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님 잠시만요. 모르는 번호인데 혹시 저희 업무 관련한 외부 전화일까 해서요 잠시만요”
“안녕하세요. 김ㅇㅇ님이신가요?”
“죄송합니다”
“신 차장 누군데 그래?”
“저.... 예전 번호 주인 이름이 김ㅇㅇ이셨나 봐요... 그분을 찾는 분들이 많더라구요...”
번호를 바꾼 지 벌써 10년이 넘었건만...
오늘도 ‘김ㅇㅇ’님을 찾는 전화가 왔다. 익숙한 듯 무심하게 “아닙니다”하고 끊었다.
오후에는 경상북도에 있는 제2금융사 A지점으로부터 안내 문자가 왔다. 뭔가 싶어 자세히 살펴보니 ‘김ㅇㅇ님의 통장이 개설되었습니다’였다.
'아.... 정말 가지가지구나....'
해당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제2금융사 A지점 담당자에게 통장 개설을 하면서 김ㅇㅇ이라는 분이 내 번호를 도용했다고 설명했다. 해당 직원은 그렇게 놀라는 눈치가 아니었다. 나는 지금 개설된 통장에 기입된 휴대전화 번호 명의가 통장 개설한 사람의 것이 아니니 내 번호를 삭제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아무런 감정의 변화 없이 알겠다고 하고는 끊어버렸다.
사실 이 정도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내 번호를 사용하던 김ㅇㅇ님은 ‘불법 온라인 도박 사이트’ 가입만 수십 건이어서 새로운 도박사이트가 개설되면 어김없이 내게 문자 연락이 온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싶긴 한데... 김ㅇㅇ님은 통신사별로 연체가 되어있어서 늘 받는 문자는 통신비 연체 안내 문자와 가끔씩은 빚 독촉 전화도 받곤 한다.
처음에는 당황스럽기도 하고 조금 겁나기도 했지만, 이제는 ‘김ㅇㅇ님’이라는 말만 나오면 여유롭게 “번호 바뀐 지 10년이 넘었습니다”라고 응대하고 전화를 끊는다. 상대도 그러면 "죄송합니다"하고 정중하게 끊어주신다.
이처럼 10년 전 번호 변경 후
내 삶 속에 전화와 메시지 스팸은 내 일상의 한 부분이 됐다.
온갖 대출 권유, 주식투자정보, 도박 권유 등의 문자가 하루에도 수십 통이 쏟아진다. 070 번호와 해외 특히 중국발 국제전화도 빗발친다.
휴대전화 번호를 다시 바꿔볼까도 싶었지만, 번호 변경에 따른 불편함과 새로 얻은 번호가 지금 번호보다 더 나을 것이란 확신이 없어 유지하고 있다. 만에 하나 지금 번호보다 더 심각한 사연 있는 분이 사용했던 전화번호였다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서다. 사실 요즘은 ‘바꾸면 뭐하나’하는 생각이 들어 다 내려놓고 체념하고 살고 있다.
팀장님은 무언가 떠오르신 듯 내게 말을 건네셨다.
“신 차장과 같이 번호 변경으로 인한 원치 않는 전화나 메시지 스팸에 시달리는 이들이 많겠지? 데이터 사업이 이런 부분에서 무언가 해결책을 제시해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말야”
그렇다 나는 데이터 신사업을 고민한다
팀장님의 말에 나도 곰곰이 생각해봤다.
'데이터를 모아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음.... 팀장님, 데이터 결합으로 스팸 탐지기술 정교화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지! 이미 한국인터넷진흥원에서 스팸신고정보와 통신사 가입정보를 결합해서 유의미한 정보를 얻어냈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앗 찾아봐야겠어요”
역시 나 같은 이들이 많았는지, 한국인터넷진흥원에서는 불법스팸대응센터로 신고되는 불법스팸정보인 광고 번호와 내용, 유형 등의 데이터와 통신사가 가지고 있는 가입자 정보를 결합해 성별, 연령대별 불법스팸 피해 실태를 파악하는 프로젝트를 실시했다.
그 결과 대부분의 성별·연령대에서 문자스팸 비율이 음성스팸보다 높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스팸 유형으로는 도박 스팸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고, 그 뒤를 불법대출이 이었다.
번호 사용자가 남성인 경우 주식정보 스팸이 여성보다 더 많았고, 번호 사용자가 여성인 경우에는 대출·카드 관련 스팸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불법스팸신고정보와 통신사 가입정보를 결합하고, 여기에 더 많은 가명 처리된 정보를 더하면 스팸 탐지기술이 더욱 정교해질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던 프로젝트였다.
