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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화문덕 Dec 29. 2021

뇌싱남 겁니피곤 대단해요

[광화문덕 시즌2: 나를 찾아서]나는 기억하기 위해 글쓴다

와인?

난 요새 잠이 많아졌다. 일찍 잠이 들기도 하지만 늦잠을 자기까지 하니 말이다.


문덕팸 오픈 카톡방에선 다들 여전히 게임 이야기로 수다가 한창이다. 아침에 일어나 확인해보니 새벽 1시까지 이런저런 게임 내 이벤트를 즐기기 위한 대화가 이어졌다.


아침에 무심한 듯 '모닝'이라는 단어를 톡방에 던진다. 늘 그렇듯 순철이가 나를 제일 먼저 반겨준다. 국왕이 되신 나가이써님이 뒤를 이어 아침 인사를 보탰고, 겁니피곤님도 기상하신 듯 아침 인사에 동참했다.


오늘따라 캐러의 등장이 늦다. 캐러의 안부를 묻는다. 보통 내가 캐러를 언급하면 몇 분 내로 왜 찾냐고 시니컬하게 화답하는 게 보통이다. 


"캐러도 어제 술 마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이상하게 캐러가 오늘 답이 없다. 그러자 겁니피곤님이 나를 상기시키듯 어젯밤 우리가 나눈 이야기를 리마인드 해다.


"어제 와인 마신다고 했잖아요! 자기가 와서 와인? ㅋ이랬으면서 ㅋㅋ"


'엥?? 와인???이라고 내가 썼다고...???'


잠시 멍해졌지만,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어젯밤 대화창에 와인이라는 단어를 보자마자 설 나는 톡방에 '와인?'이라는 단어를 남기고 스르르 잠이 들었었다.


피곤님은 우리의 기억에서 잊혀졌던 또는 잊혀지려 하는 이야기들을 자주 상기시켜주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난 피곤님의 기억력이 참 대단하다고 감탄하곤 한다.


"이야!!! 피곤님은 진짜 기억력이 대단하세요"


나랑 피곤님은 동갑내기다. 하지만 나는 회사일 정말 기억해야 하는 것만 기억하려 하는 반면, 피곤님은 3년 전 게임을 같이 시작할 때부터 시작된 사람들의 모든 워딩을 거의 다 기억하고 있. 회삿일은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나가이써님 내 기억을 상기시켜줬다.


"문덕님 와인?이라고 (톡방에) 말하신 지 9시간밖에 안됐어요

그랬다

요새  나는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들에 대해서 기억하지 못하는 날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렇다 보니 요새는 기억하고 싶은 일들을 기록하려고 노력 중이다.


하루하루의 소중한 이들과의 소소한 일상을 기록해두었다가 나중에 그들과의 추억을 되짚어보고 싶을 때 동화책을  읽듯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이기도 하다.


나이가 들어 은퇴를 하고 내 바람이자 로망 한적한 시외로 나가 텃밭을 일구고, 커피를 내리며 , 글을 쓰는 것이다. 브런치란 공간은 젊은 시절 나와 호기로움을 함께 하던 이들이 그리울 때면 꺼내어 보고 싶은 나의 소중한 일기장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즘은 글을 많이 쓰고 싶은 시기다. 그 말은 바꿔 말하면 내가 기억하고 싶은 일상이 많다는 것이기도 하다.


과도한 수식어로 꾸미려 하기보다 담담하게 그들과의 대화 속 나온 이야기를 최대한 있는 그대로 담아내려 애쓴다. 그래야 나중에 시간이 지나도 지금 느끼는 이 마음들이 다시 살아나지 않을까 해서다.

어제 나의 마지막 기억

어제 내 기억 속 마지막 은 후배와의 통화였다.


어젯밤 잠이 들려고 준비하는 차에 후배로부터 한통의 전화가 왔었다.


"어제 인사가 났는데 제 이름은 없네요..."


예전 기자 시절 같으면 아주 쉽게 고민 없이 답했을 것이다.


"힘내라 내년엔 될 거야"라고.


