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께스 데 까세레스 가우디움 2009'와 함께한 2022.07 기쁜날
가장 빠른 날로
입대하고 싶습니다.
1999년 3월 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시작으로 연일 이어지는 술자리로 간이 만신창이가 된 날이었다.
'내가 기대했던 대학생활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나는 대학생활에 대한 설렘이란 게 있었다.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을 통해 보았던 캠퍼스의 잔디 속 낭만 같은...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달랐다. 대학 입학하고 3월 한 달 동안 내내 술독에 빠져 살았다...
'이렇게 대학생활을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공허함이 내 몸을 휘감았다. 내가 보기에 나의 이러한 삶이 너무도 부끄러웠다.
숙취를 부여잡고 그대로 국방부 민원실로 향했다. 그리고 자원입대서를 작성하고 접수했다.
"지금 입대 지원자가 많아서 아무래도 올해는 힘들 수도 있어요"
"넵 괜찮습니다. 저는 언제라도 좋으니 가장 빨리 입대할 수 있는 날로 부탁드립니다"
아직도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나 말고도 수많은 이들이 자원입대서를 작성하기 위해 줄 서 있었다.
우리나라를 집어삼킨 IMF 경제위기 여파 때문이었다.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많은 이들이 직장을 잃게 됐다. 기업이 사람을 뽑지 않으니 취업난이 심각해졌다. 등록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도 생겨났다... 이런 경제 위기 속에 많은 이들이 자원입대했다.
훈련병!!!!!!
그리고 5개월 후인 1999년 8월... 무더운 여름날 오후 입영통지서를 받았다. 그리고 3개월 뒤인 11월 16일... 수능 전날 난 머리를 빡빡 밀고 입대했다. 김광석 님의 '이등병의 편지'를 들으며...
훈련소의 생활은 치열한 생존의 현장이었다. 한마디로 정글이었다. 매일 이어지는 훈련도 훈련이었지만, 매번 실패하는 배식으로 훈련병 간의 몸싸움이 일어나기 일쑤였다.
다들 배고프지만, 식사는 늘 부족했고 이것이 반복되니 이제는 먼저 먹게 되는 이들이 밥을 잔뜩 가져가 뒤에 먹는 이들은 열이면 열 죄다 굶어야 했다. 이것이 악순환 고리처럼 반복됐다. 매 끼니때마다...
모두가 본능에 충실한 것은 아니었다. 그 안에서도 자신의 배고픔의 본능보다 남을 배려하려는 강인한 이성을 지닌 이들이 존재했다.
그들을 보며, 난 내가 그동안 인지하지 못했던 인간의 본성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하게 됐다.
신고합니다!!!
이병!!!!
그런 정글 같던 훈련소를 뒤로하고 전역할 때까지 복무할 부대로 배치받았다. 이곳에서 밥은 늘 풍족했다.
하지만..... 또 다른 문제와 직면하게 됐다. 바로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밥은 넉넉하지만, 느긋하게 밥을 먹을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많이 먹고 싶다면, 쑤셔 넣어야 한다. 씹어서 삼킨 시간은 없다.
이런 상황이 반복됐고, 급하게 먹는 것은 나의 식습관이 되어버렸다. 여전히 난 배가 고프면 밥을 씹지 않고 위로 밀어 넣는다. 그러곤 소화불량에 걸린다. 내가 늘 소화제를 달고 사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병님 안녕하십니까!"
내 사수가 배정됐다. 5개월 먼저 입대한 일병님이시다. 빡빡머리에 눈매가 매섭다. 말랐지만 탄탄한 근육질 몸매에 소유자다.
강인한 인상에 범접할 수 없는 날카로움을 가진 '일병...'. 아직도 그 눈빛이 선하다. 이글이글 끓고 있는 아우라가 느껴지는 그런 포스랄까....
아마 내가 어릴 적 어두운 골목에서 마주쳤다면, 무조건 그를 피해 도망갔을 것이다.
저는 어떤 사람이에요?
선임은 무서운 선임이기도 했지만, 마음이 무척 따뜻한 분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굉장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분이셨다.
소위 풀린 군번들이 상병 때부터 부대를 장악하면서 너무 빨리 군번이 풀려버린 탓에 그들의 심심풀이 땅콩은 후임들이 되기 일쑤였다. 하지만 선임 기수가 있었기에 똥 군기 타임 속 무분별한 기합은 쉽게 무력화되곤 했다.
당시 폭력이 난무하던 시기였음에도 그런 나쁜 되물림을 후임들에게까지 오지 않게 온몸으로 방어해주셨다.
선임 덕택에 난 지금 생각해보면 군대생활이 고통스러웠던 기억보다, 소중한 추억이 더 많은 것 같다.
