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화 과정] 엘리아스
문명은 어떻게 해서 발전하게 되었나를 고찰한 엘리아스의 사려깊은 저작이다. 우리는 흔히 문명의 단계를 석기시대부터해서 청동기, 철기, 르네상스와 과학혁명, 현재의 우주시대까지 주로 과학기술의 측면에서 보아왔고 그것이 바로 문명이라 생각해왔다. 하지만 현재의 우리가 어떤 사람을 가리켜 문명인이라 부르는 것은 그 사람이 최신형 자동차에 최신 스마트폰을 가지고 다니는 것을 지칭하지는 않는다. 그의 우아한 행동거지와 세련된 매너를 지칭하는 것이다. 문명에는 물질적인 부분이 뿐만 아니라 문화적인 부분이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엘리아스는 어떻게 해서 현대인들이 문명화 되었는지를 역사적으로 탐구한다.
구석기시대에 사냥을 해서 고기를 불에 구워먹던 원시인들이 냅킨을 하고 포크를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 습관은 언젠가부터 생겨났을 것이고 지금은 매우 보편적인 것이 되어있다. 놀라운 점은 지금은 아주 복잡해보이는 많은 에티켓과 격식들이 본격적으로 지켜지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백년이 채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중세까지만 해도 식사는 손으로 했으며 식탁에서 쓰이는 도구라 해봤자 고기나 빵을 자르기 위한 나이프가 거의 전부였다. 화장실이 없어 적당한데서 대소변을 보았고 식당 바닥에 침을 밷거나 트림, 방귀등의 생리현상도 거리낌 없이 행해졌다. 나체에 대한 금기는 오히려 중세시대에 훨씬 덜했다. 동네에 있는 목욕탕까지 온가족이 단체로 옷을 벗고 뛰어가는 광경은 드문 광경이 아니었던 것이다.
중세까지만해도 유럽은 약육강식의 세계였다. 왕권은 미약했고 힘센자가 약한자의 것을 빼앗고 살인까지 하더라도 어디가서 하소연할데조차 없었다. 이런 사회에서 자기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인간관계의 사슬로 강력한 구심력을 발휘하는 공동체가 필요했고 그것이 바로 장원이다. 인구가 늘면서 농토가 부족해지자 모든 민족과 국가는 영토싸움에 돌입했고 중세시대는 끊임없는 전란의 시대가 되었던 것이다. 이후 절대왕권을 기반으로 하는 영토국가들이 등장하면서 왕실이 생기고 전쟁터에서 거친 인생을 살아가던 기사들도 평화시의 궁중에서는 얌전히 있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 거친 기사들을 다루기위해서라도 예법은 필수불가결한 것이었을 것이다. 즉 예법은 강력한 지배의 수단으로 매우 유용했던 것이다.
르네상스로 접어들면서 에라스무스의 예절에 대한 책을 필두로 점차 예법을 중요시하는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상류사회로 부터 예법에 대한 틀이 생기기 시작한다. 특히 아주 복잡한 궁중예법이란것이 생겼는데 이것은 일반인들의 생활상과는 판이하게 다른 것이었다. 독일이나 영국의 귀족계층에서는 심지어 언어도 프랑스어를 쓸 정도였다. 예로부터 왕이나 귀족들의 생활상은 큰 비용이 드는 것이 아니라면 일반인들도 따라하게 되는 법이다. 시민계급이 성장하면서 점차로 귀족들만의 예법은 일반에게도 퍼져나가게 되었던 것이다.
엘리아스가 이 책에서 말하는 문명화라는 것은 이런 예법과 격식에 길들여지는 것을 말한다. 포크로 음식을 먹고, 화장실의 남녀칸을 따로 나누고, 연장자나 윗사람에게 순서를 양보하고, 뒤돌아서 재채기를 하는 것은 모두 왕과 귀족들의 예법으로 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것은 권력의 헤게모니가 절대왕권으로부터 귀족, 상공업자, 시민계급, 일반인으로 점차 이동해 온 정치경제사의 변동과 그 궤를 같이한다. 권력을 쥔다는 것은 결국 고상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도 나름대로 사회적인 체면과 지위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행동거지는 예의바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