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과 종교] 융
"종교는 인간의 무의식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임상심리학자이자 무의식의 연구에 필생을 바쳐온 융의 입장에서는 바로 이 주장을 하고 싶었다. 개개인이 스스로 유한성을 자각하면서 인간 이상의 것에 대한 공포가 마음속에 자리잡았으며 그것은 인간활동의 내적 외적 작용에 의해 구체화 된다. 그리고 인간은 어느샌가 스스로 만들어낸 종교에 사로잡히게 되며 심지어 희생자가 되기도 한다.
개인의 주관적인 관념은 타인과의 합의에 의해서 객관성을 확득하는 과정을 밟는다. 비로소 사회적으로 종교의 지위를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그 종교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순전히 미신으로 보일 수도 있는 문제이지만 다른 종교를 미신으로 치부하는 사람들 마저도 비슷한 과정을 거친 어떤 종교를 믿고 있거니와 불가지론자나 무신론자 마저도 자신의 행위로 인해 관찰된 사실에 대해 관념적인 의미를 주관적으로 부여하는 경우가 많다.
인간의 무의식에 자리잡은 인간이상의 것(혹은 신)과의 소통을 위해서 고대로부터 수많은 신비주의적인 주술이나 의식들이 행하여져 왔다. 거의 대부분의 종교가 신비주의적 색채를 띠는 이유는 종교의 출발이 무의식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독교에서 그노시스는 일찌감치 이단판정을 받게되고 기독교는 인간의 무의식에서 벗어나서 실체가 있는 것을 가정하는 세계를 제시하게 되었다. 이렇게 객관성을 확보한 종교는 다른 사회적인 환경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무의식에 영향을 다시금 주게 된다. 무의식에서 생겨나서 출발한 종교가 다시금 무의식에 천착되는 것이다. 하지만 개인의 무의식에서 생겨난 종교적 관념과 사회적인 터부를 가득 머금고 다시 개인의 무의식으로 돌아온 종교는 사뭇 다른 것이다.
융은 그 증거로 숫자 4에 대한 임상적인 증거를 제시한다. 기독교에서 중요한 숫자는 삼위일체설의 3이다 하지만 무의식은 거기에다 1을 더한 4를 종교적으로 표출한다는 것이다. 그 +1의 정체는 바로 악이다. 악이 존재하지 않고서는 기독교의 세계관은 완전해지지 않는다. 악에 대비되는 관념이 바로 선이기 때문이다. 악이 없는 선은 선으로 불리지 못한다. 이것은 현재 기독교체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악을 반드시 필요로하는 종교에서 악을 지워버림으로써 스스로 모순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노시스가 이단으로 판정받고 사라지게된 기독교의 신비주의적인 요소는 연금술에 의해서 그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다는 융의 주장에 동의한다 . 연금술은 단순히 금을 만들기 위한것이 아니라 완전하고 영원한 인간 이상의 어떤 것을 탐구하는 과정으로 이해되어야 하기때문이다 . 융이 연금술에 관심이 높았다는 것은 신비주의에 대한 연구를 통해 종교의 본질에 더 가까이 가기 위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