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물은 버려도 아기는 버려서는 안된다

[세계체제 분석] 윌러스틴

세계체제분석이란 현재를 세계적인 자본주의체제로 규정하고 이후에 오게 될 어떤 체제를 준비하기 위한 것을 의미한다. 현재의 세계체제는 누가 뭐랄것도 없이 자본주의체제이다. 냉전시기에 사회주의체제와 자본주의체제의 체제경쟁이 있었지만 그 경쟁은 소비에트연방이 거짓말 같이 하루아침에 눈녹듯 사라짐으로써 싱겁게 끝났다. 다수의 공산주의 진영은 재빨리 자본주의체제로 전환했고 공산당이란 기득권층만 남은, 무늬만 공산주의지 실상은 모조리 자본주의화 된 중국같은 사례도 등장했다.

그동안 자본주의에 대항하여 사회주의 세력은 다음에 오게될 자신의 차례를 야심차게 준비했다. 맑시즘의 이론을 배경으로 자본주의에 대한 개선의 의지를 불태웠으나 아무리 발달한 자본주의에서도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발생하지 않았고 마르크스의 예언이 이같이 빗나가기 시작하자 사회주의 내에서도 여러가지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프롤레타리아혁명을 기다리기보다 소련이나 쿠바의 경우를 따르는 것이 옳다는 주장부터 부르주아혁명이 그것을 대체할 수 있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3차산업이 발달하고 분화하면서 덩달아 계급의 계층이 다양해지고 특히나 중산층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바람에 자신이 프롤레타리아 계급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날이 갈수록 적어졌다. 결국 마르크스의 역사발전법칙은 오류가 있는것으로 판명나고 말았다.

프랑스의 68혁명이후 세계의 사회주의자들은 또 다시 희망에 부풀었다. 이젠 합법적으로 정권을 잡고 그동안 사회주의자들이 준비했던 이념과 정책을 그대로 실행하면 된다는 희망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현재 프랑스의 정권을 잡고 있는 권력은 68세대의 후예들이지만 프랑스가 사회주의를 선언하지도 않았을뿐더러 오히려 내셔널리즘의 노선을 강화하게 되었다. 사회주의와 국가주의는 서로 분명 다른 것이었지만 공생하는게 가능했고 대신 그로인한 사회주의 내부의 이념적 갈등은 커져갔다. 이런 현상은 비단 프랑스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87년 민주화 이후의 운동권과 386세대에도 그대로 나타난 현상이다. 그리고 강화되는 자본주의체제에 대비되는 어떠한 선명한 대안도 마련하지 못한채 전세계의 사회주의자들과 민주화운동의 주역세대들은 스러져갔던 것이다.

하지만 현재에도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은 계속되고 있으며 다보스포럼과 세계시민사회포럼으로 대비되는 국제적 체제경쟁은 그 모양이나마 유지는 되고 있다. 사회주의자들은 20세기의 사회주의의 대실패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를 대체할 체제는 준비되어야한다고 이야기한다. 목욕물은 버려도 아기는 버려서는 안되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부작용으로 인해 인간의 가치가 나날이 하락하는 시점에 인간으로써 인간본연의 자유와 권리를 잊어버려서는 안되고 또 그렇게 될 수도 없다는 것을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