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상상력의 예술

[로마인이야기] 시오노나나미

by GONDW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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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가 된 세계 각국의 문화소개서 ‘제노포브스 가이드(Xenophobe's Guide)’는 현지화 된 외국인의 눈으로 각 나라의 문화와 민족성, 국민성을 기술했다. 그러다보니 모든 책의 저자가 다 달라졌고 해당국가의 사람들은 쉽사리 느끼지 못하는 고유한 습성들을 외국인들의 눈으로 재미있고 객관적으로 전달해내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서구사람들에게 로마사 읽기는 자신의 뿌리를 이해하는 과정이라고 한다면 동양 사람에게 있어 로마사 읽기는 서구를 이해하기 위한 과정이자 서구화된 자신을 이해하기 위한 과정이다. 하지만 동양인에게 로마사는 교양으로 다가가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에드워드 기번이 쓴 명작, ‘로마제국 쇠망사’의 육중한 위용을 보는 순간 일반인들은 기가 죽는 법이다.



시오노 나나미가 해낸 일이 이런 방대하고, 자칫 딱딱해지기 쉬운 로마사를 동양인의 입장에서, 마치 제노포브스 가이드 ‘로마편’을 쓰듯이 쉽고 재미있게 써낸 것이다. 그리고 아시아권의 많은 독자들에게 흥미진진한 로마사를 성공적으로 소개해낸 것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사건의 나열이나 인물의 행적만을 기술하지 않았다. 로마가 왜 전 유럽을 영위하는 제국이 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렇게 넓은 제국이 그렇게 오랫동안 유지 될 수 있었는지, 당시 로마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를 독자들에게 알려내고 큰 틀에서의 로마와 로마인들의 관계를 조명하는데 집중함으로써 로마제국의 세계사적 의미와 그 흐름을 끝까지 이어내는데 성공했다.



테베레강 유역의 작은 일곱 개의 언덕 중 하나에서 출발한 부족도시국가 로마는 포로 로마노를 정복하고 강력한 해상국가였던 카르타고를 정복함으로써 제국으로써의 첫걸음을 시작한다.



로마의 강점은 강한 군대도 아니고 찬란한 문화도 아니었다. 거대한 영토를 영위했던 제국들은 대부분 단명했다. 마케도니아, 몽고, 프랑스제국은 알렉산더, 쿠빌라이 칸, 나폴레옹 같은 굴지의 정복황제가 이루었고 그 황제가 죽은 후에는 급속히 몰락했던 것이다. 하지만 로마는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스키피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같은 장군과 제위들이 수 백년에 걸쳐 영토를 넓히고 체제를 다졌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로마가 거대한 영토를 그렇게 오래 유지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비결은 상대를 아우르는 포용정책이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 패전국의 국왕이나 부족장들은 목이 잘려 창에 꽂히는 대신 로마의 원로원에 의석을 얻어 어엿한 귀족이 되었으며 일반인들은 로마의 속주민이 되어 로마의 우산을 쓰게 되었다. 속주출신의 일개 촌뜨기가 황제가 되는 일도 있었으며 실력과 운만 있으면 누구에게나 성공의 길이 열려있었다. 로마, 콘스탄티노플, 안티오키아 같은 대도시는 다양한 인종과 국적을 가진 코스모폴리탄들의 도시였던 것이다.



현재 유럽 뿐 아니라 지구상의 대부분의 문명과 국가에는 로마의 그림자가 남아있다. 로마의 법전은 현재 대부분의 나라의 법전의 모태가 되었고 조세, 군사, 각종 인프라에 걸친 국가체제, 사회체제의 기틀이 로마시대에서부터 기원한 것이 셀 수도 없이 많다.



로마인이 구축했던 도로, 수도, 지도의 기술은 그로부터 거의 1800년 뒤에도 유효한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로마는 이러한 인프라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있었던 거의 유일한 고대국가 였다. 뒤로 생긴 국가들은 많았지만 근대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인프라를 중시했던 국가는 없었다. 패권국가가 되면 성으로 둘러싸기 바쁜 다른 나라들에 비해 로마는 국경까지 고속도로를 뚫었다. 물론 그 도로가 적에게 이용되면 불리한 것이었겠지만 모든 민족을 로마화 하는데 있어서는 가장 큰 무기가 되었다. 모든 물류와 통신이 이러한 인프라를 통해 이루어졌고 유럽전체의 급속한 로마화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스키피오가 카르타고를 멸망시키고 내뱉은 탄식처럼 아무리 강대하고 큰 제국이라 할지라도 언젠가는 멸망한다. 로마의 마지막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투스가 476년 황제자리에서 쫓겨나면서 서로마제국은 멸망한다. 멸망이라고 해서 비극적인 전투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뭔가 커다란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냥 황제자리에 아무도 오르지 않았을 뿐이다. 이탈리아반도를 비롯해서 과거의 속주들은 야만족들에게 점령이 되어있었고 사람들은 더 이상 로마황제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는 것 뿐 생활이 별로 달라질 것도 없었다.당시 로마사람들의 부지불식간에 로마는 멸망해버렸던 것이다.



동로마제국이 그 뒤로 투르크족에 의해 멸망할 때까지 천년가까이 존속하긴 했지만 시오노 나나미의 말대로 로마가 없는 로마제국은 왠지 어색한 것이다. 그리고 개척정신과 포용정신을 바탕으로 다양한 인종과 문화를 아우르는 로마만의 색깔은 비잔틴제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시오노 나나미는 1992년 로마인 이야기 첫번째 책을 내면서 매년 1권씩 15년간 총 15권의 ‘로마인 이야기’를 쓰겠다고 약속했고 지난 2006년 마지막 책을 출간함으로써 마무리 되었다. 그녀의 로마이야기를 읽어 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독자는 카피톨리노 언덕에 올라서 포로로마노를 굽어보게된다.



세계사와 오늘날의 우리의 모습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끼쳤던 고대제국의 이야기를 이토록 섬세하게 풀어낸 것은 시오노 나나미의 풍부한 감수성과 창의력 때문이다. 에릭 홉스 붐은 “역사는 상상력의 예술”이라고 했다. 그녀의 역사서술방식은 분명 새로운 경지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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