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육] 오에 겐자부로
근대의 제국주의 국가들은 '인간동물원'이란걸 운영했는데 아프리카의 원주민이나 인디언, 에스키모같은 부족인을 납치해서 우리에 가두어 놓고 관람객에게 공개하는 것이었다. 각종 박람회에서는 필수적으로 인간전시회가 열렸고, 동물원내에서 상설적으로 운영되기도 했으며, 유랑서커스단과 같이 전국순회일주를 하기도 했다. 구경거리가 된 원주민들은 원숭이같은 동물들과 똑같은 취급을 당했고 그것을 관람하러 오는 관객들도 동물을 대하는 것처럼 원주민들을 관람했다. 대놓고 소리를 지르거나, 먹을 것을 던져주는 등의 행위도 물론 이루어졌다. 서구인들은 피부색과 생활방식이 다른 문명화 되지 않은 원주민은 자신들과 같은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았으며 인간과 원숭이의 중간쯤 되는 별개의 종으로 취급했던 것이다. 하멜일행이 제주도에 표류해서 한양으로 압송될때 사람들은 색목인을 신기한 구경거리로 생각하긴 했으나 하멜 일행에게 박연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같은 사람 취급을 해준 것이나,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백인을 처음 보고 그들이 신들의 족속인 줄 착각한 것을 보면 제국주의의 비인간성은 더욱 두드러지는것 같다.
2차대전 중 일본의 화전민 마을에 미군비행기가 추락하고 낙하산으로 유일하게 살아남은 흑인군인이 마을사람들의 포로가 된다. 장마철로 불어난 물에 마을은 고립되었고 포로의 처리를 위해 현으로 연락을 하지만 현에서도 상부의 답변을 기다리느라 흑인포로는 화전민마을에서 구금당하는 신세가 된다. 마을 사람들은 처음엔 극도의 경계심으로 포로를 대하지만 별다른 반항의 기색이 없자 얼마안가 포로는 아이들의 놀이상대가 된다. 하지만 현에서 포로를 압송하라는 지시가 내려오고 생명의 위협을 느낀 포로는 주인공 소년을 인질로 잡고 항거하지만 마을사람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매우 짧은 소설이지만 내용은 매우 강렬하다. 독자는 이질감과 안타까움이 교차하는 가운데 결말을 맞이한다. 검둥개건 누렁이건 백구건 점박이건 개들은 아무런 편견없이 어울리지만 인간은 결코 그렇게 살지 못한다. 어떤 이유에 의해서 사람들은 다른 국가, 다른 피부색,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고 경계한다. 하지만 섞여서 살다보면 사람사는게 그다지 큰 차이가 없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렇게 섞여서 살다가도 국가주의나 인종주의 등으로부터 파생된 어떤 사건이 개입되게 되는 순간 또 다시 서로에게 적의를 드러내게 된다. 유난히 이런 부분에 대해 민감한 인간이라는 종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