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의 아이들] 아우얼
박물관에 가서 순서대로 관람을 하게되면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이 석기시대의 유물들이다. 분명히 아주 오래전에 인류가 직접 썼던 석기들을 보면서 그들의 생활이 어떠했을까 상상하게 된다. 혈거생활을 하면서 동굴벽에 그림을 그릴때 그들의 마음가짐과 공동체를 영위하던 그들의 시스템은 어떠한 것이었을까 하는 것은 역사에 남아있지 않은 만큼 상상력을 발휘할 수 밖에 없다.
세계사 교과서에 가장 처음에 나오는 것은 현생인류에 관한 것이다.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으로 대표되는 현생인류는 인류의 아종으로써 현 인류의 직접적인 조상이다. 네안데르탈인은 약 2만5천년전까지 크로마뇽인은 약 1만년 전까지 지구상에 존재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크로마뇽인은 현 유럽인, 중앙아시아 유목민의 직접적인 조상으로 알려져 있으며 인류의 유전자에는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도 적지만 섞여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이 두가지 현생인류는 존재한 시기와 장소가 일부 겹치기 때문에 두 종간에 어떤 관계가 있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하지만 역사이전의 시대이므로 그들이 남긴 유골, 유물과 주거의 흔적 외에는 아무것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래서 여기에 상상력이 개입된 소설을 쓴다는 생각은 참 기발한 생각이었다. 소설의 주인공이자 구석기시대 불세출의 인물 에일라는 이런 상상력을 바탕으로 창조되었다.
에일라는 크로마뇽인 소녀다. 다섯살때 동굴을 덥친 지진으로 혼자 살아남아 네안데르탈인의 종족인 동굴곰족에 의해 길러진다. 이후 수많은 시련과 모험을 거치는 과정이 이 소설의 줄거리이다. 네안데르탈인은 크로마뇽인보다 문명화 되진 않았지만 가부장적이고 엄격한 규율을 가진 집단생활을 영위했고 몸짓언어로 보다 더 풍부한 감정을 서로 전달하는 소통체계를 가지고 있었으며 좀 더 자연에 융화된 종이다. 크로마뇽인은 여성의 역할이 보다 존중받고 응용력이 뛰어나 발달된 문명생활을 영위했으며 좀 더 자유롭고 개방된 사고를 지녔다.
에일라는 아름다운 용모를 가졌을 뿐 아니라 사냥에 일가견이 있어서 활을 발명해낸다. 말을 길들여 타고 다니고, 늑대를 키워 개의 조상을 만들어냈을뿐 아니라, 부싯돌을 발견한다. 당시로써는 획기적인 시도들을 해내는 에일라는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의 특질 중 장점만을 가진 경이적 페노메논이었다.
작가인 아우얼이 의도한 것이겟지만 소설의 많은 부분이 원시림과 태고의 자연을 묘사하는데 바쳐진다. 현재 지구상에 인간의 발길이 미치지 않는 원시림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마당에 독자들에게 태고의 자연속의 이야기임을 끊임없이 환기시킨다. 그리고 등장인물과 개연성있는 사건이 일어날 확률이 적은 시대적, 공간적 배경의 한계 때문에 많은 사건과 인물들이 반복해서 독자들에게 환기된다. 이런 구성은 무협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조인데 사실 에일라가 주인공인 환타지라는 점은 무협지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기도 하다. 혹시 아우얼이 김용의 소설을 읽은적이 있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에는 인간의 가치와 삶의 목적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겨져있다. 루소가 단언했듯이 인간은 선사시대 그대로 머물러 있었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모든 종족에서 필요없는 인원은 없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모든 인원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인정을 받음으로써 행복한 삶을 영위한다.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의 종간 교배로 태어난 아이도 구성원들의 사랑을 받는다. 같은 종내에서의 인종차별 마저도 끔찍한 형태로 행해지는 현대인들에 비하면 소설속에 나타나는 현생인류의 갈등은 갈등 축에도 못낀다.
예전에 영화 '아바타'가 개봉했을때 나비족의 생활방식을 보며 사람들이 열병을 앓은 적이 있다. 구성원 모두가 타인을 위해 일하면서 그 타인들로 부터 사랑과 인정을 받는 섬세한 공동생활에 관객들은 반했던 것이다. '저렇게 멋진 세상이 있다니!' 영화속 나비족의 공동체는 선사시대 인류들의 생활방식이었고 불과 몇 백년전까지 인디언이나 아프리카 아마존의 원시부족들이 영위해온 생활방식이었다. 인간의 자아실현은 공동체에 대한 기여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아주 단순한 사실이 현대에 와서는 개인은 스스로를 위해 일하지만 개인은 결코 만족할 수 없는 부조리에 빠져버린 것이다. 에일라가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분명히 느끼는 바가 있을것이다.
이 소설은 길다. 영문판으로는 6부까지 완료가 되어있는 상황이나 번역판은 아직 4부까지밖에 나와있지 않다. 에일라가 존달라를 따라 질란도니족의 마을로 입성하는데서 4부는 끝이 났다. 5,6부의 출판은 언제가 될지 기약없는 기다림을 해야한다. 이때까지 진행된 이야기를 바탕으로 5부와 6부의 대략적인 내용을 추리하자면 에일라의 꿈속에 크렙과 함께 자주 나타나는 인류 태고의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더듬는 과정이 큰 축이 될 것 같다. 이것은 에일라가 '크신 어머니'의 지위에 오르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동굴곰족과의 교류, 앞으로 태어날 존달라와의 아기에 대한 이야기, 마지막으로 장성한 두르크와의 재회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크로마뇽인들은 알타미라동굴에 생동감넘치는 벽화를 남겼다. 아우얼이 제시한 지도에 의하면 질란도니족의 마을이 알타미라동굴에서 제법 가깝다. 알렉스헤일리의 소설 '뿌리'에서 처럼 나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이렇게 끝없이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알타미라의 동굴벽화를 바라보는 순간 에일라와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현재의 인류 중 일부는 인류 태고의 기억을 무의식 내에 간직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