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치는 델타와 입실론의 예술

[키치, 우리들의 행복한 세계] 조중걸

by GONDWANA



달과 6펜스의 등장인물들은 스트릭랜드에 대해서 매우 이중적인 입장을 취한다. 아무도 그의 예술을 이해하지 못하고 불화하다가 그의 사후에 갑자기 스트릭랜드는 추앙되고 그의 작품은 무지막지하게 비싼 가격이 매겨진다. 이런 일들은 예술사에 비일비재하다. 고흐는 비극적이고 가난한 삶을 살았지만 그의 작품으로 돈을 번건 그의 작품을 사 모았거나 취급한 사람들이다. 망삭하는 달이 뜨고 지는 것과는 별개로 사람들은 달에다가 자꾸만 6펜스 동전을 갖다대는 것이다.



예술은 어느 누구의 눈치도 보지않고 홀로 고고하지만 키치는 그저 다른 사람들의 눈치만을 의식해 만들어진 것이다. 정의야 이렇게 간단명료하지만 이것이 실제로는 매우 모호해진다. 작가의 창작의도란 것은 작가만이 정확하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 예술을 금전적인 가치로 판단하는데 익숙해진 우리들은 작품을 그 자체로 평가하기보다 핸드백의 디자인이나 실용성보다 상표나 가격표에 먼저 눈이 가는 속물들처럼 누구의 작품인가에 대해서 먼저 반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를 배제한 상태에서 예술을 있는 그대로 개인이 받아들인다는 것은 심하게 주관적인 것이고 개개인의 미적 기호에 따라 개인이 매기는 작품의 가치는 천차만별이 될 것임에 분명하다. 그리고 예술을 평가하는 것도 훈련이 되어있어야 한다고 사람들은 믿으며 그 훈련이란 것은 결국 무엇이 비싼 가치를 가지고 있는가를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는 모든 것이 키치다. 아무리 순수한 예술이라하더라도 그 모습을 드러내고 사람들의 눈과 입에 오르내리는 순간 키치가 되고 만다. 부조리한 세계속을 살고 있는한 우리의 생활은 허위로 둘러싸여 있는것이고 순수한 의미의 예술은 예술가와 작품사이에만 존재하는 것이 되고 마는 것이다. 스트릭랜드와 고흐가 세상과 불화하고 살았던 것처럼 진정한 예술은 그런 경지에 있다.



사람들은 예술로서 표현된 이데아를 현실의 수준으로 끌어내리지만 현실로 끌려 내려온 예술은 그 빛이 바래는 것이다. 이데아의 피안을 들여다보려는 시도 자체는 예술행위로 간주되고, 유한하고 속물적인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욕망이라 할 수 있겠으나 그런 행위는 키치로 두텁게 둘러싸여 있는 것이다. 결국 범인은 남이 이루어 놓은 예술의 정수를 결코 맛볼 수 없는 것이며 방법이 있다면 본인이 스스로 예술가가 되는 것일 것이나 그것도 본인의 이데아를 조금의 거짓도 없이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약간의 과장이나 거짓을 넣는다거나 남을 의식하게 되면 바로 키치의 구렁텅이로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헉슬리의 멋진신세계에 나오는 델타, 입실론들이 섹스와 소마만으로도 행복한 생활을 영위하는 것처럼 키치만으로도 행복해진다면 구태여 진정한 예술을 기웃거릴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진실은 매우 냉정하거나 무서울 수 있는 것이지 않은가? 히말라야 14좌가 위용을 뽐내지만 까딱하면 얼어죽을 그곳에 꼭 갈필요가 있는가? 대다수의 델타와 입실론들은 그렇게 살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결코 진실을 알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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