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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NDWANA Jul 31. 2019

집단행동과 무임승차

[집단행동의 논리] 올슨



얼마전에 전국적으로 택시파업이 있던 날 부산출장을 가게되었다.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타야하는 상황이 왔지만 택시가 없었다. 하지만 택시를 한대 발견했고 우리 일행은 택시를 탔다. 부산역으로 가길 원하는 우리에게 기사가 말했다 "부산역 앞에는 파업세력이 진을 치고 있어서 혹시 해코지를 당할 수 있어서 조금 떨어진 곳에 차를 세우려고 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우리는 그렇게 하라고 했지만 기분이 영 찝찝했다. 파업에 참여하지 않는 택시가 있다는 것에 좀 그랬고 우리는 어쩔 수 없긴 했지만 그 택시를 타야만 하는 상황이 마음에 안들었던 것이다.   



이같이 집단의 이익을 위해 파업을 하는 경우에 파업을 하지 않는 구성원들이 있다. 그들은 파업에 참여하지는 않지만 파업으로 인해 집단의 목표가 성취되면 혜택은 똑같이 받는다. 우리를 태웠던 그 택시기사는 파업에 참여하지 않고 택시가 거의 없었던 파업날에 제법 손님을 태워서 이익을 보았고 만약 택시파업으로 인해 택시노동자들이 바라는 월급제나 기본임금 인상이 관철되었을때 역시 또 이익을 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무임승차(Free Rider)를 많은 택시노동자들이 바라게 된다면 파업자체가 유명무실하게 되어버려 아무런 효과도 없게 될 것이다.  



등록금투쟁에 찬성하지만 집회나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학생은 등록금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댓가로써 지불해야할 비용을 먼저 생각한다. 시간을 할애해야 할 것이고 시위대를 저지하러온 경찰에 체포되거나 학교로부터 개인적인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수백만명이 넘는 대학생이 등록금이 낮아지길 원하지만 등록금투쟁에는 극소수의 학생만이 참여하는 이유는 이같은 위험과 비용을 감수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같이 사람들은 집단행동에 있어서 자신의 이익을 가장 먼저 생각한다. 즉 비용과 그에 따른 이익의 크기를 가늠해 보고 선택에 있어서 경제학적 원리에 따르는 것이다.  



이런 무임승차를 방지하기 위해 많은 노조에서는 단체행동에 참여하지 않는 구성원에 대한 페널티를 부여하기도 한다. 노조의 행동에 참여하지 않았다간 자칫 직장에서 왕따가 될 수도 있는 큰 위험이 있다. 노조원은 노조의 행동에 참여하지 않았을 경우의 손실이 매우 크기 때문에 당연히 파업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등록금의 경우와 같이 큰 집단의 경우는 개개인에게 재재를 가할 방법이 거의 없다. 그래서 집단의 크기가 크면 클수록 참여도가 낮아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어떤 이권을 두고 천명의 집단과 백만명의 집단이 경쟁하는 경우에 천명의 집단이 승리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이권의 양은 제한적인데 반해 천명의 집단에 속한 개인이 백만명의 집단에 속한 개인보다 천배의 혜택을 더 받게 되는 분배의 구조때문에 천명의 집단이 훨씬 더 결속력있게 똘똘 뭉치게 된다. 따라서 개인은 자신의 이익실현을 위해 상대적으로 소수의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이해집단을 중심으로 뭉치게 되고 이해집단은 각종 로비와 실력을 통해 이익을 실현하려 하는 것이다.  

인천공항이 민영화되는 것을 반대하는 여론이 월등히 높지만 인천공항이 민영화 됨으로써 이익을 보는 소수의 이익단체는 민영화가 실현되었을때 각 개인에게 돌아가는 이익이 엄청나기 때문에 필사적이 된다. 정치권과 재계에 엄청난 로비를 하게 될것이다. 하지만 인천공항이 민영화 되지 않았을때 시민들 각 개인에게 돌아가는 실질적인 이익은 현재처럼 이용하게 된다는 것 외엔 없다. 민영화가 된다고 하더라도 시민 개인이 입는 손해는 공항이용료가 조금 오른 정도일 것이다. 필사적으로 민영화반대를 조직적으로 외치는 사람은 민영화로 인해 구조조정을 당하게 될 소수의 공항 직원들일 것이다.  



외국 농산물 수입, 공기업의 민영화, 재개발사업, 4대강같은 국책사업 등등 많은 정책들이 국민의 대체적인 뜻에 반하여 진행될 수 있는 이유는 똘똘 뭉친 이해집단들의 로비를 일반국민들의 느슨한 연대나 대응이 당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끔 민주화항쟁이나 국민적인 촛불시위같이 국민적인 집단행동이 촉발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에 이해집단은 패배하게 되어있다. 하지만 잠시뿐인 그 시기가 지나고 나면 다시 이해집단의 집요한 활동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계몽되어야 할것은 염치없는 이익집단이고 그런 이익집단에게는 가차없는 철퇴를 내릴 수 있는 사회정의의 실현일 것이다. 결국 사회정의가 권력집단으로부터 발현되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모든 문제에 성난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뛰쳐나올 수는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참으로 어려운 문제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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