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적인 아나키스트

[임꺽정] 홍명희

by GONDW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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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이건 동양이건 중세시대엔 일반민중들은 봉건제가 세상의 유일한 정치체제인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왕을 신과 동급으로 추앙했고 신분제는 숙명으로 받아들였다. 이런 중세사회의 신분적인 질서를 파괴하려는 시도는 역린이라 해서 세상의 이치를 거스르는 것으로 취급 받았다. 특히 유학의 왕도정치는 사농공상이 각자의 역할을 충실한데서 임금이 선정을 펼치는 것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았기 때문에 세상이 어지러워진다는 것은 각 신분계급이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못하는 정도로 이해되었지 고대시대부터 싹이 텃던 만민평등사상이나 천부인권사상은 오히려 중세시대가 되면서 기초가 매우 부실해졌다고 볼 수 있다.


고려시대에만 해도 묘청의난, 만적의난, 무신정변 같은 신분제의 근간을 흔드는 사건이 발생했지만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이같은 역린의 시도는 줄어든다. 왕위찬탈사건이 발생하긴 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왕실내의 문제였을 뿐이었다. 공고해진 기득권은 일반민중들에게 전세, 군역, 공납, 환곡을 수단으로 가혹한 요구를 하기 시작했으며 여기에 대한 반발로 민중들은 최소한의 저항을 하게 된다. 홍경래의난과 동학운동이 발생하기 전까지 조선에는 도적떼의 출몰외에는 이렇다할 저항이라곤 없었지만 가렴주구를 행하는 기득권들은 도둑이 제발 저린다고 걸핏하면 역모죄를 뒤집어 씌웠다.


임꺽정의난은 조선 중기에 발생할 수 있었던 그나마 최대치의 민중반란이었고 당시 농민들이나 천민들이 꿈꾸던 개인적인 이상향에 대한 수단과 그 과정을 투영한 사건이다. 수호지에서 호걸들이 양산박으로 꾸역꾸역 모여든 것처럼 기존의 질서를 거부하는 민초들만의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것은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부당하게 빼앗기지 않고, 깜냥껏 농사를 지으면서 이웃들과 나누고, 굶주리지 않고 사는 것이다. 동서양 민중들의 이런 소박한 바램은 모여서 공산주의 이론의 초석이 되었으며 수호지와 임꺽정의 이야기는 숱한 아나키스트를 만들어내는 원전이 되었다.


홍명희가 임꺽정의 이야기를 집필한 1928년은 국제적 아나키즘운동이 전성기를 향해가던 시기이다. 민중에 의한 압제에의 저항은 당시 양심적인 지식인이라면 가장 관심있어야 할 분야였고 어찌보면 인류의 지성이 가장 순수하게 번득였던 시기가 있다면 인터내셔널운동이 시작된 직후부터 스페인내전의 두루티가 암살당하는 순간까지의 아나키즘 운동의 전성기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라잃은 이 땅의 지식인들은 앞을 다투어 아나키즘에 투신하였으며 홍명희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아나키스트라고 하면 만주벌판을 무대로 외투를 입고 비밀과 고뇌를 가득 안은 지식인을 이미지로 떠올리는 사람이 많지만 압제받지 않는 민중을 꿈꾸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긴다면 그 누구도 아나키스트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양산박의 호걸들이나 고석정에 모인 임꺽정의 무리들은 그런 의미에서 고전적인 아나키스트 인것이다.


프랑스혁명의 밤에 그것이 혁명인지도 모르고 죽어간 일반 민중들 처럼, 임꺽정은 그것이 아나키즘인 줄도 모르고 관군에 목숨을 잃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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