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요새 어떻게 지내세요?
"제가 기업인이 되어 어둠속 동굴속에서 정신못차리고 있다가 이제 나왔네요. 너무 오랜만에 연락드려 면목이 없습니다"
나와 띠동갑인 조용국 형님. 용국 형님과의 인연은 2009년 8월로 거슬로 올라간다.
햇살이 유난히 뜨거웠떤 여름 어느날, 기자 초년생이었던 나는 산업부장의 점심 약속에 동행했다.
광화문 인근 한정식 식당이었다. 허름한 한정식 집으로 들어가 미닫이로 된 문을 여니 날렵한 몸매에 샤프하지만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는 이가 우리를 반겼다.
차장님 반갑습니다
오늘 제가 후배 한명 데리고 나왔어요
그는 유통업계 차장님이셨다. 입사한지 4개월 남짓한 초짜 기자였던 나는 그날 쑥맥처럼 조용히 부장 옆에 앉아 음식과 싸우듯 쉴새없이 젓가락질을 해대며 입안으로 우겨넣고 있었다.
차장님은 인사치레로 내게 종종 질문을 하셨지만, 나는 대화 스킬이 부족했던 터라 단답형으로 응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나의 대답으로 대화의 맥은 끊기기 일쑤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날 차장님은 나에게 말을 걸고 많이 당황하셨을 것 같다.
그렇게 어색하고 어색했던 점심 자리가 끝나고 부장은 사무실로, 차장님과 나는 함께 서소문로로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기자님은 꿈이 뭐에요
햇살이 너무 좋아 창밖을 바라보는 내게 차장님은 낮고 온화한 목소리로 물으셨다. 나는 한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답했다.
"저는 세상 속 선한영향력을 베푸는 기자이고 싶습니다. 저로 하여금 변화의 시작이 일어났으면 합니다"
신 기자가 신 기자하듯, 기자 초년생의 호기로움을 서슴없이 토해냈다.
그 모습이 안쓰러우셨는지, 마음에 드셨었는지 모르겠으나 그날 이후 차장님과 난 띠동갑 12살 차이가 났음에도 절친이 되었다.
형님 오늘은 어디에 계세요?
"어~ 신 기자~~ 나 시청에 있어 여기 곧 끝날 것 같은데 한 잔할까?"
언제나 술에 취해 전화하면 차장님은 흔쾌히 나와 2차든 3차든 함께 주셨다. 내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으시고는 너무도 기뻐해주시기도 하셨다.
나 역시 차장님이 좋은 아빠가 되길 하는 바람에서 아낌없이 도우려 애썼다.
차장님의 아이가 처음으로 좋아하는 가수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친한 연예부 후배한테 술과 밥을 사주며 어렵사리 사인을 받아 전달해주기도 했다. 차장님이 내게는 멋진 형님이시듯이 집안에서도 멋쟁이 아빠이길 바라서다.
그렇게 우리의 인연은
어느덧 13년이 흘렀다
30살이었던 나는 43살이 되었고, 42살이던 형님은 이제 55세가 되셨다.
이번에도 그랬다. 정말 3년만에 연락드렸음에도 반갑게 맞아주셨다. 어둠 속 동굴에서 힘겹게 빠져 나온 후 형님이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연락을 드려 점심 약속을 잡았다. 오늘이 그날이다.
"형님 요새는 어떻게 지내세요?"
"나는 이제 은퇴 후 삶을 고민하고 있지"
"네? 은퇴요? 형님 아직 젊으시잖아요?"
"신 기자~ 내가 이제 곧 정년퇴직이잖어"
형님은 아직도 날 '신 기자'라고 부르신다. 그게 편하다고 하시단다.
"아... 그러고 보니 형님 나이가... 벌서 그렇게 됐네요... 저는 제가 나이먹는 것만 생각했네요..."
마음이 아려왔다. 내 앞에 앉은 형님은 13년 전이나 지금이나 젊고 열정적이다. 처음 만났던 그날과 형님의 지금 모습은 하나도 변한 것이 없는 것 같은데... 벌써... 55세가 되셨다...
"형님 그럼 은퇴하시고 계획이 궁금해요"
"난 제주도 내려가서 택시기사를 해보고 싶은데 그것도 하늘의 별따기더라고"
"제주도요?? 제주도 좋긴 하지만..."
난 용국 형님을 만날 때면
내 12년 후를 미리 경험하는 느낌이다
띠동갑이라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용국형님을 뵈면 내 미래의 어느날이 연상되는 느낌이랄까.
13년 전 용국형님은 이직을 한참 고민하고 계셨었다. 하지만 직급이 있고 가족과 아이들이 있다보니 쉽사리 옮기지는 못하셨다. 지금 내가 그렇다. 이직을 고민하고 있긴 하지만, 쉽사리 선택하지 못하고 있으니...
용국 형님은 늘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나이대에 대한 이야기를 내게 솔직하게 말씀해주셨다. 돌이켜보면 용국형님을 통해 난 그 누구에도 들을 수 없는 소중한 인생경험을 들으며 성장해온 셈이다.
그런 용국 형님 덕택에 내 삶이 더 단단해졌는지도 모르겠다.
