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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화문덕 Jul 26. 2020

독선은 결국 나를 찌른다

'독선'에 빠져 '정의'를 외쳤던 부끄럽던 날들

나 안 가요. 다시 초대하지 마세요

'어둠 속 가득한 이'는 마지막으로 글을 남기고 떠났다. 지난해 10월 처음 '라오킹'을 시작할 때 알게 돼 약 9개월을 같이 매일 대화를 했던 사이라 아쉬움이 크긴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사실 6월쯤... 아니 5월쯤부터 그는 흥미를 잃었다. 그런 그를 어떻게든 다독여 게임을 해보겠다며 지낸 것도 여러 번이지만... 결국 그는 그의 갈 길을 가버렸다.


이번에 그를 보내면서 많은 서운함을 토로했다. 친한 후배에게 말이다. 이 후배는 나 때문에 라오킹을 시작하게 됐고, 지금은 내가 고민하는 것들을 같이 고민해주는 든든한 동지이기도 하다.


선배 아직도 모르시겠어요?

"야 들어봐! 내가 더 서운하지. 내가 지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데... (주절주절)"


"아니... 선배 뭔 소리예요. 그게 뭐가 중요해요!!! 아직도 맥을 못 잡고 있으시네요. 잘 생각해봐요. 난 할 얘기 다했으니까. 이건 저번에도 그랬고 이번에도 그렇고... 선배가 깨달아야 하는 부분이에요"


"야 그렇게 말하지 말고 속 시원하게 말해봐! 그게 뭐냐고... 혼란스러워 미치겠다"


"안돼요. 이건 선배가 깊이 깨달아야 해요. 제가 말한 것들을 다시 읽어봐요. 차근차근"


아.... 답답하네...

혼란스러움은 가중됐다. 그리고 한 통의 카톡이 도착했다. '어둠이 가득한 그'의 이탈로 톡방 분위기는 얼어붙었고, 그 가운데 한 분의 일침이 보태졌다.

원하는 게 현생으로 이어진 인연들의 화합입니까? 아니면 게임을 통한 자기실현입니까?

게임 내의 조직도 마땅히 그 조직을 이루기 위해서 이뤄야 할 대가가 있습니다. 현실에서도 공동체의 리더가 그 리더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는 마땅한 값을 치릅니다. 그것이 경력이 되었든 능력이 되었든 자신 만의 기준이 아니라 그 공동체에 부합되는 기준에 통과해야 리더가 됩니다. 그냥 단순히 친하다고 혹은 사람이 좋다고 리더로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분위기를 잘 띄운다고 해서 리더가 되지 않습니다. 

공동체란 어떤 한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행복하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행복한 것도 아닙니다. 공동체에는 공동의 목표가 있어야 하고 모두의 행복은 이룰 수 없다 하더라도 다수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공동체의 존재 이유가 게임 내 본인의 이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순수한 사람들을 모아 마땅히 그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제공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위해 그들의 시간과 재화를 착취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깊은 수렁에 빠진 기분

답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즉답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나를 되돌아봐야 하는 상황이다. 


문제는 지금 내 마음이 이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태라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혼란스러움에 빠져 있는 상황이라 글자들이 제대로 읽히지 않을 정도였다.


후배가 이야기한 것들을 곱씹어 봐야 한다. 후배가 말한 내가 놓친 맥을 찾아내 짚어야 한다.


그러다 후배가 '어둠 가득한 그'가 나간 뒤 톡방에 써놓은 문장을 찾아냈다. 그리고 마침내... 내 관점이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설득이든 뭐든 내가 느끼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상대가 느끼는 게 중요한 거죠. 잘해주는 것도 내가 상대 빚지 우려고 하는 경우 많아요. 상대가 고마움을 느껴야 고마운 거지, 내가 많이 잘해줬다고 상대가 고마워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 전 좀 지켜보렵니다


그래... 난 '그'가 게임에서 벗어나 현생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것을 존중해주는 것이 아니라, 정을 빌미로 붙잡으려고 했다. 그리고 붙잡기 위해 내가 노력한 것들을 마치 그에게 베푼 것인 양 그가 떠난 후 토로했다. 그리고 그런 관점 속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머리로는 이해됐지만
마음으로는 이해하지 못했다

솔직히 그날 하루 종일 서운한 마음이 더 컸다. 머리로는 나의 관점이 잘못됐고, 내가 지금 하는 이야기들이 부질없는 나만의 이기적인 하소연임을 깨달았음에도...


그리고 며칠이 지난 지금, 이 기록을 남기기 위해 지난날의 카톡을 살펴봤다. 그리고 알게 됐다. 냉정함을 되찾고 읽어보니 '그'의 대화 주제 속에 우리가 함께하는 게임의 이야기는 없었다.


'아... 내가 그를 정이란 쇠사슬로 그를 묶어두었었구나...'


변명을 하자면, 난 게임을 함께하지 못하면 인연이 끊길 것이라 너무 두려웠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집착하고 있었다... 나의 게임 속 애칭을 다른 사람들의 닉네임 앞에 붙여주라며 강요하고 있었다. 


분명 주변에서 '적당히 하라'고 좋은 말로 만류가 있었음에도 난 듣질 않았다. 그때에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귀가 닫혀버렸던 것을 몰랐다... 어리석게도...


그러면서 사람들의 관심만을 쫓는 '관심종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며 '미친 사람처럼' 광대놀이를 즐겼고, 나를 조금이라도 비판하는 이들에게는 예민하게 반응했다. 나를 좋아하고 내게 좋은 말만 해주는 이들만 바라보려 했다. 내게 쓴소리를 하는 이들에게는 관심을 두려 하지 않았다.

고해성사 시간

내게 큰 가르침을 준 이들에게 사과했다.

잠시 리더 놀이에 빠져서 정신 못 차린 거 인정합니다. 직설적인 이야기는 뼈아프지만 인정하고 반성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늘 좋은 지적 해주심에 감사합니다. 전 그저.... 제 바람은... 유쾌한 이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참 어렵네요......

사실 난 현실 세계에서든 온라인 세상에서든 '유쾌하면서도 많은 이들에게 인정받는 이'가 되고 싶다. 상식이라는 가치 안에서 사람들과 대화하고, 필요하면 토론하고, 비난이 아닌 건강한 비판을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결과는.... ㅠ_ㅠ


삼국지를 보면 왕윤이 초선을 통해 여포와 동탁 사이를 멀어지게 하고, 동탁을 제거하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정권을 잡은 왕윤은 정의를 외치며 항복하는 이를 모두 죽이고자 한다. 하지만 가만히 죽을 수 없다고 저항하는 이들에게 결국 성을 내주고, 왕윤은 죽게 된다. 그러면서 이런 평이 나온다.

'비록 정의일지라도 지나치게 독선에 흐르면 화가 따른다'


나는 정의라고 외치며 행동했을 수 있으나, 이미 변한 내가 외친 정의는 대다수에게 정의가 아닐 것이다. 그저 구호일 뿐 이리라. 


리더 놀이에 빠져 '독선'으로 공동체를 운영하고 있으면서 '정의'라 믿었던 내가 부끄러울 뿐이다. 명심해야 한다. 독선은 결국 자기 자신을 찌른다...


반성한다. 난 어느새 '리더 놀이'에 빠져있는 '아집 가득한 이'였다. 다행히 이번에는 '아집'과 '독선'에서 빠져나왔으나 언제 다시 빠질지 모르기에 이렇게 기록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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