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듣는다는 것

[소리를 잡아라] 마크 카츠

by GONDWANA



지금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음악을 듣는다'라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에 녹음된 음악을 듣는 것을 말한다. 라이브 무대를 보러가거나 노래방에 가서 생음악을 들을 수도 있지만 그것을 굳이 '음악을 듣는다'라고 표현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에디슨에 의해 축음기가 발명되기 전의 사람들은 어떻게 음악을 들었단 말인가? 순전히 라이브 100%의 음악외에는 접할일이 없었던 것이다. 참 단순한 사실임에도 새삼스럽다. 축음기 없던 시절을 살아본적이 없어서 무어라고 말은 못하겠지만 그 당시의 사람들도 나름대로 음악을 즐겼음엔 분명하다. 구전가요나 민요가 서민들의 음악활동이었고 악기가 있다고 하더라도 많아봐야 두어가지의 단순한 현악기나 타악기가 다였다. 좀 더 지체높은 사람들은 좀 더 다양한 악기가 등장하는 교향악단이나 노래깨나한다고 소문난 명창을 불러다 앉혀놓고 감상을 할 수 있었겠지만 그것도 매일 그럴 순 없었을 것이다. 결국 음악감상을 한다는 것은 매우 특별한 일에 속했고 대부분은 시간들은 음악이라곤 없이 흘렀던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만해도 집에 전축이 없는 집이 많았다. 자신이 듣고 싶은 음악을 듣기 위해선 턴테이블이나 하다못해 카세트 플레이어라도 있어야만 했지만 그런 것들의 가격이 생각보다 비쌌고 쓸만한 전축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서민의 두세달치 봉급을 털어야 했다. 그리고 전축을 마련하게 되면 전축프레임 옆을 장식할 클래식이나 가곡 레코드라도 몇 장 구비해야했으므로 전문적인 음악감상은 꽤 고급취미에 속했다. 그런 것이 구비되지 않은 사람들은 가요톱텐에 나오는 노래만이 한국음악의 전부인 줄 알고 살았으며 그나마 좀 적극적인 축은 라디오를 챙겨 듣거나 음악다방에서 몇시간이고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70-80년대 팝송이 한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된 이유는 영미 록의 전성기와, 규제와 검열로 획일화된 한국가요시장의 취약성이 혼합된 결과이다. 놀란스가 방한했을때 그들에게 쏟아진 한국의 뜨거운 열광은 놀란스도 놀랄만한 것이었다. 만약 ABBA나 Queen이 왔었다면 아마 나라가 뒤집어졌을지도 모르겠다. 아뭏튼 그당시에 젊은이들은 너도나도 팝송을 들었다. 가사의 메시지는 몰라도 세련된 멜로디와 다양한 세션들이 들려주는 풍성한 사운드는 확실히 한국가요와는 차별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팝은 1989년이 되어서야 직배가 가능해졌다. 그전까지만해도 한국에서 구할 수 있는 팝송 레코드는 죄다 라이센스 음반이었다. 그러다보니 검열로 인해 문제가 될만한 곡은 삭제 당했고 라이센스 음반사 마음대로 아티스트의 앨범을 합치거나 해서 팝을 좀 듣는다는 사람들에게서는 외면을 받았다. 무엇보다도 팝 앨범 자체가 다양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국내에서는 팝에 대한 선택의 폭이 너무나 적었고 음성적인 팝 레코드 암시장이 성업하는 형편이었다. 폭발한 팝의 수요를 양과 질 양쪽 다 전혀 맞출 수 없다보니 팝 전문가라는 이색 직종이 생길정도였다.



하지만 인터넷의 시대가 오고 MP3가 나오면서 이같은 이야기는 모두 호랑이 담배피우던 시절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일단 인터넷에 한번 올라간 음악은 누구라도 접근이 용이하게 되어버렸고 냅스터를 위시한 P2P 공유사이트는 모든 음악을 글로벌한 것으로 만들었다. 불과 20년전만해도 서울시내를 몇 달을 발품을 팔아도 구하지 못하던 희귀한 음반들을 클릭 몇 번에 내 주머니로 가져올 수 있게된 것이다. 일주일만 마음먹고 수집을 하면 내가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을 다바쳐서 수집했던 모든 음반의 몇 배도 구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누군가 라이브로 불러줘야 음악을 들을 수 있었던 시대에서 축음기의 발명으로 녹음된 같은 음악을 반복해서 들을 수 있는 시대로, 그리고 클릭 몇 번에 인터넷의 수 많은 음악을 선택해서 들을 수 있는 시대로 다시 변모하였다. 음악을 찾아서 듣기가 너무도 쉬워졌지만 가끔 학창시절 어렵게 듣고 싶어하던 음악을 구해서 듣던 그 환희는 이제 맛볼 수가 없는 것 같다. 단골 레코드방 주인 아저씨를 졸라서 'A Night at The Opera' 오리지날 원본을 카세트에 복사해서 집으로 달려가서 듣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던 그 순간을 아직도 기억한다. 이젠 그렇게 설레여 가며 음악을 듣는 일은 없을 것 같아 아쉽기도 하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고독한 이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