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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화문덕 Oct 19. 2020

#5화. 신의 사이다

[나는 광화문덕이다]군자역 춘천골 닭갈비... 깻잎 향 한가득

나는 광화문덕이다
#5화
“그대의 치밀하고 치사한 계략은 하늘의 이치를 알았고, 기묘한 꾀는 땅의 이치마저 꿰뚫었구려. 싸움에 이겨 공이 이미 높으니, 만족할 줄 알거든 이제 그만 좀 작작해라.” 사람에 속고 사람에 상처 받으며 사람 속에서 부대끼며 오늘 하루도 고군분투한다. 하루하루 버티듯 살아가며 느낀 소중한 마음을 이제 연재를 통해 기록하려 한다. 하늘은 삶을 귀한 덕으로 여긴다. 나는 광화문에 산다. ‘광화문덕’이다. [편집자주]

“술을 끊으셔야 해요.”


요새 이유 모를 아픔들이 내 몸에 나타나는 것이 불안해 찾아간 병원.


날개뼈 쪽 통증이 심해 갔다가 자연스럽게 ‘주사’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술 마시고 기억을 잃는 것도 그렇고, 술 마시면 기분이 너무 좋아져 오버하는 것도 그렇고… 이래저래 무언가 도움을 얻고 싶어서였다.


선생님의 답변은 간단하지만 단호했다.


“술을 끊으셔야 해요. 술을 끊을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잘 생각해보면 본인이 술을 찾아다니고 있는 건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어쩌면 난 술자리를 피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방어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내상을 입어 잠시 술을 입에 대지 않았던 때가 있었는데, 그때에도 상대는 내게 술을 강권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좋아서 마셨던 게 대부분이었다.

그러고 보니 솔직히 말해, 난 내게 강권한 스타일이었다. 상대가 내게 술을 권하지 않았는데도 어색해서 한잔, 말이 끊겨 뻘쭘해서 또 한잔, 침묵의 시간이 다시 찾아오면 그것이 싫어 또 한잔….


이러한 순간들을 참지 못하고… 난 나에게 강요했다. 마치 뻘쭘하면 마셔야 하는 벌주를 마시듯….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애쓰며 내가 오히려 술을 권했던 것은 아닐까. 그러면서 난 스스로 술을 마셔야 한다고 자기 합리화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그 순간 소름이 끼치며 닭살이 돋았다. 마음속 울림이 온몸으로 퍼져나가며 ‘이대로 난 닭이 되는 건가’ 자괴감까지 들 정도였다.


바로 실행에 옮겼다.

우선 이번 주 나와 저녁 일정을 함께하기로 한 분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응원해주는 분들도 있는 반면, 신랄하게 내 결의를 자극하는 이들이 있었다. 바로, 게임 속 인연에서 현생(현실 세계)으로 이어진 ‘겁니피곤’ ‘캐러다녀’ ‘어둠 속 기운이 가득한 그’ 그리고 ‘나가이써’다.


모두가 하나같이 나의 결의를 비웃듯 속을 뒤집는 말들을 쏟아냈다. 역시 온라인 속 인연이라 그런지 ‘그들은 날것의 신랄한 비판’을 이어갔다.


○ 매일 무언가를 캐러다니는 캐러다녀

 ☞ “혼자 목표 세우고 고민하다가 혼자 깨는 진부한 스토리를 기대합니다. ‘용서할 수 없다!!!’ 하면서 깨진 거에 실망하여 더 꽐라가 될 것임. 저는 그날 꽐라가 되겠습니다. (금주선언이) 깨지는 순간 바른말 고운 말 방이 욕 방으로 바뀝니다”

○ 매번 어딜 그렇게 나가고 싶은 나가이써
☞ “이제 엄청난 유혹에 시달리게 되시겠네요. 연락이 없던 사람이 전화 와서 술 한잔 하자고 하는 빈도수가 늘어날 듯해요. 금주 수첩 쓰세요. 1주 차 2주 차”

○ 요즘은 어둠 속 기운이 더욱 짙어진 그
☞ “뭔 소리야. ㅋㅋㅋㅋㅋ 나도 그날 꽐라 될 예정!!!”


