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3부작] 시오노나나미
나나미는 16세때 '일리아스'를 읽으며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깨달았다고한다. 투박한 사내들이 조금의 거짓도 없이 충실하게 서로 창을 주고 받으면서 쓰러지는 모습을 상상하며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시작된 지중해를 둘러싼 많은 전투를 상상했을 것이다. 그리스와 트로이의 전쟁,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전쟁, 로마와 카르타고, 이집트, 시리아의 전쟁 등등 지중해는 그리스와 로마의 전장이었고 그것이 곧 그리스와 로마의 역사였다. 나나미가 관심있었던 것은 결국 지중해의 역사였던 것이다.
지중해는 지리상의 발견으로인한 대항해시대로 접어들게 되는 16세기 부터 급격하게 역사의 주무대에서 퇴장하게 된다. 이것은 곧 그리스와 로마세계의 쇠퇴를 뜻한다. 전통적 대립관계였던 유럽-아시아, 기독교-무슬림의 대결구도가 무너지게 되고 그 대립의 전장이었던 지중해는 더 이상 역사의 주역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따라서 레판토해전의 승자가 투르크였다고 하더라도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승자인 베네치아나 패자인 투르크나 레판토해전을 기점으로 모두 쇠퇴일로를 걷게되기 때문이다.
베네치아 연합군은 투르크의 함대를 전멸시킴으로써 투르크의 확장을 막아낼 수 있었고, 레판토해전에서 패하긴 했지만 투르크군은 키프로스를 점령했다. 그래서 술탄이 "당신네들은 한팔을 잃었지만 우리는 수염을 뽑힌 것일 뿐이다. 수염은 다시 자란다."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투르크군은 레판토해전 이후로는 더 이상 베네치아나 스페인과 해전을 치르지 않았고 서유럽의 국가들의 관심은 이제 지중해를 떠나 대서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나미는 레판토해전을 지중해가 중심이었던 유럽에서 벌어진 마지막 전쟁이라고 보았다. 즉 고대에서 중세로 이어오던 지중해의 역동적인 역사는 레판토해전을 끝으로 기나긴 침묵에 들어간 것이다. 이후의 유럽은 영토기반의 왕정국가들이 득세하고 대항해시대를 통하여 제국주의의 기반을 만드는 근대로의 역사가 대서양을 중심으로 펼쳐지게 된다. 누군가 세계역사의 중심은 서진한다고 했다. 페르시아만으로 접어드는 바빌론의 강을 중심으로한 오리엔트 시대 이후, 알렉산더에 의해 시작된 지중해의 역사는 대서양을 바라보는 황혼을 맞이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