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이들에게...

[말테의 수기] 릴케

by GONDWANA



잿빛하늘의 스산한 바람이 부는 호젓한 파리의 교외를 거닐며 머리를 헝클러뜨린채 바바리코트를 입고 옷깃을 여미며 읽어야 말테의 수기의 고독과 인생을 그나마 제대로 맛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하지만 나는 섭씨 30도를 오르내리는 서울에서 덜컹거리는 만원지하철이나 방구석에 기대어 선풍기 바람앞에서 속옷바람으로 아이스바를 으깨먹으며 말테의 고독했던 젊은 시절을 음미해야했다.


죽음과 삶의 비참함, 구차함을 대면하는 소년은 강박증과 불안에 시달린다. 이런 불안은 감수성이 예민한 소년시절에는 누구나 한번쯤 격어봤을법한 것이다. 자신의 한계와 미래에 대한 불안, 부모님의 유한성을 자각하게 될때 소년은 자신의 심연의 바닥을 비로소 접하게 되고 거기에 서있는 자신의 본질과 처음으로 대면하게 되는 것이다.


소싯적에 늑막염으로 2주일 정도 병원신세를 진적이 있었다. 한번은 밤에 잠에서 깨어났을때 병실에는 입원한 어린이들외엔 아무도 없었다. 시간은 도무지 알 수 없었고 나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무한을 넘어가는 어떤 악몽에서 막 깨어났다. 하지만 고즈넉한 병실에는 낮은 조도의 불빛만이 괴괴했고 맞은편 침대의 백혈병에 걸린 소녀는 죽음을 불과 하루 앞두고 있었다. 난 왠지모를 불안감에 이불을 덮어써야 했고 뒤에 생각해 보니 내가 최초로 삶과 죽음의 본질을 대면해야했던 순간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이렇듯 음울한 이야기는 마지막에 탕아의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마치 스릴 넘치는 프로야구 하이라이트를 보는 기분에 휩싸였다. 영원한 것을 위해 사랑받기를 거부하고 사랑을 하는 위치에 서고 말겠다는 그 탕아의 의지는 말테의 수기가 출간된 이후 고독한 많은 사람들에게 그동안 얼마나 많은 용기를 주어왔을까? 라는데 생각이 미치자 내 마음속의 먹구름사이로 난 햇빛을 보는 기분에 잠시 휩싸였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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