'아, 정말… 이 인간들... 단결력 좀 보소'


평소 나의 행동의 결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미치자, 더욱 오기가 생겼다.


“전 술 끊을 거예요”


그들의 거듭된 회유와 비판에도 난 굴하지 않고 거듭 내 의지를 밝혔고, 그들은 대화창에서 하나둘씩 사라졌다.


그리고 그날 저녁…

만나기로 한 당일 오전, 갑작스럽게 금주 통보를 받은 후배는 기꺼이 내 결정을 존중해줬다.


난 후배와 술이 아닌 사이다로 우리의 이야기를 어색하지 않게 풀어낼 수 있는 음식과 장소를 검색했다.


장소는 교통상황을 고려해 중간지대에서 보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메뉴는 요새 꽂혀 있는 ‘닭갈비’로 정했다.

최근 시청역 ‘대한 닭갈비’를 맛본 이후 닭갈비가 부쩍 그리워졌다. 닭갈비 하면 무언가 느껴지는 그만의 분위기가 있고, 요새 난 그 분위기에 푹 빠져 있다. 아련한 그리움… 향수 그런 느낌이랄까.


그렇게 찾은 곳은 ‘군자역 춘천골 닭갈비’.


군자역 2번 출구로 나와서 10여분 정도 걸어야 한다. 그렇다고 가는 길이 지루한 건 아니다. 이곳은 이곳만의 감성을 가진 작은 가게들이 길가에 자리 잡고 있어 걸으면서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무제한 삼겹살 미친 생고기’, ‘일식당 피읖’, ‘미용실 우연히’ 등.


우연히~ 그렇게 널 만난 거야~ 갑자기 노랫말이 떠올라서… 죄송
출처:Again 가요톱10 : KBS KPOP Classic
마침내 도착한 가게

가게 외관에서 ‘식당이 함께한 세월’이 느껴졌다. 화려하고 큼직한 네온사인이 당시 식당 간판의 유행을 보여주는 듯하다. 인상적이다.

일러스트 = 이주섭

오후 6시 50분쯤 도착해 들어가니 벌써 절반이 차 있다. 낯익은 실내 풍경. 동네 주민분들이 이른 저녁 닭갈비에 소주와 맥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고 아이를 동반한 가족도 있었다. ‘순살 볶음밥’을 먹는 아이들의 표정에서 만족스러움을 느낄 수 있었다.


한쪽 벽에 큼직하게 붙어 있는 메뉴판으로 시선을 옮겼다. ‘낙지닭갈비’란 단어가 눈에 띈다. 최근 닭갈비 공부를 했지만 ‘낙지닭갈비’는 생소하다.


“사장님, 여기 낙지닭갈비 2인분이요~.”


여기서 먹을 수 있는 메뉴란 생각에 고민 없이 바로 주문했다.


사장님이 찬을 내어 주셨다. 상추와 고추, 미역냉국이 내 앞에 놓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커다란 팬에 낙지닭갈비가 올려졌다. 메인 식재료인 낙지와 닭갈비에 기본 사리로 양배추와 고구마, 야채와 떡볶이 떡이 같이 곁들여져 있다. 닭갈비가 익을 때쯤 되니 사장님께서 깻잎을 듬뿍 넣어 볶아주신다. 깻잎 향이 콧속을 자극한다. 향기롭다. 후배를 기다리는 동안 먹음직스럽게 익어간다.

일러스트 = 이주섭

숟가락을 들어 미역냉국을 한 술 떠먹었다. 그리고는 그릇 통째로 벌컥벌컥 들이켰다. 시큼 달달한 식초와 설탕의 감칠맛에 미역의 식감이 더해지니 입안 가득 식욕이 용솟음친다.


배가 고프다. 흰색 와이셔츠를 입은 나는 앞치마를 둘렀다. 상추에 떡과 깻잎을 넣고 입안으로 구겨 넣었다. 후배가 올 때까지 기다리기엔 늦었다. 나의 침샘이 이미 폭발했다.


30분쯤 지나자 낯익은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낙지닭갈비의 자박자박함이 말라갈 때쯤 후배는 도착했다.


