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발견의 논리] 칼 포퍼
과학사에서 포퍼가 내세운 반증원리는 과학이 방법론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양파껍질을 한번 깐것에 비견할만하다. 베이컨 이후 발전된 경험론은 논리실증주의로 발전하면서 경험에 의한 귀납적원리만이 과학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으로 다들 생각하게 하였다. 그리고 귀납법과 논리실증주의는 과학과 비과학을 구분하는 기준을 최초로 제시한 셈이었고 과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하였다. 과학의 발전이 곧 진보라고 믿었던 사람들은 귀납법과 논리실증주의에 대해 조금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과학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적 수단이라고 굳게 믿었던 것이다. 따라서 귀납적증명이 불가능한 형이상학적인 명제들에겐 비과학이란 딱지가 붙었고 졸지에 철학은 비인기종목으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흄이 지적한 귀납의 문제는 논리실증주의의 검증의 방법의 한계를 지적한 것이었다. 즉 인간의 감각으로 검증할 수 없는 과학적 문제들이 속속 등장하였고 그것은 곧 과학의 한계가 되고만 것이다. 이 지점에서 포퍼는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의 전환을 제시하게 되는데 그것이 반증원리이다.
귀납법으로 까마귀가 검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지구상의 모든 까마귀가 검다는 것을 일일이 확인해야만 진리가 될 것이다. 혹시라도 돌연변이에 의해 알비노까마귀가 한마리라도 나오게 되면 까마귀가 검다는 명제는 일순간에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귀납적 문제는 모든 경우의 수를 다 확인하지 않으면 진리가 될 수 없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는 것이며 귀납적 추론에 의한 결론은 잠정적인것 일뿐인 것이다.
그렇다. 과학은 완전하지 않다. 포퍼는 그것을 과감하게 인정하고 연역적추론으로 반증의원리를 제시하였다. 즉 모든 까마귀는 까맣다는 가설에서 출발해서 반증으로 가설을 검증하는 것이다. 즉 어쩌다가 흰색 까마귀가 나왔다면 이제 까마귀는 검은색도 있고 흰색도 있다는 과학적 결론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과학은 그 폭이 넓어지는 효과를 얻게된다. 좀 더 열린 시각에서 다양한 시도와 추측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나아가서 포퍼는 철학자들에게 좀 더 용기를 준다. 어떤 이론이든 반증을 시도할 수 있다면 그것은 과학적 가설로써의 지위를 획득한다. 그리고 그 동안 과학이라는 탈을 쓰고 있었던 여러 이론들(맑시즘 등등)에 대해서 반증이 불가능한 독단이라고 이야기된다. 하지만 그것은 과학과 비과학의 잣대일 뿐, 옳다 그르다의 문제는 아니다. 과학자체가 가설위에 세워진 것일진대 과학자체에 대해서도 옳다 그르다의 잣대를 들이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형이상학적이거나 철학적인 명제에 대해서도 그것이 과학적이니 어쩌니 논쟁하는것은 무의미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이런 과학과 비과학의 구획을 정하는 것이 포퍼입장에서는 중요한 문제로 보였다. 과학적인 것과 비과학적인 것 사이에 구획을 정하는 것이 논리실증주의자들이 한 것처럼 비과학이란 딱지를 붙이고 아예 논의의 대상에서 빼버리기 위한것이 아니라 철학적이거나 형이상학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시비를 가리는 행위들이 과학에 못지 않게 충분히 생산적일 수 있다는 것을 포퍼는 공식적으로 확인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인류역사에 있어 철학과 형이상학적인 문제들이 과학적 이론의 질료를 제공해왔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