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거만했던 것일까. 아니면 사람들의 호응에 취해 있어서였을까. 나만의 연맹을 꾸린다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명백하게도...
6개월 만에 다시 돌아온 맹주로서 내 의사결정은 보란 듯이 결과가 좋지 않았다. 그리고 오히려 연맹원들을 더욱 혼란스럽게 했다... 난 나의 식견 없음을 끊임없이 자책해야 했다...
지금 우리는 다시 연맹을 추슬러야 하는 상황이다. 우리에게는 늘 방패막이가 되어주던 '타로마루' 같은 든든한 존재가 사라지고 없다. 외부의 힘에 맞서 싸우면서도 연맹원들의 처우에 굉장히 많은 신경을 써주던 그였지만 서버 이전으로 인해, 이제는 내가 모든 것을 다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우리 연맹은 서버 내에서 상위권이다. 하지만 결국 힘의 논리로 이끌어가는 게임이다 보니 상위권이라 하더라도 결국 국왕의 지시에 거스르게 된다면 강제 해체될 수 있다.
맹주가 된 이후 매일매일이 고민의 나날들이다. 생각이 많은 탓에 이래까지 고민하면서 게임을 해야 하나 싶을 정도다.
일단 리더를 자처했다면 접더라도 맨 마지막에 품격 있게 마치세요 맹주로 시작한 이상 무조건 마지막에 접으셔야 합니다
요 며칠 계속 되뇌고 있는 말이다.
무책임하게 내려놓아서는 안된다 현생에서는 더 고통스러울 텐데 게임 속이라도 이래 쉽게 포기해서는 안된다.
심호흡을 하며 차근차근 뒤엉켜버린 실타래를 풀어나가려 애쓰고 있다. 그리고 방금 전 사실상 서버를 주도하는 연맹 외교담당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우리 쪽과 합병 논의를 하고 싶다는 연락이었다. 난 직감할 수 있었다. '다시 내놓아야 하겠구나'라고.
사실 미련은 없다. 더 이상 맹구 짓할 기운이 없어서이기도 하다. 혼란스러운 이때에는 연맹을 살리는 데 쥐어짜 내야 한다. 그리고 연맹을 스스로 지킬 힘이 없다면 자리를 내놓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나 역시 그렇게 흡수합병을 진행해 왔다. 나라고 예외는 아니다.
다만, 맹주로서 자리를 내려놓는다 하더라도, 끝까지 나와 함께 해주는 이들을 지켜내야 한다. 그들이 자유롭게 게임을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아... 유비여...
삼국지 속 유비가 떠오른다. 사실 삼국지를 읽으며 유비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힘은 없으면서 대의를 품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이라고 생각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젠 알 것 같다. 그런 험난한 현실 속에서도 대의를 잃지 않고 꾸준히 사람을 모으고 세를 키워나간 그가 얼마나 위대한 사람인지 말이다. 그렇게 작은 세력으로 훌륭한 장수들을 자신의 수하로 오도록 한 매력이 엄청난 것이었으리라...
지금 내겐 초기 함께 했던 이들과 흡수 합병하는 과정에서 나에게 호감을 느낀 몇몇 분들이 함께 해주고 있다. 그들은 내가 꿈꾸는 세상의 가치를 존중해주며 이를 이룩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하지만 나와 함께 하는 그들의 게임 속 삶이 얼마나 험난한지 미안할 뿐이다.
아쉬움을 토로하니 게임 속 오랜 벗이자 함께 해준 이가 "힘내라"며 글귀 하나를 전해준다.
비내리는 우울한 날씨를 바꿀수는 없다. 다만 즐거운 척 하는 것 그리고 마음이 즐거운 것은 내가 할수 있는 일이다. 즐거움을 위해 사는데 주변에 영향받을 필요 있으랴
정신 차려야 한다.... 다만 처음 게임을 시작했던 그 시기 내 다짐을 잃지는 않을 것이다. 게임 속에서라도 내가 꿈꾸는 세상을 만들어보고자 한다는 그 신념을 말이다. 비록 한숨만 나오지만........ 쉽게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와 함께 해주는 이들이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