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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화문덕 Nov 29. 2021

문득 꿈꾸던 날들이 그리웠어

'49살의 나는 지금의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냥 그때가 떠오른다


그래 그때였어. 2008년 8월 4일 새벽 6시. 태풍 소식으로 서울엔 비가 쏟아붓고 있었지. 내 삶의 선택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며 보낸 나날들... 꿈은 높았지만 현실로만 보면 그 어떤 희망도 보이지 않았던 그때.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섰다. 배낭이라고 해봤자 백팩 정도다. 당시엔 옷도 많지 않았기에 츄리닝 한 벌에 속옷 몇 개 정도 챙겼다. 사실 내 삶의 첫 여행이었기에 뭘 넣어야 할지 몰랐다. 그냥 집을 떠나서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생각 하나로 짐을 싸서 나온 것일 뿐.


당시 내가 가진 돈은 20만 원이 전부였다. 그 돈이 다 떨어지면 그때에는 어디 가서라도 알바를 해서라도 돈을 벌어 집으로 돌아오면 되겠지란 생각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위험한 생각이었다. 그만큼 그땐 세상을 잘 몰랐던 것 같다.


그리고 그날 무작정 찾아간 서울역에서 첫 번째 선택의 순간에 맞닥뜨렸다. 어디로 갈 것인가. 오롯이 내가 선택하고 선택한 결과에 대한 책임은 내게 있다. 표를 사기 위해 매표소 앞 전광판(?)을 봤고 거기서 '목포'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직감적으로 목포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표를 샀다. 기차에 몸을 실다. 기차는 마냥 달렸다. 마음속 설렘은 없다. 그저 두려움뿐이다. 목포에 들러서 뭘 해야 할지 모른다. 그저 직감적으로 선택만 했을 뿐이다.


첫 여행. 첫 선택. 내 삶을 이제 내가 주도적으로 살아보겠다고 다짐하며 한 내 첫 가출.


목포엔 항구가 있겠지?
바다가 보고 싶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이 떠올랐다. 매일 새벽 6시부터 새벽 2시까지 미친 듯이 닥치는 대로 문제집을 풀었다. 고3 3월 모의고사 점수가 대학 진학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었고 충격받았다. 내신 점수는 교과서 열심히 외우고 해서 괜찮았는데... 수능 내신과 전혀 다른 수준이었다. 문제 유형도 달랐고...


대학교는 가야겠기에 세상 모든 문제 유형을 다 외워보자고 다짐했다. 아니면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당시엔 그랬다. 그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라고 생각했다.


전략은 성공한 듯 보였다. 내신 1등, 수능점수는 바닥에서 가파른 우상향 곡선을 그렸으니. 하지만 벽에 부딪혔다. 그게 아마도 한계 같았다. 하지만 그 점수로는 수도권을 벗어나야 한다. 난 지방에서 월세나 전세를 낼 돈이 없다.


친한 친구에게 한강에 가고 싶다고 했다. 혼자 갈 용기가 없어 같이 갈 친구를 구했다. 바다가 보고 싶었지만 갈 배짱이 없었고 가는 방법도 몰랐다. 늘 학교 집만 하던 아이라 인천까지 가는 게, 일상 동선을 벗어나는 게 겁났다.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한강으로 갔다.


여의나루 역에 내려 친구와 한강 앞에 그려 앉았다. 그리고 미리 챙겨간 A4용지에 편지를 썼다. 미래의 나에게. 친구는 어떤 글을 썼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 편지를 종이배를 만들어 한강에 띄웠다. 친구와 난 한솥도시락으로 배를 채웠다. 다시 독서실로 돌아와 공부했다. 그때가 19살 때다.


2008년이면 29살 때구나...


생각해보니 난 19살과 29살 9살 때마다 고민이 많았구나...


이런저런 생각하다 잠이 들었다. 목포에 도착했다. 5시간쯤 걸린듯하다. 돈은 없지만 시간은 많았기에 무궁화호를 타고 갔었다.


목포역에 내리니 바다가 보이지 않는다. 내 상상과 달리 내가 살던 서울 동네와 큰 차이가 없다. 배가 고파왔다. 먹을 곳을 찾았다. 김밥천국이다... 한숨이 나왔다.


'여기까지 와서도 김밥천국 아니면 편의점을 찾는구나..'


두리번거렸다. 서울 촌놈이니. 택시를 탈 돈은 없다. 아껴야 했다. 버스를 찾아봤다. 항구를 찾아갈 용기가 없다. 길을 잃을까 두려움이 나를 덮쳤다. 시외버스터미널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거기 가면 좀 더 이동할 수 있겠다 생각이 들었다.


대한민국 땅끝을 한번 가보고 싶다...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해 마주한 아니 또다시 해야만 하는 선택의 순간이다. 선택의 결과는 나의 몫이다. 내가 책임져야 한다. 땅끝으로 가는 표를 끊었다. 시외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가 떠난다. 아직 창밖엔 비가 오고 있다. 차창에 매달린 빗방울. 위태롭지만 나와 같은 듯해 슬퍼졌다. 차가 출발한다.


