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도스섬 공방전

[전쟁3부작] 시오노나나미

by GONDWANA



중세의 기사단을 직간접적으로 다룬 소설들이 많은데 기사단의 성격과 당시 권력구조를 잘 모르고서는 유럽이 중세에서 근대로 이어지는 와중에 툭하면 등장하는 기사단에 대해 오해를 하는 경우가 많다. 첫째로 기사단이 종교(특히 기독교)와 관련이 있을거라는 믿음이다. 중세유럽은 기독교외의 종교는 용납되지 않았다. 따라서 중세의 기득권자였던 기사세력은 당연히 기독교를 대변하고 수호한다. 그래서 그럴뿐이지 기사단이 특별히 종교적이거나 한것은 아니다. 더 나아가 일부 소설의 영향인지 기사단에는 신비주의적인 요소가 있을거라는 믿는 경우도 있는것 같다.



중세는 절대왕권이 없었고 영주들중 대표가 왕노릇을 하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귀족들이 특정한 주군하에 종속되어 충성을 바치는 경우가 드물었다. 기사는 기사단을 조직해서 자신들의 이익을 도모하였다. 기사단의 경제적 기반은 수도원의 그것과 닮았는데 기부금이나 봉토에서 나오는 수익금이었다. 기사단은 십자군전쟁 기간에 우후죽순으로 생겨났지만 십자군 전쟁이 끝나도 그들은 여전히 언제가 될지 모르는 이교도들과의 전쟁을 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로도스섬에 자리를 잡은 성요한 기사단도 마찬가지였다. 전쟁은 없었지만 기사들은 유한계급이었으므로 남아도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을 해야했고 십자가 문장을 아로새긴 기사답게 이교도를 처단하자는 미명하에 로도스섬 주위를 오가는 투르크 상선을 상대로 해적질을 시작한다. 하지만 꼭 투르크배만 노린것도 아니었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시대라 때때로 제노바나 베네치아 상선도 그들의 해적질의 희생양이 되어야했다.



콘스탄티노플이나 소아시아에서 이집트나 아라비아쪽으로 향하는 뱃길의 길목에 위치한 로도스섬은 투르크에게는 목에 걸린 가시같은 존재였다. 결국 오스만투르크의 술탄인 술레이만은 로도스섬에 20만이 넘는 대군을 보낸다. 로도스에 있는 500명 남짓한 기사와 3천 남짓한 용병으로는 중과부적이었다. 기사들은 투크르 선발대가 로도스섬 해안에 닿자마자 등껍질 속으로 숨은 거북처럼 오로지 수비에 전념한다. 투르크는 아무런 제지도 받지않고 포대를 설치하고 참호를 파고 보급선을 띄웠다. 기사단이 바란 것은 시간을 끄는 와중에 도착할 서방의 원군이었으나 도시국가들은 투르크의 눈치를 보느라 함부로 군사를 움직일수조차 없었다. 결국 로도스섬에서 기다리다 지친 기사들과 용병은 투르크군을 맞아 용감하게 방어를 하지만 고립무원이 되어버린 자신들의 한계를 자각하고 항복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술탄은 해적을 소탕해서 더 이상 동지중해를 오고가는 투르크 상선들이 피해를 입지 않게하는것이 목적이었으므로 로도스섬을 장악한 이상, 항복한 기사들과 주민들에게 최대한의 관용을 베푼다. 로도스를 떠나고 남고의 자유 뿐만 아니라 종교의 자유마저 주어진다. 이슬람교를 강요하지 않고, 이교도를 죽이지도 않고, 종교의 자유마저 주는 것을 보면 서유럽이 그동안 십자군원정을 통하여 기독교의 이름으로 무수한 학살을 자행한 것에 비하면 놀랄만한 것이다.



아뭏튼 성요한기사단은 갈곳이 없어졌고 유럽을 떠돌다 나중에 몰타섬에 안착한다. 하지만 기사단은 그 이후로 명맥만 유지될 뿐이었다. 로도스섬에서 성요한기사단이 쫓겨나게 된것은 기사라고 대변되는 중세의 한축이 무너지는 상징이다. 그리고 그것은 투르크의 힘으로 이루어졌다. 투르크는 남부유럽와 아시아로 통하는 통로를 완전히 장악하게 됨으로써 서유럽이 그들의 항로를 아프리카나 대서양으로 돌리지 않을수 없는 단초를 제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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