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광화문덕 May 16. 2023

샹그리아에 파김치 조합이라...

도저히 안 어울릴 것 같지만, 의외로 꽤 괜찮은 조합

올해 초 대학원 석사 과정을 시작했다. 서강대학교 메타버스전문대학원. 우연한 기회였지만, 이것이 내 운명이라 생각하고 입학했다.


그리고 입한한지 3개월 차가 됐고... 난 오늘 파김치가 됐다.


지난해 9월쯤부터 술을 끊고 살고 있으니, 금주 10개월 차다. 솔직히 얘기하면 한 달에 한두 번은 어쩔 수 없이 술자리를 하고 있긴 하다. 월급쟁이이니 이건 선택이 아닌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저녁자리다.


오늘 수업을 듣는데, 계속 곱창 생각이 떠올랐다. 이유는 모르겠다. 곱창에 소주가 너무도 생각났다. 물론 같이 마시자고 할 사람도 없고, 술 마실 시간도 아깝긴 하다. 술을 마시면 말이 많아질 테고 난 그다음 날 분명 말을 아끼지 못했음을 한탄하며 후회할 게 뻔하다. 술 마시자고 했지만, 상대의 시간도 내 시간도 결국 공허하게 날아간다는 느낌이 들면, 그 시간이 너무도 속상하다. 그렇게 버려졌음에 말이다.


요즘 아내가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어한다. 내가 대학원 수업을 듣느라, 주 3회를 학교에 가 있으니 독박육아로 힘든 게 당연한 상황이다.


아내는 순댓국을 좋아한다. 감자탕도 뼈해장국도 맛보러 가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오늘은 집에 가는 길 내가 먹고 싶은 곱창이 아닌 아내가 좋아할 뼈해장국을 특으로 2인분 샀다. 아내가 자고 있으면,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짜잔'하는 마음으로, 아내가 아직 자고 있지 않다면 쿨냄새 진동하며 "오다 생각나서 사 왔어"라고 말할 요량이었다.


집에 와보니 아내는 잔다. 그래서 결국 뼈해장국은 커다란 냄비에 넣었다.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팔팔 끓여 따뜻한 밥 한 공기와 함께 아침 식사를 대접할 생각으로 말이다.


뼈해장국 속 뼈를 보니 배가 고파왔다. 그리고 오늘은 그냥 술 한잔이 생각났다. 그래서 냉장고를 열어보니 아내님이 사놓은 샹그리아가 한 병 있어 "이때다"싶은 마음에 잔에 따랐다. 그리고 뼈해장국 뼈 2 덩이를 꺼냈다.


달콤한 샹그리아가 입안을 퍼지고, 담백한 고기가 입안에서 춤을 춘다. 뼈해장국 뼈 2 덩이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하지만 샹그리아는 잔에 두둑하게 따라놓은 탓에 아직 2/3가 남아있었다.


갑자기 아내님이 얼마 전 만들어놓으신 파김치가 떠올랐다. 파김치를 꺼내 접시에 담고 와인 옆에 두었다. 사진을 예쁘게 찍어보려 했지만, 마시던 와인이랑 파김치는 내 눈에 보이는 감성은 너무도 감성감성하여 예쁜데, 사진으로 찍은 모습은 영 별로다. 지금 내 기분을 반감시키는 것 같아 사진 찍는 것을 포기하고 샹그리아와 파김치가 주는 감동에 집중하기로 했다.


일단 파김치의 알싸함과 매콤함을 혀끝으로 느꼈다. 그리고 매콤함이 입안 가득 번져나갈 때쯤 달달한 샹그리아를 입안으로 흘려 넣었다. 사실 이건 와인을 맛본다기보다는 물을 마시듯 한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매콤함을 잠재우며 샹그리아의 달달하면서 시큼한 알코올이 올라온다. 다시 파김치를 입안으로 집어넣는다. 그리고 다시 샹그리아를 마신다. 그렇게 입안에서는 매콤함과 달달함이 전투를 벌이는 동안 알코올은 내 몸속 깊이 파고든다.


사실 샹그리아와 뼈해장국, 그리고 파김치의 조합이 상상이 가지 않는 조합이다. 하지만 나는 감히 추천하고 싶다. 샹그리아와 뼈해장국의 뼈 굉장히 괜찮다. 뼈해장국과 소주가 찰떡궁합인 것은 국물을 맛봐서 일 것이다. 국물은 밥에 양보하고, 뼈해장국 속 뼈는 샹그리아에 선사하자.


꼭 매콤 알싸한 파김치와 샹그리아를 매치시키길 권한다. 그냥 파김치만 먹으면 매워서 물을 마셔야 할 정도의 맵기다. 파김치는 신선한 것으로 먹길 추천한다. 아삭아삭 씹는 맛이 필요할 테니 말이다.


[실제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오히려 글을 해칠 것 같아 이미지로 대체함을 양해해주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이 밤 그날의 반딧불을 당신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