땅끝마을이다. 이곳도 내 상상과는 전혀 달랐다. 바다가 보이고 그 앞에 관광객을 기다리는 횟집 그리고 모텔이 즐비하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 난 뭘 해야 할까'


방황하는 내 눈앞에 배 한 척이 보였다. 보길도로 들어가는 여객선이었다. 표를 끊으려 했다. 하지만 표 파는 분이 태풍 와서 위험하다고 하셨다. 다들 나오고 있는 중이라서 들어가면 나오려면 며칠이 걸릴 수도 있다고 하셨다.


'괜찮아요. 1장 주세요"


배에 올랐다. 바닷바람이 이런 느낌이구나. 시원하다. 사람도 드물다.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하고 싶어 사진을 찍었다. 가출을 하기 위해 중고나라에서 캐논 카메라가 싸게 나온 게 있어서 하나 사뒀다. 사진만 찍을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해 저렴한 걸로 샀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행이다. 기록을 해둔 게.


그때의 복잡했던 마음들을 떠올리려 애써보지만 잘 기억나지 않는다. 강한 바닷바람에 정신없이 휘날리던 머리카락만이 내 기억 속에 자리하고 있다. 그땐 장발은 아니었지만 머리카락이 전반적으로 길었다.


보길도란 섬이다


이런 곳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지만, 당장 급한 것은 묵을 곳을 찾는 것이었다. 다행히 전봇대에 숙박 연락처가 적혀있었다. 전화를 걸었다. 1박에 3만 원이라고 하셨다.


딸이 조선대학교 졸업해서 지금은 타지에서 직장생활을 하신다고 하셨다. 나와 동갑내기라고 하셨다. 그분들의 나이는 지금 내 기억 속을 더듬어보면 40대 후반이나 50대 초반이신 듯 젊어 보이셨다. 난 가방을 방에 두고 펜과 메모장 하나만 챙겨 집 근처에 바닷가에 쭈그려 앉았다. 바닷가로 가려면 좁은 골목을 지나 초등학교를 지나가야 한다. 내 기억 속 장면에는 바닷가 앞에 초등학교가 있었다.

 

섬이 조용하다. 태풍이 온다고 해서 관광객들은 모두 돌아간 뒤이니 그럴만했다.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했다. 혼자 있고 싶었다. 혼자만의 시간이 너무도 필요했다.


해가 진 어두컴컴한 바닷가 앞, 나 혼자다. 아니 섬 안에서 밖에 나와있는 건 나 혼자 같았다. 나를 지켜보는 건 펜과 메모장뿐이다. 편지를 썼다. 나에게. 뭐라고 썼는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그 편지를 바다 위에 띄웠다.


숙소로 돌아다. 그리고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어 또다시 숙소를 나와 바닷가에 쭈그려 앉았다. 펜과 메모장을 옆에 두고. 점심시간이 되었지만 밥을 어디서 먹어야 할지 모르고 무언가를 찾아다닐 생각이 없었다. 난 여행 온 게 아니었다. 내 삶을 되돌아보기 위해서 간 것이었다. 주인집 분들이 밥을 차려주시겠다고 하셨다. 괜찮다고 사양하니 돈은 받지 않으신다 하셨다. 두어 번 거절하다 식탁 위에 앉았다.


삼계탕이다


내가 너무 말랐다고 하시며 몸보신해야 여행도 잘할 수 있다며  푸짐하게 차려주셨다. 당시 내 몸무게는 57kg이었다. 볼품없이 앙상하게 마른 20대였다.


감사한 마음 죄송한 마음이 내 안에서 뒤엉켰다. 엄마 아빠가 그리워졌다. 밥을 먹는데 그동안 내가 너무 쉽게 따뜻한 집에서 따뜻한 밥을 고민 없이 편히 잘 누리고 살았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허기진 배는 염치없이 차려진 삼계탕을 모조리 마셔버렸다. 더 주신다고 하셨지만 그제야 염치가 생겨 괜찮다고 말씀드리고 다시 바닷가로 나왔다.

 

별이 보일 때까지 바닷가에 쭈그려 앉아 내 머릿속 마음속 복잡한 생각들을 쥐어짜 내듯 끄집어내려 애썼다.


이튿날에도 점심식사를 차려주셨다. 그리고 딸 이야기를 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위태로워 보이셨나 보다. 당시에는 지금과 달리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묵언수행이라도 하듯 꼭 필요한 말만 했다. 거의 몇 자 하지 않았다.


그날 밤 메모장에 지금까지 나를 여기 보길도에 묻어두고 오겠다고 다짐하며 메모장에 다짐을 적었다.


바다에 떠내려 보냈다.


2008년 8월 6일부로, 이전의 나의 삶을 리셋이라도 하듯...


