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톨스토이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엽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한계를 절감했던 세계는 무산자들을 중심으로하는 새로운 이념체제를 실제로 도입했고 러시아를 중심으로 새로운 창조의 물결이 일어나는 듯 했다.
하지만 톨스토이가 의도했던 것과는 다르게 거기엔 인간이 중심에 서지 못했고 인간에 대한 순수한 사랑은 부르주아지의 사치스런 감정정도로 매도되었으며 획일적이고 불합리한 계급과 증오의 비석이 세워지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21세기 초... 월스트리트에서 '혁명'으로 추켜세우던 자본의 세계화는 대실패를 예고하고 있다. 2차대전 이후 지속된 60여년의 호황은 끝났으며 이제 세계경제는 길고긴 내핍의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진단하는 사람들마저 나오고있다.
올해 초 다보스포럼에서는 위기를 맞이한 미국경제의 대안으로 아시아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미국이 흥청망청 써갈긴 부도수표를 아시아의 돈으로 메꾸기를 바라는 상황이 온것이다. 그러면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조심스런 회의가 고개를 들고있다. 사실 신자유주의란 시장자본주의가 세계적으로 확장하는것에 대한 새로운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 자본이 세계화 된다고 하더라도 자본주의의 근간이 변하지는 않는것이다. 오히려 그전에는 국지적이었던 자본주의의 부작용이 전세계로 확산되었고 빈부격차심화와 환경오염은 그 규모가 그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더 커지게 된 것이다.
금세기 초중반에 이미 한번 세계를 지옥속으로 몰아넣었던 자본가들과 제국들이 이번의 위기를 맞이하여 개과천선해서 '부활'을 하게 될것인지 낙천적 자유주의자들은 기대를 하기도 하겠지만 그들이 쉽사리 정신을 차릴것 같지는 않다.
20세기 초의 자본주의의 실패의 결과는 두번의 세계대전이었지만 그들은 거기서 어떤 교훈도 얻지 못했다. 다 때려 부시고 난 후에 찾아온 새로운 시작으로 인한 호황에 지난일은 모두 까맣게 잊어버린것이다. 그리고 다시 찾아온 위기를 맞이 하고 있는 것이다.
인류는 지난 역사를 되풀이 할 것인지 아니면 지난 100년을 거울 삼아 새로운 역사를 만들 것인지 기로에 서있는 중이다. 톨스토이가 이미 100년 전에 인류에게 '부활'을 요구했지만 톨스토이의 바램으로 끝나고 말았다. 하지만 톨스토이의 바램은 10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유효하다.
부자들은 여전히 "더 많이!"를 외치고 있고 가난한 자들은 기득권의 논리에 휘둘려 어리석어지고 스스로를 지킬 기제마저도 포기하고 있는 상황에서 톨스토이의 바램이 쉽사리 이루어 질 것 같진 않다. 이번이 안되면 또 다시 100년을 기다려야 하는 것인가?
기득권이 무산자들을 위해 스스로 자신의 것을 나누고 도덕적으로 타락한 민중들이 스스로를 저주하지 않기위해 필요한 것은 무한한 인간애일 것이다. 톨스토이가 꿈꾸는 이상향은 이런것이었지만 그런 무한한 인간애가 과연 앞으로 남은 인류사에 실현되는 날이 있게될지는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