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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NDWANA Aug 04. 2019

세번째 유방

[넙치] 귄터 그라스



남성중심의 역사, 이성중심의 역사를 이런식으로도 비판할 수 있다는것이 문학의 힘인것 같다. 기원전 4천년경 신석기시대 말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대에 살았던 아홉명의 여성의 이야기가 이 책의 줄거리이다. 그들은 그 시대의 여느 여성들처럼 특출날 것도 없었고 대체로 평범한 삶을 살았다. 역사의 줄거리를 만들어가는 것은 넙치의 사주를 받은 남성들이었고 여성들은 그저 남자들을 위해 요리를 하고 그 음식을 얻어먹은 남자들의 아이를 줄줄이 낳으면서 인류역사의 응달을 채워왔던 것이다. 



신석기시대의 아우아는 자신이 가진 세개의 유방에서 나는 젖을 남자들에게 베풀었고, 메스트비나의 호박이 녹은 대구대가리스프, 아만다의 감자스프, 조피의 갖가지 버섯요리, 레나의 돼지콩팥과 양배추를 넣고 끓인 죽 같은 결코 호화롭지 않은 서민들의 음식이 역사이래로 수많은 여성들에 의해 조리되었으며 왕부터 귀족, 수도사, 대장장이, 혁명가, 군인, 걸인 같은 남자들에게 대접되었던 것이다. 서양이나 동양이나 여자들은 제2의 성으로써 양식이 있건 없건 때가 되면 무언가 먹을만 한것을 남자와 아이들을 위해 만들어야 했다. 보리쌀을 한 줌 넣은 시래기죽을 끓이든, 반지나 비녀를 팔거나 심지어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서라도 식사는 마련되었다. 이렇게 헌신적인 식사를 먹고 난 남자들은 트림을 하고 방귀를 뀌며 남자들 끼리의 힘겨루기에 골몰하거나 일주일에 한 번씩 마누라를 두들겨 패면서 인류역사는 지속되어 온 것이다. 



조리를 위한 일체의 책임과 권리는 여자들에게 있어왔으므로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 준 것은 프로메테우스가 아니라 여자에 의해서였다고 작가는 이야기한다. 조리를 위해서는 불이 꼭 필요했으며 블을 이용하여 남자들에게 보다 나은 먹을거리들을 제공할 수 있었다. 이래로 서양이건 동양이건 집안의 불씨는 여자가 관리해왔던 것이다. 하지만 남자들은 불로 쇠를 녹이기 시작했고 그로부터 발생된 전쟁과 폭력은 인류역사 전체를 암울한 것으로 만들고 말았다. 애당초 불은 남자들에게 주어져서는 안되었던 것이다. 



넙치에 대한 재판과정에서 드러난 남성중심의 역사의 과오는 향후 넙치가 여성쪽의 편을 들었을때 어떤 역사가 이루어질지 기대기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성해방이 남자를 흉내내는 것이 되어서는 결국 같은 과오의 역사를 다시 쓰는 것에 불과할 것이다. 아버지의 날에 일어난 지빌레의 끔찍한 사건은 이것을 은유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인류에게는 새로운 길이 필요하다. 가부장적 위계질서도 아니고 페미니스트들의 천국도 아닌 아우아의 세번째 유방같은 제 3의 선택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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