“사장님 죄송한데요, 여기에 라면 사리와 떡사리 추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후배는 늦은 게 미안하다며 연신 고개를 숙인다.


“강남에서 오느라 고생했어. 많이 막혔을 텐데. 어여 먹자. 사장님, 여기 ‘사이다’도 한 병 부탁드려요!”


투명한 유리잔에 사이다를 따라주며 미안해하는 후배가 민망하지 않게 오는 동안의 노고를 위로했다.


오늘 만난 후배는
늘 성장을 꿈꾼다
그만큼 그의 삶은 다이내믹하다.


그의 장점은 사람과의 관계에 적극적이고, 사람을 얻는 데 주저함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그의 꿈을 응원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그 역시 나의 꿈을 지지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오늘 소주 대신에 사이다를 먹자는 내 제의에 흔쾌히 응해줘서 고마워.”


“아니에요. 저도 요새 술을 좀 덜 먹고 싶다는 생각이 많았는데 오히려 감사해요.”


그 역시 업무 피로와 술에 간이 많이 지친 듯 보였다.


그렇게 우리는 닭갈비에 사이다를 기울이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했고, 그러다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그분은 절대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인물이에요. 사실 그 자리에 있으면, 그 일을 하려면 불의와 어쩔 수 없이 타협해야만 하거든요. 물론 아직 무언가를 이루진 못했지만 끊임없이 도전하면 그분은 꼭 이룩할 거라고 봐요. 정말 존경스러울 정도예요.”


조용히 들었다

사실 후배가 ‘존경’이라는 단어까지 써가며 이렇게까지 설명할 정도라면 분명 그에게 좋은 사람일 테니 말이다.

술을 마시지 않으니 닭갈비는 어느새 동이 났다. 나는 두 번째 사이다를 시키며 ‘볶음밥’을 사장님께 부탁드렸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꼬슬꼬슬하게 잘 익은 볶음밥은 금세 우리 눈앞에서 사라졌다.


“사장님, 계산 부탁드려요.”


사장님은 계산기를 누르시며 우리가 먹은 것을 설명해주셨다.


“닭갈비 2인분에 사리 2개. 1개는 서비스고요. 사이다 2병 중에 한 명도 서비스고요. 볶음밥 2인분 여기서 천 원 빼드렸어요.”


할인 내역을 말씀해주시며 환하게 웃으시는 사장님의 얼굴에서 여유가 느껴졌다. 사장님은 내게 자비를 베푸셨다.


“사장님 많이 파세요. 고맙습니다.”


나오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곳 닭갈비 가게만의 느낌이 있다. 이곳은 사장님과 일하시는 분들의 인심이 있는 특별한 곳이다. 동네 주민들이 찾는 이곳, 아이와 함께 먹으러 올 수 있는 그런 식당. 인터넷에 올라온 리뷰를 살펴보다 보니 초등학교 시절부터 아빠와 함께 다녔던 ‘15년 이상된 단골’이라는 글이 눈에 들어왔다. 역시 그랬다.


‘이곳은 동네 사람들로부터 신의를 얻어 이렇게 오랜 기간 사랑받으며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8시 30분쯤 식당을 나와 커피 한잔 하러 가기 위해 걸었다.


그러면서 나는 그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사실 난 아까 네가 존경한다는 그분에 대해서 다른 관점에서 보고 있어. 음, 뭐랄까… 난 사람과의 ‘신의’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


그는 한 번에 내 말의 의미를 이해했다. 인기는 스쳐가는 바람일 수 있다. 음식점이든 사람에게든. 하지만 그 본질인 ‘신의’를 잃지 않는 것이다. 신의를 기반으로 꾸려 낸 터전은 주변에 그 누가 오더라도 쉽게 자리를 내주지 않을 테니 말이다.


내가 술을 끊고자 하는 것, 물론 어쩔 수 없는 때에는 마셔야 하겠지만… 그 이유는 단 하나다.


내게 소중한 사람들과 쌓은 신의를 지키고 싶어서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데에는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라는 걸 알아서다.

일러스트 = 이주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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