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도 퇴를레스의 혼란] 무질
학문이라는 것은 인간과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것을 끊임없이 구분하고 분류하는 일을 말한다. 우리가 학문을 한다는 것은 이같이 분류된 것들을 습득하고 틀리지 않기 위함이다. 그리고 새로이 발견된 어떤 것을 또다시 분류하기 위한 것이다. 사람들은 교육을 받기 시작함으로써 모든 사물을 같은 방향에서만 바라보는 훈련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우주 모든 사물과 인간의 행동과 사건들은 뭐라고 딱히 규정할 수 없는 부분이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이런 현상은 실제 학문적으로, 도덕적으로 무수히 발생하지만 인간들은 기존의 분류된 법칙에 따라서만 판단하기를 강요받는다. 그 사물의 다른 면은 철저히 무시되도록 교육받는 것이다. 인간은 교육을 거치면서 기존의 분류법에 순응하도록 순화되는 것이다. 인간의 상상력과 사고력은 교육을 통해서 무디어지고 급기야 다른 관점의 시선을 이해하지 못하고 용납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교육이란 것은 많은 경우에 있어서 기득권의 논리를 대변하는 것이므로 어떤 현상이 발생했을때 이기적이 되거나 사회적 약자를 공격하는 폭력이 저질러지는 것을 용납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이성에 의해 쌓아올린 결과들을 최선이라고 생각하며 감정적인 부분들과 인간심리의 모호한 부분들은 무시되어 왔다. 복잡다단한 인간의 내면을 몇가지로 획일화 시키려는 시도가 꾸준히 이루어져 왔고 그 시도의 결과대로 인간들을 분류하여 인간은 덩어리화 되거나 단순화 되어 취급당했다. 그러다보니 한 인간속의 유니크한 우주와 사고방식은 완전히 무시당하게 되었고 한 개인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대화와 토론은 상대를 이해하고 의견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방식을 강요하는 것이 되었다.
급기야 이러한 부조리에 의문을 품는 것 자체가 이상한 사람 취급받는 것이 되어버린게 오늘날 교육의 현실이다. 퇴를레스는 다른 사람들이 사건과 사물을 보는 시점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데 대해 혼란을 느끼게 된다. 자신이 시도한 방법을 설명해 보지만 전혀 말이 통하지 않는다. 오늘날 전체주의화된 민족주의, 국가주의, 자본주의, 사회주의 국가에 살고 있는 인류 대부분도 퇴를레스가 다니는 기숙학교의 교사들과 다르지 않다. 한쪽방향의 프리즘으로만 판단하기를 훈련받은 사람들은 전체주의가 가리키는 방향으로만 사물을 본다. 그리고 그것을 관철시키는 힘은 보편적인 도덕률을 훨씬 뛰어넘는 강도와 세기를 가졌다. 전체를 거스르는 의견을 가진 사람에 대해서는 오로지 남과 다르다는 그 잣대로만 그 사람을 재단하려한다. 어떻게 해서 그런 의견을 가졌는지에 대한 개인의 사정은 전혀 고려치 않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사람들은 잔혹해진다. 사람들을 잔혹하게 만드는 것은 단순화된 논리인 것이다. 절대 상대의 복잡다단한 사정을 구체적으로 들여다 보려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