하지만 기업인이 되어 3년 동안 승진 고배를 마셔보니 승진자 명단에 이름이 없다는 것은 정말 유쾌하지 않은 기분이란 걸 안다. 거칠게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정말 기분 더럽다"


승진이란 게 일을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란 걸 알게 됐다. 운도 좋아야 하고, 줄도 잘 서야 하고, 승진 앞두고 사내정치도 빡시게 해야 한다. 그런 인간들이 일을 못해도 승진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게 직장이다.


난 순간 입을 다물수밖에 없었다. 뭐라고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라서였다. 잠시 적막이 흐르고 후배에게 말을 던졌다.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예전에 나라면 그냥 힘내라라고 했겠지만... 네 마음이 어떨지 알기에... 조만간 가평 잣 막걸리나 먹으며 잣 같은 세상 토로나 하자"


우린 잣 막걸리 상봉을 기약하며 밤중 통화는 그렇게 마무리됐다.


전화를 끊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기분 나쁜 일 있을 때 내 생각이 났고 전화를 해준 고마운 이다. 요즘 나의 고민이 나를 찾는 사람이 없다는 부분이었는데 이 친구는 나를 찾아주는 고마운 이다.


하루하루 매 순간이 소중함을 느끼는 연말이다. 며칠 뒤면 한 살을 더 먹는다는 생각이 만들어낸 감성일 수 있다. 나의 마흔두 살이 며칠 안 남았다는 그런 비련의 주인공 같은 감성이 돋고 있으니 말이다.


내 마흔두 살은 곧 끝난다. 나의 마흔두 살은 이제 살 날이 이틀하고 14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내 이런 생각을 알고 있다는 듯
뇌싱남(뇌가 싱싱한 남자) 피곤님의 송곳 말

위의 글을 쓰고 잠시 또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았나 궁금해 톡방을 열었다.


내가 연말 감성이 충만하다는 것을 어찌 알았는지, 마흔두 살이 곧 끝난다는 표현을 쓴 것을 마치 알고 있다는 듯이.... 피곤님의 나를 꿰뚫어 보는 묵직한 문장을 내게 던졌다.

모든 사람들의 신앙은 연말이 되면 좋아집니다. 무의식적으로 끝이라는 개념을 생각하거든요. 그러다 보니 자기를 돌아보고 신 앞에 서게 되죠. 늘 충만하시다니 좋네요 그런데 연말에도 안 차오른 사람이 많으니 부끄러운 일은 아닙니다 ㅋㅋㅋ


피곤의 말은 매번 정곡을 찌른다. 오늘도 그렇다. 엄청난 인사이트 속에서 나오는 비유화법도 있지만, 직설적일 때도 있다. 확실한 건 그 충고 속에서 배우게 되는 점이 많다. 생각해보고 곱씹어볼수록 음미할 수 있는 문장이 많아 내공이 참 깊은 사람이구나라고 감탄할 때가 있다.


물론 가끔은 아주 가끔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할 때도 있지만, 그럴 땐 본인 스스로 먼저 사과하곤 해서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어쨌든 문덕팸분들과 함께한지도 이제 4년 차가 되어가는구나...

분명히 이 글을 읽어볼 문덕팸들!!!
올 한 해도 고생했어요
내년에도 건전하고 건강한 대화 많이 나눕시다!

겁니피곤님을 난 이제 뇌싱남으로 기억하고자 한다. 뇌가 싱싱한 남자 ㅋㅋㅋ.


늘 우리 방에서는 서로를 약 올리는 그런 대화가 주를 이루긴 한다. 나이는 다들 30~40대이지만 초등학생 대화 같은 느낌이랄까. 원래 남자들끼리 모이면 나이를 알 수 없는 대화가 이뤄지기 마련이니 놀랄 일은 아니다.


앞으로도 서로 건전한 대화를 나누고 건강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게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고, 때론 세상 속에 찌들어 괴물로 변해가는 나를 되돌아볼 수 있는 그런 문덕팸이 되길 바라며 내년 우리의 인연이 잘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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