선임은 그림을 참 잘 그렸다. 내게도 종종 그림을 그려주시곤 했다. 멋지게 그려주셨던 캐리커쳐에 대한 기억은 새록새록하다.
또한 내 첫 휴가인 100일 휴가 때 나의 군복에 주름이란 주름에 모두 날을 세워주시고 구두에도 물광을 내어주셨다.
그렇게 국방부의 시간은 흘러갔고, 나는 상병이 되었고, 선임은 분대장이 되었다. 똥 군기를 잡던 이들은 사라지고 부대에 평화가 찾아왔다. 우린 수많은 시간을 함께 한 덕택에 이제는 제법 진지한 대화를 이어나갔다.
당시 내 삶의 고민은 바로 '나는 누구인가'였다.
"분대장님 저 질문 있습니다. 저는 중학교 시절부터 제가 누군가를 늘 고민해왔습니다. 혹시 질문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분대장님이 보시기에 저는 어떤 사람인지 제게 말씀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생뚱맞을 수 있는 질문임에도 늘 내게 진지하게 답을 해주시곤 하셨다.
우린 늘 제대 후가 두렵고, 우리의 미래가 불안했지만... 우린 야간 근무를 설 때면 선임과 후임이 아닌 인간으로서 먼 훗날 우리가 우리나라에 어떤 의미 있는 존재가 될지를 함께 고민하는 사이가 됐다.
그리고 선임은 어깨 위에 올려진 무거운 책임감의 상징인 분대장을 내게 물려주시곤 사회로 돌아갔다.
길고 길었던 수험생 시절
매번 찾아온 따뜻한 마음
그리고 5개월 뒤 나도 제대했다. 내게 선임은 비록 한 살 차이지만 내 마음속에는 항상 '큰 형님'이셨다. 형님은 동네 친구 모임이든 가족모임이든 나를 늘 불러주시고 챙겨주셨다.
사람과의 관계에 늘 소극적이고 의기소침해 있던 나였지만, 형님 덕택에 사회성을 키워나간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머지않아 난 깊은 수렁과도 같은 수험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수험생활은 쉽게 끝나지 않았고, 형님과는 일 년에 한두 번 뵈는 것이 전부였다.
그럼에도 뜸하게 연락드렸음에도 형님은 늘 친동생처럼 배려해주시고 밥은 잘 챙겨 먹고 다니라고 소고기와 회 등 당시 내 주머니 사정으로는 절대 맛볼 수 없는 비싼 음식들을 배불리 먹여주시곤 했다.
그날도 그랬다. 그리고 그날의 형님의 멋짐을 잊을 수 없다.
당시 수험생활이 너무 길어져 이대로는 안 되겠다 생각이 들어 어떻게든 월급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렵사리 인턴 기자로 일을 하게 됐다.
그러다 회사에서 얻은 1만 원 정도 하는 가죽 시계를 손목에 차고 있었다. 그날도 형님은 내 건강을 챙겨주시려 소고기를 사주셨다.
"너 시계가 멋진데?"
"형님... 이거 그냥 싼 거예요"
"그거 내가 정말 좋아하는 스타일인데! 자 이거랑 바꾸자"
형님은 자신의 손목에 차고 있던 고가의 시계를 내게 건네주셨다. 그리고 내 가죽 시계를 멋지다고 연신 추켜세우시고는 손목에 차셨다.
'형님 감사합니다...'
내 기억 속에 형님과의 추억에는 늘 내가 챙김을 받았던 날들의 연속이다.
이번에도 그랬다.
"우리 이번에 애들 데리고 속초 갈까? 속초 숙박은 내가 다 준비했으니 그냥 편하게 오기만 하면 돼! 그리고 내가 픽업하러 집 앞으로 갈게! 차는 한대로 가자"
'이번에도 형님의 보살핌을 받게 됐구나...'
형님!
제가 정말 아껴둔 와인 하나가 있는데
전 그럼 그걸 가져갈게요
'나도 무언가를 해 드려야 하는데...'
형님의 이번 속초 여행 제안을 받으니 작은 선물이라도 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마음이 담긴 무언가를 드리고 싶었다.
그러다 문득 나의 와인셀러에 고이 넣어두었던 나의 자랑이자 나의 기쁨인 '가우디움'이 떠올랐다.
'그래! 이걸 형님과 함께 마셔야겠다! 그동안 그 누구보다 더 열심히 치열하게 각자의 위치에서 살아온 형님과 나, 우리를 축복하며 말이다'
내 바람은 오직 하나였다.
