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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화문덕 Mar 20. 2019

착하게 살아

영화 '우상'을 보고 난 후

영화의 첫 5분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관람석에 있는 관객의 이목을 영화로 끌어와야 하는 까닭이다.


영화 시작 전 어수선한 광고가 나오고 잠시 어둠이... 그리고 뒤에 들려오는 낮고 묵직한 내레이션...


화면은 어둡고 음산하다. 내레이션에서 들려오는 '자위'라는 단어를 듣고 처음에는 귀를 의심했다. 첫 오프닝에서 쓰는 단어가 맞나 싶어서다. 속으로 '아닐 거야 아닐 거야 더 집중을 해보자'라고 되뇌었다.


잠시 뒤 주인공 한석규의 모습이 보이고 영화는 밝아졌다.


깜박이는 우로 켜고
왼쪽으로 간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기에 영화 속 대사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습관이 있다. 그리고 그것과 영화 속 장면이 어떤 복선을 깔고 있을지에 대해서도 유심히 관찰하곤 한다.

소신 있고 배짱 있는 한석규.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집으로 들어가는 모습에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택시 뒷좌석에 앉은 그는 차창밖에 명함 크기의 전단지가 껴 있는 것을 보고 창문을 내리고 빼내려 한다. 하지만 창문을 내리면 작은 전단지는 창문과 함께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창문을 올리면 다시 나타난다.


감독은 과연 이 모습에서 어떤 복선을 깔아놓은 것일까. 분명 무언가를 의미하기 위해 넣은 것만큼은 분명하다는 생각이다.


숨길 수가 없고
숨긴다고 해도
평생 노예가 될 뿐이야

한석규는 아들도 예외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그가 말한 대사다. 사실 이 대사는 인생의 진리이기도 하다. 잘못된 행동을 숨기기 위해 숨긴다고 해도 세상에 비밀은 없고, 결국 완전범죄란 성립될 수 없기 때문이다.


설경구의 등장

잇따라 등장하는 연기파 배우. 설경구의 대사를 뱉는 톤과 표정 등이 스크린을 압도하기 시작한다. 아들을 잃은 것에 대한 상실감에서 오는 슬픔, 분노가 내 마음속 깊이 느껴졌다.


아들의 죽음. 며느리의 실종...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던 설경구는 며느리의 행방을 쫓는다. 그러다 며느리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된다.

한석규가
괴물이 되어가는 과정

'깨끗한 정치인, 유망한 정치인, 소신 있는 정치인'으로 보였던 한석규가 하나의 사건을 시작으로 괴물로 변해가는 과정이 묘사되어 있다. 이 부분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정치인을 풍자한 대목처럼 보이기도 하다. 마지막엔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마저도 잃는다. 그저 그에게 인간은 이용의 대상으로 치부될 뿐이다.

착하게 살아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내게 남은 단어는 이거 한 단어다. '착하게 살아'


천우희는 살기 위해 살인을 하고 자신에게 상처를 준 이에게 철저하게 복수를 한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그렇다고 하기엔 살인마의 모습이 더 강해 보였다. 동정할 수 없는...

감상평

'왜 영화감독은 영화 제목을 '우상'이라고 지었을까'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볼 만하다. 물론 마지막 엔딩 장면에서 느껴지는 명쾌한 메시지가 있어 보이지만, 사실 그것 하나만 놓고 생각해야 한다면 너무 뻔한 영화일지도 모르겠다.


내게 어려운 영화일 수 있다. 감독이 주는 메시지를 읽어내기에 나의 내공이 너무 얕을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인간이 얼마나 추악해질 수 있는지, 얼마나 쉽게 타락할 수 있는지를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나는 잘 살고 있는가', '내 삶은 부끄럽지 않은가'라는 물음을 내 자신에게 던지는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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