참여하지 않아도 먹고사는데 지장없을 뿐만 아니라 토지나 건물, 생산설비 같은 생산수단 자체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무산계급을 거느리고 있는 일하지 않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러다보니 유한계급은 항상 시간이 남아돌게 되고 그 남아도는 시간을 뭘할까 항상 고민하면서 스스로를 치장하고 생산과는 전혀 상관없거나 오히려 방해가 되는 일을 하면서 소일하는 계급인 것이다.
이런 유한계급은 언제부터 생기게 되었는가에 대해서 베블런은 고대의 약탈문화로 부터 근원을 찾았다. 약탈계급은 약탈을 함으로써 경제적인 이득 뿐만 아니라 생산활동에 대해서도 면제가 되는 특혜를 주게 되었던 것이다. 약탈민족의 남자들은 농사일이나 집안일따위는 여자에게 맡겨두고 항상 자신의 무기를 관리하고 전투기술을 익히는데 주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약탈의 결과로 얻어지는 토지와 노예는 그대로 자신들의 소유가 되었으며 그것이 그대로 유한계급을 이루는 토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약탈문화는 그 형태가 조금 변했을지는 모르지만 제도적으로 무산계급으로부터의 약탈을 용인했다는 점에서 현재의 유한계급의 근본적인 속성이 된다.
유한계급은 돈이 많다. 그리고 끊임없이 자신의 부를 과시하고 싶어하고 자신의 부와 남의 부를 비교하며 상대적인 우월감과 열등감을 가지는 일에 몰두한다. 무산계급이 어떤 엄청난 부자를 바라볼때 "저렇게 돈이 많은데 돈 욕심이 더 있겠어?" 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 엄청난 부자 눈에는 자신보다 훨씬 더 돈이 많은 슈퍼 울트라 부자가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유한계급은 항상 "더! 더! 더 많이!"를 외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생산활동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 한가로운 사람이 남아도는 시간동안 무슨 일과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지신의 부를 더 늘릴 생각과 일에 골몰하거나, 자신의 부를 과시하는 일에 시간을 투자하게 되어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귀족사회의 예법과 의복, 주거, 문화 생활에는 격식을 따지는 까다로운 것이 무척 많았다. 생산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 일에 방해가 되지 않게 간소한 생활을 하는 것에 비해 넘치는 시간을 보통사람들은 흉내내기 어려운 까다로운 격식을 준수하는데 보내야했다. 유한계급은 스스로가 온몸으로 "나는 일하기에 적당하지 않다"는 티를 팍팍 내야만 지체가 높아지고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지금의 눈으로 보면 거추장스럽기만 했을 것같은 머리장식이나, 조금만 움직여도 먼지가 묻을 것 같은 소매가 넓은 옷이나 땅에 질질 끌리는 치마, 숨쉬기 조차 불편해 보이는 코르셋, 번쩍거리는 황금장식을 단 의복이나 모자 같은 것을 착용한다는 것은 "나는 일하지 않는 사람이요."라고 모두에게 선언하는 것이었다.
역사적으로 인류는 이런 일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동안 극진한 존경을 보내고 선망의 대상으로 삼아왔다. 사람들에게 근면을 강조했던 프로테스탄티즘 조차 유한계급에게만은 예정설이니 뭐니해서 면죄부를 따로 주었다. 노동자와 농민의 해방을 부르짖었던 혁명도 결국에는 지배층은 유한계급으로 채워졌다. 이 문제는 인류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이고 앞으로도 영원히 인류에게서는 해결을 기대하기 어려운 문제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시대를 살고 있는 같은 사람들 중에서 일을 하지 않으면서 사람에게 많은 선망과 존경을 받고 심지어 다른 사람들을 억압하고 군림하는 계급이 항상 있어왔고 이대로는 앞으로도 계속 존재할 것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