"형님 전 요새 데이터 사업쪽 일을 하고 있거든요"
"데이터 신사업??? 오호~ 신 기자 다운 걸~"
"네. 데이터를 가명처리해서 결합할 수 있어요. 형님이 고민하는 노후대비도 데이터 결합이 활성화되면 좀 더 쉽게 컨설팅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그게 가능할까?
와닿지는 않는데?
"형님 지금부터 조금 딱딱하고 어려운 이야기가 나올 수 있지만 일단 최대한 쉽게 이야기해 볼게요"
"그래!!!!"
"사실 데이터 결합을 통해 살펴볼 수 있는 데이터는 조금 거시적인 측면이 강해요. 가명처리를 한 뒤에 결합을 하는 것이다보니 형님 또래 혹은 특정 연령층 이상에 대한 트렌드 분석이 가능하거든요"
"신 기자~~ 에이 뭐이렇게 서론이 길어~ 어서 말해봐"
"넵 최근에 보건복지부 사회보장위원회 사무국에서 '고령화 사회가 가속화되고 있는데 국민들이 노후대비를 어떻게 하고 있을까?'에 대한 데이터를 확인하고 싶었대요. 그런데 문제는 다양한 연금 등 노후소득보장 제도가 있지만, 공·사연금 등의 관리주체가 다양하고 기초자료가 여기저기 흩어져있어서 면밀한 분석이 어려웠던 거죠"
"그래서?"
"그러던 중 데이터 결합이라는 것을 알게 됐고 생각해봤대요. 흩어진 노후 소득보장 관련 행정데이터들을 결합하면 개인의 사회보장제도 가입 및 수급현황을 종합적으로 분석할 수 있지 않을까하고요"
조금 어려워지지만
계속 말해봐
"실제로 결합한 데이터에는 국세청의 과세 정보 등 금융 데이터가 포함되 있어 데이터전문기관인 국세청에서 결합을 수행한 건인데요"
"국세청도 결합이라는 걸 할 수 있나보군"
"네. 국세청도 결합할 수 있는 기관이긴 해요. 어쨋든, 행정안전부의 세대정보와 인적정보에다가 흩어져있는 연금 관련 행정데이터, 그리고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의 노인일자리 정보 등을 결합해서 분석을 했더니 65세 이상 노인층의 연금 수급액과연령이 높아질수록 기초연금 수급률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대요"
"어려운걸"
"결론만 이야기하면 데이터 결합을 해서 노인층의 소득에 대한 종합적인 데이터를 만들어냈고, 이제는 이 데이터를 통해 노인의 소득보장 실태와 사각지대 분석이 가능해졌다지요"
그게 내 노후랑 뭔 상관일까???
"제가 형님을 위해 제가 데이터 결합을 한다고 상상해보면요. 일단 저는 제주도에 사는 60세 이상 남자들의 소득 데이터와 카드 소비 데이터를 결합해보고 싶어요"
"응????"
"그렇게 되면 제주도에 사는 60세 이상의 남자들의 소득 수준과 소득의 출처가 보일 것이고 그들의 소비 수준이 나오게 될테니까요. 그걸 근거로 형님이 저축을 더 늘려놓아야 하는지 아니면 지금 수준으로도 제주도에서 생활이 가능한 것인지를 예상해볼 수 있지 않을까해서요"
"오호!!!"
"그리고 또 하나 욕심을 내보면 제주도에 사는 분들과 여행온 분들을 확인할 수 있는 인적정보와 통신사 위치 정보를 결합하고, 소비 데이터 중에서 교통수단에 대한 데이터를 결합해보면 제주도에서 대중교통 수단에 대한 소비 패턴도 알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군"
사실 형님 이건 제 상상이긴 해요
"실제로 결합했을 때 유의미한 정보가 나오지 않을수도 있어요. 하지만 아직은 데이터 결합이라는 용어 자체가 시장에서도 생소한 터라... 어쩔 수 없이 머릿속으로 소설을 써야 할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상상이지만 왠지 그럴듯해 보이지 않나요?"
"확실히 이해한 게 하나 있긴 해. 신 기자가 요새 뭔가 재미난 일을 요새 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히 알겠군 ㅎㅎ"
"으흐흐흐흐 형님 건강하셔야 해요. 그래야 자주 보죠. 저도 마음 건강 잘 챙길게요. 형님 제주도 가시면 제가 커피마시면서 글쓸 수 있는 공간도 하나 마련해주실거죠?"
"자주 연락이나 하세요. 신 기자님!"
그렇게
우리의 2년만의 점심식사는 마무리됐다
3년만이었지만 형님은 하나도 변함이 없이 내가 처음 만났던 42살의 차장님의 모습이셨다.
오히려 흰머리는 내가 더 많아졌다. '형님에게 나의 모습은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까'가 궁금했지만 묻진 않았다. 나중에 내가 55살이 되고 형님이 67세가 되면 그때 제주도에서 술 한잔 기울이며 물어봐야겠다.
'형님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세요. 너무 오랜만에 연락드려 죄송해요. 지금도 형님을 만나면 생각이 많아집니다. 형님과 있는 시간은 제가 미래를 사는 기분입니다. 또 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