또한 무분별하게 뿌려지고 점점 양이 더 다량화 되어가는 스팸 관련 제도 및 시스템 개선에도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고 평가하고 있었다.
오늘도 쏟아지는 스팸에 당한 사람들의 안타까운 사연들...
오늘도 퇴근하고 저녁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를 하고 있다. 아들도 오늘 할 일을 잘 마무리하고 영상 30분을 볼 시간이다.
아들은 자신의 소중한 영상 시청 시간을 9시 뉴스로 골랐다. 유튜브로 9시 KBS뉴스를 본다. 나는 설거지를 하며 뉴스를 듣게 됐다.
"전화 사기, 보이스피싱 수법이 날로 교묘해지면서 피해가 줄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정상적인 중고품 거래를 하는 것처럼 꾸며서 사람들을 속이는 수법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헐... 이건 뭐지?'
점점 지능적으로 발전하는 범죄수법에 경악했다.
요약하면, 중고거래를 했는데, 구매자가 물건의 진품 여부를 꼼꼼하게 확인받은 뒤 판매자의 계좌로 거액을 입금했는데, 그 돈이 알고 보니 보이스피싱 피해자가 입금한 돈이었다는 얘기였다.
참 황당하고 어이없지만 각박해져 가고 교묘해져 가는 현실 속 얘기였다
정말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일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다. 정말 교묘하고 지능적인 수법이다.
보이스피싱범은 중고거래 플랫폼으로 고가의 물건을 거래 시도한다. 이게 개인인증을 하지 않은 카페 등을 이용한 것이라면 더욱더 심각하다.
이름, 전화번호 등 개인정보를 노출하지 않고 고가의 물품을 확보하게 되니 그야말로 당하는 입장에서는 속수무책이다.
뉴스 속 멘트처럼 범죄자는 사라지고, 돈을 보낸 피해자와 판매자만 남다 보니 피해자들끼리 소송까지 벌어져 정신적 피해가 심각해지는 수준이다.
남 얘기라고 지나칠 수 없다
나에게도 보이스피싱은 늘 걱정거리다.내 휴대폰에 수북이 쌓여있는 문자들을 볼 때면 겁이 나기도 해서다.
예전 어떤 심층 취재에서 봤는데 아무리 조심하더라도 그날 이래저래 일이 꼬여서 당황하게 되면 걸릴 수밖에 없는 게 보이스피싱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피해 통계가 심각하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따르면, 올 상반기 발생한 전화금융사기는 총 1만 2401건으로 피해 규모는 368억 원에 달한다. 하루 평균 피해액이 25억 원에 달하는 셈이다.
최근 피해금을 탈취해가는 수법도 비대면 '계좌이체형'에서 직접 얼굴을 마주해서 돈을 갈취해가는 '대면편취형'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수법의 종류도 다양하다. '주요 8대 범행수단'은 대포폰, 대포통장, 전화번호 변작 중계기, 불법 환전, 악성앱, 개인정보 불법유통, 미끼문자, 거짓 구인광고 등이다.
특히 지난해 상반기와 비교해 '번호변작 중계기' 피해건이 9,679건으로 3,012% 폭증했다. '번호변작 중계기'는 해외 발신 전화번호를 '010' 번호로 둔갑시키는 장비다.
번호변작 중계기가 다수의 유심(USIM)칩을 장착한 심박스(SIM Box) 형태에서 휴대전화로 대체되고 숙박업소 등에 기기를 고정하는 방식 외에 차량이나 오토바이에 싣고 다니는 이동형 장비가 다수 발견되는 등 범행 수법이 점차 지능화하고 있다.
늘 고민이다
'누군가의 돈을 빼내기 위해 그들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데이터를 고민하다 보니 '데이터 결합을 통해 이러한 부분을 예방할 방법은 없을까?'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이번에 소개한 한국인터넷진흥원의 데이터 결합 사례는 불법스팸정보와 통신사 정보를 결합해 성별, 연령대별 불법스팸 피해 실태를 파악하는 정도에 머물렀지만, 결합을 통해 무언가 의미 있는 분석을 해보려는 시도가 있었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이것을 시작으로 좀 더 많은 사업자가 함께 머리를 맞대어 같이 고민하다 보면 진화하는 보이스피싱에 대응할 보다 정교한, 보이스피싱을 무력화할 수 있는 유의미한 데이터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