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다르다고 꼭 나쁜 건 아냐

영화 E.T를 보던 아들이 슬픔을 토해냈다

by 광화문덕
한 번 봐야지 하고 미루다가
마흔이 되어 본 영화

2019년 9월 12일 한가위 휴일. 아들과 만두와 송편을 빚다가 EBS채널에서 영화 E.T 예고편이 나오는 걸 우연히 보게 됐고 아들과 난 본방 시청을 하게 됐다.


사실 너무 유치하진 않을까 하는 생각에 흥미를 가지지 못한 나지만 아들의 기대를 꺾고 싶지 않아 아들에게는 "재미있을 거야 외계인 나오는 이야기야"라며 가식을 떨어댔다.

영화가 드디어 시작됐다

그리고 얼마 후 E.T와 아이(앨리엇)의 만남, 그리고 그 둘이 친해지는 과정에서의 흐뭇함도 잠시...


E.T가 아프다. "E.T PHONE HOME"을 외치며 병들어가는 E.T. 그리고 외계 생명체를 찾고 있는 어른들의 모습. 그 과정 속에서 무언가를 암시하는 듯한 '개구리 해부 실습'.

아들이 운다

아들이 감정에 북받쳐 운다. 다쳤을 때 서럽게 우는 그런 슬픔이 아닌 마음이 아파서 우는 그런 울음이다. 혹여나 영화 속 E.T가 어른들에게 잡혀가 '개구리 해부 실습'처럼 당할까 봐... 자신들의 지적 충족을 위해 한 생명을 앗아갈까 봐 두렵고 슬픈 듯했다.


나는 다독여야 했다. 비록 결말은 모르지만 난 "아들, E.T는 살아날 거야 우리 기도하자"라 위로했다. 영화 결말을 모른다는 게 이토록 속상할 수 없었다.

아들의 눈물을 통해 배운 깨달음

사실 나를 비롯한 내 주변을 되돌아보게 됐다. 나는 나와 의견 또는 다르다는 이유로 그들을 대상으로 '개구리 해부 실습'을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E.T는 나와 다른 모습이지만 생명체임은 분명하다. 게다가 아이들과 한 공간에서 있었지만 아이들에게 병을 옮기는 등의 해로움은 없었고 오히려 아이가 다친 것을 치료해주고 시들어가는 식물에게 생명을 불어넣어줬다.

생명은 소중하다 했는데

난 어려서부터 배워왔다. '생명은 소중한 것이다'라고. 그 누구도 남의 생명을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고 말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이런 배움의 가치는 혼란스러워진다.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해 생명들을 짓밟고 유린하고 그러면서 승승장구하는 이들을 보게 돼서다.


오로지 자신만의 이익 추구가 절대 선이고 공익이며 진리라 믿으며 아랫사람들에게 절대복종하지 않으면 죽음이라는 식의 위력을 행사하는 이들...


나 역시도 누군가에게 그런 식으로 비친 적은 없을지... 반성하게 됐다.

항상 네 곁에 있을게

E.T는 다행히(?)도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영화는 끝났다. 하지만 아들의 슬픔은 계속됐다.


들을 꼭 안아줬다. 그리고 잠시 눈을 감고 아들의 순수함이 다치지 않길 기도했다. 다른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다른 생명의 위협을 보며 안타까워하며 공감하며 슬퍼하는 마음... 그런 마음들이 말이다...

항상 네 곁에 있을게

마지막 대화가 귓가에 맴돈다. 나를 지켜준 이에게 E.T가 우주선을 타기 전 남긴 말이다.


"아들 이제 나이가 들어가면서 너를 아껴주고 지켜주는 이들을 만나게 될 거야. 그들을 귀히 여기렴"


그리고 아들...


"아빠는 나이가 들어 쉬이 지치고 병들어가게 될 테지만 변치 않는 건 있어. 늘 네 편이고 네 곁에 있을 거란 거지. 아빠의 아빠와 엄마처럼 말야. 너도 그런 존재가 되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