어떤 위태롭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선택은 오로지 나를 위해 내가 할 것이고 더 이상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앞으로 내 선택의 결과가 어떤 것이더라도 내가 감당해낼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게 나는 컴퓨터공학도로서 나를 그날 내 마음속에서 지웠다. 그리고 기자가 되는 날만을 꿈꾸기 시작했다.


마침내 기자가 됐다.


인정받기 위해 하루하루 살아가다 보니 꿈이 사라졌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다. 그리고 30대 후반을 넘어서며 목표가 사라졌고 난 그저 하루살이의 삶을 살아왔다는 걸 깨닫게 됐다.


하지만 29살의 나와 30대 후반의 나는 다름을 깨달았다. 지금은 부양해야할 아내와 아들이 있다. 지켜야 할 것들이 생겼고 그들을 책임져야 하는 위치다. 내겐 꿈은 사치일 수 있고 포기하고 현실에 순응하고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요즘이었다.


어제저녁 세종문화회관 S시어터를 찾았다. 나와 같은 시기 어려움을 이겨내며 마음의 벗이 된 분을 응원하기 위해서다.


2주 전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연극을 하게 됐다며 포스터를 카톡으로 보내주셨다. 예상치도 못한 이야기라 어리둥절했지만, 정말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같은 일이 내 주변에서 벌어졌다


영화 '즐거운 인생'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분은 이미 자신의 삶을 주인공으로 만들어가고 있구나란 생각이 들어 부러움도 짙게 마음속에 스며들었다


연극이 시작됐다. 지휘자가 등장하고 일반인이었지만 지금은 배우가 된 이들이 노래한다. 어색함은 전혀 없다. 그들은 이 순간 그 누구도 비교 안될 배우들일뿐이다. 모두가 다 자기 인생 속 주인공이다. 그들은 주인공으로 대우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고 자신을 찾기 위한 도전을 한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배우 나이대는 20대부터 다양했지만 눈에 띄는 건 70대 이상으로 보이는 여성분이셨다. 대사 중간에 나오는 외국어 발음을 통해 이 분이 얼마나 젊은 시절 우아하고 멋지게 살아오셨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또한 지금도 자신의 나이에 주저앉지 않고 새로운 꿈에 도전하는 열정에 감격했다.


잘 모르겠다. 나의 삶이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나를 찾기 위한 여행이 아닌 기도인 것 같다. 과거처럼 무책임하게 모든 걸 두고 홀로 떠날 수 없는 존재이니.


"어떻게 술을 안 마셔요. 세상이 이렇게 도는데. 이렇게 비틀거리고 걸어야 똑바른 거죠.

이 대사를 들으며 술만 마시면 취해버리는 나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여 반성하게 됐다. 아내도 아들도 이 대사를 들으며 나를 떠올렸다고 했다. 아마 내 주위분들도 같은 생각이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니 많이 부끄러워졌다.


연극 '라르고'에서 들었던 대사 중 기억하고 싶은 대사는 많았는데 연극하시는 분들에게 방해가 될 것 같아서 휴대폰을 켜고 기록하지 못했다. 작은 불빛이라도 연극하시는 분들에게는 방해 요소가 될 것 같아서다. 또한 주변에서 집중하면서 연극을 보시는 분들에게 반갑지 않은 이가 되고 싶지 않기도 했다.


목표 아니 꿈은 세웠지만 그것을 좇기 위해서는 희생이 필요한데 난 그 희생을 치를 준비가 되어있는지 모르겠다. 자신도 없고 확신도 없다. 19살 한강을 찾았던 때처럼, 29살 무작정 서울역을 찾아갔을 때처럼... 말이다.


후회하고 싶진 않다.


후회하는 삶은 실패한 삶이고 실패하는 삶은 성공한 삶이기 때문이다. 도전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49살에 나는 미련과 후회로 지금의 나를 비난할지 모른다. 도전에 실패한 49세의 나는 적어도 지금의 나를 비난하진 않을 것이다. 그저 실패하고 그다음 스텝을 밟아 살아가고 있을 테니 말이다


오늘은 그냥 내 이야기가 쓰고 싶었다. 요즘 좋은 차를 타고 맛있는 거 먹고 다니는 내 모습이 보기 싫으셨는지 구독취소를 누르는 분들이 많아지는 것 같아 속상하지만... 그 또한 내 모습이니 부디 구독자분들께서는 그냥 저를 있는 그대로 좋게 봐주셨으면 하는 바람도 담아 본다.


늘 고민하고 살아가는 저라는 사람의 본질은 변함은 없어요. 다 제가 요새 게을러진 탓 같아요. 앞으로 제 이야기에 더 많이 귀를 기울이고 제 마음속 이야기를 더 많이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오늘도 건강하세요. 몸도 마음도요
- 2021년 11월 29일 꿈을 꾸던 날들이 그리운 날 광화문덕 올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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