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털리 부인의 사랑] 로렌스
돈도 많고 사회적으로도 저명인사이지만 성불능인 남편에게서 채울 수 없는 욕망을 돈도 없고 천하지만 육체적으로는 훌륭한 남자에게서 채우고 사랑을 느끼게 되는 유한부인이 소재가 되는 너무도 많은 OO부인 시리즈들에게 영감을 제공했던 로렌스의 걸작이다.
이 작품의 모티브 뿐 아니라 시각적인 많은 장면들이 그대로 또는 응용되어서 숱한 에로영화에 영상화 되었음은 물론이다.
허울좋은 귀족이나 양반의 도덕과 콧대는 가장 정직하고 건강한 육체앞에서 완전히 패배한다. 그리고 이 승부의 매개에는 자연스러운 육체에 눈을 뜨는 용감하고 아름다운 부인이 있는 것이다.
처음엔 귀족시스템의 일원이었던 이 부인들이 어느 순간에 고용인이나 하인에게 매력을 느끼게 되고 어쩌다 보니 몰래 정사를 나누는 것도 모자라 비오는 숲속을 벌거벗고 뛰어다니기까지 한다. 모든 허위와 체면을 벗어던지고 루소의 말처럼 자연으로 돌아간 것이다. 이 비오는 숲 속 장면은 다른 부인시리즈에서는 해변이나 바위, 기타 다른 자연물로 바뀌기도 하지만 여주인공이 속박하는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완전히 자연과 합일이 되는 클라이맥스를 상징한다. 그리고 으례히 이런 육체적 클라이막스 뒤에는 신분을 뛰어넘는 이 사랑을 위협하는 시련이 시작되는것이다.
유한부인의 애정행각만을 부각시켰다면 채털리부인의 사랑은 결코 고전의 대열에 끼지 못했을것이며 숱한 부인시리즈의 원전이 될 수도 없었을것이다.
채털리부인은 관념화 되어버린 철학을 비판하며 과학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봉건시스템이 자본논리의 옷을 입고 새로운 계급체계가 조장되는 자본주의의 부작용을 지적한다.
자연스런 사랑의 의미속에는 성행위가 아주 큰비중으로 들어가있음에도 불구하고 종교와 철학에서는 그것을 아주 논의의 대상에서 빼버렸다. 사랑의 의미가 점점 뜬 구름잡는 이야기가 되어버린것은 다들 침실에서는 하고 있으면서 말로하면 안되는 분위기를 조장한 이들의 책임이 제일 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