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3부작] 시오노나나미
시오노나나미는 동로마제국의 멸망을 상상력을 발휘한 한편의 역사소설로 그려내었다. 마르마라해를 바라보는 아름답고 활기찬 한 도시의 카페테라스에 앉아 투르크군의 함성과 대포의 포성과 더불어 성벽위에 동로마제국의 쌍독수리 깃발이 휘날리는 것을 상상했을것이다. 그리고 바다로 드리우는 석양을 보면서 로마제국의 황혼을 떠올렸을 것이다.
근대까지 세계사적으로 콘스탄티노플만큼 지정학적인 중요성이 있었던 도시가 또 있을까? 콘스탄티노플의 위치는 절묘하다 못해 놀랍기까지하다. 유럽의 입장에서 보면 아시아로 들어가는 관문이고 아시아의 입장에서는 유럽으로 통하는 통로다. 흑해와 아조프해를 낀 도시에서 보면 에게해를 지나 지중해로 통하는 보스포루스해협의 길목을 지키고 있는 콘스탄티노플은 상업과 통상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도시였다. 동서로는 유럽과 아시아가 육로로 연결되고 남북으로는 동유럽과 남유럽이 해상으로 연결되는 교차점에 위치한 천혜의 지정학적 도시가 콘스탄티노플인 것이다.
로마제국은 다양한 인종들이 저마다의 색깔을 뽐내는 제국이었고 로마, 안티오키아, 알렉산드리아 같은 대도시는 코스모폴리탄들의 도시였다. 민족적 편견이 없는 로마인들의 눈에 콘스탄티노플의 지정학적 이점이 안보일리가 없었다. 비잔티움이라고 불리던 상업도시는 콘스탄티누스대제가 동로마제국의 수도로 삼으면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다. 동로마제국의 수도였던 만큼 기독교적인 정취가 물씬 풍기는 도시였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이후로 동로마제국 1200년의 역사를 오롯이 품었던 것이다.
모든 국가가 그렇듯이 국가가 쇠망의 기운이 뻗치게 되면 영토를 잃게 되고 황제의 명령은 별볼일 없는 것이 되며 외세의 침략에 시달리게된다. 동로마제국도 마찬가지였다. 유스티니아누스황제 시절에는 왕년 로마제국의 버금가는 위용을 자랑했지만 제민족들이 독립하고 종교적으로 분열되면서 15세기 초엔 수도인 콘스탄티노플과 그 주위가 약간 남아있는 사실상 도시국가가 되어있었다.
반면 콘스탄티노플을 바로 바라보는 오스만투르크에서는 야심만만한 정복자 메메트2세가 즉위하였다. 그리고 콘스탄티노플에 대한 야욕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1200년간 기독교의 심장이자 상업활동의 중심지였던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다는 것은 유럽일대에 큰 사건으로 비추어질 것이 자명했다. 하지만 콘스탄티노플의 3중성벽은 난공불락의 성으로 명성이 자자했으며 아무리 용맹한 술탄의 군대라 한들 이 성을 뚫는다는 것은 매우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메메트2세는 우선 보스포루스해협의 폭이 가장 좁은 지점에 루멜리 히사르라는 요새를 건설하고 선대에 세워진 맞은편의 아나톨루 히사르와함께 보스포루스해협을 지나는 상선들에게 통행세를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투르크의 해군은 콘스탄티노플로 들어서는 마르마라해을 봉쇄한다. 제노바와 베네치아는 당장 교역로가 끊김으로써 풍부한 흑해연안의 밀을 실어올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콘스탄티노플을 바닷길부터 봉쇄한 메메트2세는 콘스탄티노플의 성벽을 겨냥한 거대한 우르반의 대포를 설치하는 것으로 공략을 시작한다.
주위의 기독교국가들은 이러한 콘스탄티노플의 위기에 강건너 불구경이었다. 사실 동로마제국황제는 수십년 전부터 오스만투르크에 위협을 느끼고 주위 기독교국가들에게 원조를 요청했지만 수십년씩이나 지나다보니 눈앞의 위협이 일상화되었고 점차 무감각해진 것이다. 그냥 선대에 맺었던 오스만투르크와의 협정만 기약없이 믿고 있었던 것이다. 당장 메메트2세에 의한 위협이 가해지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것은 그동안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부를 쌓았던 제노바와 베네치아였으나 그들도 바다위에서의 호랑이였지 육상에 있는 투르크의 16만대군에 대해서는 강건너 불구경이었다.
공성이 본격적으로 벌어지고 우르반 대포는 7주간 불을 뿜었다. 난공불락으로 보이던 테오도시우스의 3중성벽이 조금씩 허물어지기 시작했으나 워낙에 성이 견고한 탓에 투르크의 군대가 여러번 공격을 펼쳤으나 그다지 큰 손실을 주진 못했다. 하지만 봉쇄당한 도시에서는 식량과 탄약이 떨어지고 불안감이 고조되는 와중에 개기월식까지 발생해서 방어군의 사기는 떨어질대로 떨어지게된다. 술탄의 총공격이 시작되고 한군데의 방어선이 뚫리게 되자 심리적으로 쫒기고있던 방어군은 한순간에 무너지고 만다.
이렇게 천년넘게 중세를 이끌었던 동로마제국이 역사에서 사라졌다. 콘스탄티노플이라는 기독교식 이름에서 이스탄불이라는 이슬람식 이름으로 도시이름은 교체되고 성소피아성당을 비롯한 많은 교회와 성당은 이슬람의 모스크로 개조된다. 그리스-로마의 전통은 천년만에 다시 이탈리아 반도로 돌아가게 되었고 중세시대에서 르네상스시대로 이행하는 촉매가 이탈리아에서 부터 시작되는 단초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