'이번 속초 여행이 형님과 나의 기억 속에 평생 잊히지 않는 소중한 날로 기억되길...'
그렇게 난 조심스럽게 그동안 고이고이 모셔두었던 '가우디움'을 챙겨 속초로 가는 형님의 차에 몸을 실었다.
'이제 드디어 맛보게 되는구나... 2009년 빈티지이니 이제 13년이란 세월이 녹아든 '가우디움'이다. 시음 적기가 15년 정도이니 먹기에도 오늘이 딱인 것 같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 2009: Guia de Vinos Gourmets 97점, Vinos EL PAIS 98점
가우디움은 라틴어로 '감각이 주는 최대한의 기쁨'을 뜻한다. 가우디움은 오직 좋은 빈티지에만 94개 배럴만 한정 생산되는 특별한 와인으로, 템프라니요(95%)와 그라시아노(5%)를 블렌딩해 생산한다.
18개월~20개월 새 프랑스 오크에서, 시장에 나오기 전 2년 간 병 숙성을 통해 복합미를 높인 것이 특징이다.
6개 빈야드의 평균 수령이 평균 60~120년 된 포도나무에서 수확한 포도를 사용하는데, 한 포도밭의 경우 102년 이상된 포도나무만 있다.
6년~15년 시음 적기이며 에이징 포텐셜 20년 이상이다.
영롱한 로얄 루비 빛이 잔을 비추고
오랜 세월을 머금은 과일향이 잔을 가득 채우니
입안 가득 메말라 오는 갈증을 어찌하리오
오랜 세월을 와인셀러에서 버텨온 탓에 코르크 따는 것이 무척 난도가 높다. 다행히 형님의 섬세한 오프너 솜씨 덕택에 무사히 와인을 맛볼 수 있게 됐다.
조심스럽게 형님과 나의 잔에 '가우디움' 물줄기를 흘려보낸다. 조심스럽게... 그리고 형님께 오늘 준비한 와인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형님 이건 당시 도매가가 20만 원이었지만, 지금은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 없는 와인이에요! 평생 먹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형님 덕택에 저도 이놈을 맛보게 됐네요. 형님과 '가우디움'을 함께할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아니지 내가 영광이지!"
그렇게 난 이제 막 와인에 입문한 형님을 향해 '와인의 역사, 그리고 상식'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콧속으로 파고드는 가우디움의 향을 타고 나의 시간여행이 시작됐다.
한 모금 마실 때마다 가우디움의 향과 함께 피어오르듯 스쳐가는 우리의 지난 23년의 추억들 속에 형님과 난 그 시절 우리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한 모금... 그리고 또 한 모금...
'가우디움의 향이 무척 복잡하다. 풍부한 과실 향 속에 한가득 퍼져 나오는 달콤하면서도 강렬한 버터향이 내 기분을 설레게 한다'
형님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와인을 한 모금 머금고 눈을 감는다. 그토록 마시고 싶었던 '가우디움'의 맛을 내 마음에 새기기 위해서다. '가우디움'이 주는 마음속 이미지가 궁금하긴 했지만, 아쉽지 않다.
형님과 나의 소중한 마음의 한 페이지를 써 내려가고 있으니 말이다.
오늘을 기억하려 가우디움을 한 모금 조심스럽게 입안으로 더 흘려보냈다.
와인이 스쳐 지나가고 갈증이 밀려온다. 향은 부드럽고 달콤한데 굉장히 강한 힘을 가진 와인이다. 물처럼 맑은 시냇물이 아니다. 가뭄이 짙게 드리워진 땅이다. 혀의 돌기가 아우성이다. 가뭄에 단비가 오길 바라듯, 어서 내게 와인을 한 모금 더 들이키라고 말이다.
마음이 흥얼거린다...
'이 밤..... 그날의 반딧불을 당신의...'
형님 정말 감사합니다.
형님을 처음 뵌 게 20살 때였으니 벌써 23년이 흘렀네요
형님의 응원 덕택에 그토록 어리바리하고 힘겹게 살아가던 제가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어요.
감사합니다.
내겐
내 삶의 은인이 참 많다
오늘은 그중 한 분인 형님과 함께 했던 22년 7월의 '마르께스 데 까세레스 가우디움 2009'가 있어 더욱 기뻤던 그날을 기록하고 싶어 글을 남긴다.
아직 내 와인셀러엔 가우디움 2009가 하나 더 남아있다. 이건 형님과 내가 60이 넘었을 때 건강하다면 함께 오늘을 떠올리며 맛보고 싶다.
그날 이 글을 함께 읽으며 말이다.
'이 밤.... 그날의 반딧불을 당신의....'
형님 늘 건강하세요!
- 광화문덕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